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 존재의 근원지(根源地), 부모의 삶과 사랑을 담아냈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바르트는 사랑하는 이들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그들에 관해 글을 쓴다고 했다. 언젠가 떠날 부모를 붙잡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썼다. 롤랑처럼 부모의 불멸화가 시작이지만, 끝은 그들이 존재하지 않을 그 언젠가 나를 위함이다. 그때는 오직 글만이 나를 위로할 것이기에.
용기를 꼭 붙들어 매고 이 글을 썼다. 이걸 써도 되나 글감을 정할 때도 소심한 내 자신을 씩씩하게 해야했고, 첫 줄을 시작하는 그 순간에도 내가 과연 쓸 수 있을 까 하는 의심과 싸워 이겨야 했다. 변변찮은 글 솜씨를 가장 애정하는 독자, 내 부모에게 보이려니 단단히 굳센 마음을 먹어야 했다. 글쓰기는 실패의 연속이라고 한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 용기를 북돋아 본다.
1편: 애비애미의 탄생1펴
1화: 그들의 탄생
내 애비는 1949년 김구 열사가 안두희의 총에 맞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해 태어났다....
고 나는 줄곧 주장해왔다. 끄응하고 온 힘을 다해 벽을 잡고 일어나 옹알이로 제 애비를 부를때부터. 출생이 어찌 맞고 틀리고를 논하는 주장이 되겠냐만 반대가 있기에 토론은 성립된다. 47년생이라는 아비의 주장은 꽤나 설득력 있다. 해방 후에 태어난 신생아 태반은 돌을 넘기지 못했다. 젖니가 모두 나 쌀죽이라도 받아먹어 이제 살겠네, 하며 안도하는 세 살 무렵에서야 사람들은 제 호적에 자식들을 올렸다.
아 그 시대가 그랬겠구나 하며 넘어갈 줄 알았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증거 없으면 무효! 를 외쳐본다. 토론의 세계는 냉철하므로. 이제 할머니도 돌아가셨으니 증인도 없고, 문서같은 증거도 있을리 만무하기에, 애비의 주장은 말 그대로 개인적 의견을 내세우는 것일 뿐. 법적 효력이 있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면, 승리의 빵빠레는 곧장 내게로 울려퍼진다. 빰빠라밤! 한 살이라도 애비가 젊었으면, 나와 함께 보낼 시간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애잔한 바람이 흥겨운 음악소리에 묻힌다.
형제가 서로에게 총과 칼을 겨눈 비통의 남북전쟁을 끝나고, 휴전으로 한숨 돌릴 때쯤 에미는 세상 빛을 보았다. 애비때 보다 식량사정은 나아졌지만, 갓 태어난 에미는 잦은 병치레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주 넘나들었다.쌀밥은 물론 고기도 질겅질겅 씹어 넘길 수 있을 때쯤 공식적으로 출생을 인정받았다. 애비와 달리 에미는 출생의 사실관계를 왈가왈부 하지 않는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성품도 한몫하겠지만, 내심 이렇게라도 한 두 살 어려지면 좋은게 아닐까 성 싶다. 물론 내 추측이다. 같은 여자니까. 여자들은 어린걸 좋아한다. 불리하면 ‘민증까봐’를 외치며 연령주의에 편승해 나이먹은 걸로 죽은 자존심도 되살리는 (일부)남성들과는 다르다. 나이듦이 여성의 매력을 훼손 시키는게 아니라 여성의 손에 권력을 쥐어줬다면 나도(에미도) 달랐을까.
애비는 힘든 농사일을 마치면 ‘욕 봤어요잉’ 하고 구수한 누룽지내를 풍기는 전라도 산골에서 키가 크고 머리가 굵어졌다. 그 아랫동네에서는 에미가 자라났다. 국수 한 그릇을 시키면 양이 너무도 많아 면이 새끼를 친다고 의심 받는, 허벌라게 인심이 후하다고 소문난 전주. 명절 때 내려가면, 종가집 마당에는 솥뚜껑 가득히 홍어를 부치고 낙치를 꼬치에 켜켜히 말아 슴슴히 양념을 해 구웠다. 참기름으로 고소하게 부치는 전 냄새에 아득해질 무렵이면 저정도면 상다리가 부러지는게 아닌가 진심 걱정이 될 정도로 명절 음식이 가득히 차려졌다. 그중에 들깨가루를 넉넉히 풀어 구수하게 맛을 낸 토란국이 당연 으뜸. 애미 솜씨다. 설겅설겅한 감자국 보다 쫀득쫀득한 찰진 토란국은 애비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평소 과묵한 그가 입안 가득히 토란를 우물거리며 에미에게 다소 과분한 사랑의 눈길을 줄 때면, 토란국이 나의 기원이 아닌가 싶어 저절로 국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소가 닭을 쳐다보는 눈길을 본적이 있는가? 급하게도, 느리게도 씹지않고 그저 여여히 질겅질겅 여물을 씹는 소에게 눈 앞의 닭은 집 소파에 걸터앉아 옷걸이를 볼 때 기분이다. 그저 네가 거기에 있구나.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어떤 기분도 느낄 수 없는 무념무상無念無想... 에미와 애비의 첫만남도 무감각 했을 테지. 이성에게 호好감을 느끼는 소년 소녀도 아닌 그저 까까머리 어린 아이들이 였을 테니. 위 아랫동네에서 가깝게 산 그들이지만 서로의 기억에 어릴 적 모습이 없는 걸 봐서는 서로에게 그들은 필히 닭이고 소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