이 꼰대의 네 가지 잘못
“여성 차별이네 뭐네..
이거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해요. 하하하…“
위 발언은 여자라면(나 포함) 회사에서 종종 들었고, 인기 드라마에서도 흔히 나왔던 대사이다. 은근히 많아 모두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일하는 여주인공이 다니는 회사나 거래처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최근 드라마 중에는 ‘대행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가 있다.
주말 저녁 느긋하게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맥주 한 캔까지 하며 보는데 갑자기 드라마에 과잉 이입된다.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후끈거리며, 머리마저 뜨끈뜨끈해 뚜껑이 열리려고 한다. 거기에 과거 감정기억까지 겹쳐, 이 소리를 듣고 남성 고위직에게 따지지 못한 내 울분까지 되살아난다. 분노로 도통 잠을 이룰 수 없기에 글로라도 저런 말을 나불거리는 그 주둥이를 처벌코자 한다.
한 회의실, 남녀 사원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다. 한 여사원이 아직 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회의를 총괄하는 혹은 높은 지위에 있는 남성이 운을 뗀다.
“(시계를 보고 난 후 다소 과장된 제스처로 손사래를 치며)
이래서 내가 여자 하고는 일을 안 해요.
아 요새 이런 이야기하면 큰일 나지?
(슬쩍 눈길을 돌려 주위 반응을 둘러본다. 마치 다들 동의할 거라는 듯이)
여성차별이네 뭐네 하니.. 이거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해요..(으하하하하하. 웃음으로 마무리)”
이 꼰대의 첫 번째 죄는 오지 않은 여사원에 대한 모욕이다. 이 사원이 다른 공적인 일 때문에 늦었는지 아닌지 모른 채, 여자의 일(육아)을 하다 혹은 여자는 원래 일처리가 미흡하다는 자신의 성차별 의식에 따라 그 여사원을 같이 일을 할 수 없는 사람 아니, 여자로 폄하했다. 여자로 말했다는 것은 ‘일’을 가지고 그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가 본디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을 가지고 (바꾸지 못하는 것)으로 사람을 폄하했다는 것이다. 이걸 흔히 인신공격이라고 한다.
두 번째 죄는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여성들에 대해 2차 가해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거기 있었던 다른 여사원들은 ‘나도 언젠가 (미흡해 보인다면)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 하며 자기 검열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반복된다면 일을 하는 데 있어 마음이 위축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죄는 바로 마지막 대사와 웃음이다. 고위직 남성은 웃음으로 말을 마무리 짓는다. 멋쩍은 듯 웃는 게 아니라 조소에 가까운 웃음이다. 무의식 중에 말이 튀어나와 ‘실수’로 저 말을 한 게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기 때문에 조소에 가깝다. 즉, 내가 잘 못해서 반성의 차원에서 웃음으로 무마해 보려는 게 아니라, 혹시라도 "너네가(여자들이) 잘 못했다고 할까 봐. 그냥 내가 먼저 잘 못 했다고 해줄게."라는 비겁함에 ‘아 귀찮아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여성들을 얍잡아 보는 무시가 숨어있는 웃음이다.
“이거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해요”라는 너스레 떠는 말은 여성 차별이나 젠더 이슈를 제기하는 사람을 희화화하기 위해 한 말이다. 이것이 3차 가해다. 내가 여성위원회로 활동할 시절, 남성회원들은 내 앞에서 종종 이렇게 말했다.
“희승이는 진짜 무서워, 쟤 앞에서는 농담도 못한다니까.(곁눈질로 나를 힐끔 바라보며 내 눈치를 보는 척)”
“그럼 언제 끌려갈지 모르는데...(웃음)”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내 앞에서 남자들은 저런 말을 하며 낄낄 댔다. 저들이 저렇게 말하는 것은 나를 희화화시켜 여성위원회로서 나의 권력을 무마하려는 시도이다. 저들은 내가 무섭지 않다. 진짜 두려우면 그 공포에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 참 전략적이다.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까지 않고 웃음의 소재로 삼아 비아냥 거려 여성위원회의 공정성에는 해를 입히나, 성차별 발언 했다는 직접적 처벌을 피해 갈 수 있으니.
이런 말들은 다른 남성 직원들에게도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성차별적 발언을 하고 싶다면, 말을 하고 나서,
‘아 이런 말 하면 큰일 나지. 아 안 한 셈 치지 뭐. 취소야 취소.. 한 번만 봐줘..(웃음)’.
이렇게 다른 남성들은 빠져나갈 빌미를 배운다. 이게 4차 가해다. 만약 이런 발언도 그에 대한 응당한 처벌과 교화가 있다면, 당연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차별적 발언을 하고 이를 희화화로 무마하려는 남성직원들은 왜 이럴까? 넓게 보자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여성무시 혐오(mysozyni) 때문이다. 그들에게 성인 여자는 창녀 아니면 어머니다. 여성은 주로 성적인 존재거나 아이를 잉태하고 키우는 재생산을 담당한다. 즉 여성은 ‘몸’으로 환원되는 존재이다. 자신들과 같이 정장을 입고 ‘머리’를 써서 전문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worker)가 아니다. 그들에게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여성’ 직원은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 때문에 낯설다.
좁게 보자면, 이 꼰대적 남성들은 자기보다 여자 사원들이 일을 잘할까 두렵다. 여자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지만, 자기보다 일 잘하는 여자들은 많다. 이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갈 수 있는 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특권적 위치를 주는 남성이라는 생득적 성뿐이다. 여자 동료를 여성으로서 폄하할 때 자신의 입지가 올라간다고 이들은 믿는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가 동등하다는 성평등이 싫다. 조롱하고 싶다. 성차별 이데올로기가 계속 팽배해서 여자들이 자기보다 못나게 취급받았으면 좋겠다. 이들에게 권력은 자신들이 여성 위에서 군림할 때 획득되는 것이지 여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면서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른다. 만약 꼰대성(남성 특권의식, 관리자 특권주의)을 버리고 여성사원을 자신의 동료로 인정한다면,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존중을 얻을 수 있게 됨을. 그리고 특권의식이 사라질 때, 즉 모두에게 동등한 권력이 부과될 때 더 나은 일터로 본인의 자리가 거듭나게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