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험난했던 계약까지
#1 험난했던 계약까지
대기업이 제안하는데도 거절해??
3D 이펙트로 떡칠한 게임들이 주를 이루었던 2005년 당시, 넥슨, 넷마블, NC소프트와 같은 게임 대기업들의 삐까번쩍한 화려함 속에 묻혀있던 2D의, 자칫 초라해 보이는 평면 같은 게임의 스크린샷이 발견되었다. 회사명은 잘 알려지지 않은 '네오플'이란 곳이었다.
홈페이지에 적힌 연락처 이메일로 조심스레 퍼블리싱 문의를 넣었다. 이때 나는 비게임,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에서 게임 업무를 하는, 조금은 특이하고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들어오게 된 이야기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당시 나는 게임 퍼블리싱 담당자로써 여러 좋은 게임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소위 '인큐베이터'로써 소임을 맡아 알려지지 않은 게임들을 탐색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대기업의 자본력과 마케팅력으로 중소 게임사를 키워내는 것이야 말로 보람된 일이자, 욕먹지(?) 않을 방향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분업화되어 있지만, 당시 소수의 팀에서는 한 명이 두세 개의 게임을 맡기도 했다. 지금처럼 소싱팀, 마케팅팀, 홍보팀, 기획팀, 정산팀, 사업 제휴팀, CS팀이 나뉘어 있지 않았고, 담당자 한 명이 알아서 다 했어야 했다.
대기업인데 이렇게 열악해? 하겠지만, 비주류 부서이다 보니 인원 충원이나 인정받기가 아주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킹받.. 울컥하네...
"저희는 외부 파트너와 협업하지 않습니다."
며칠 뒤 돌아온 답변이었다.
'감히 대기업을 마다해?'
무슨 요즘 라면 광고 카피 같은 말이 당시에도 떠올랐다. 당시 작은 게임 개발사는 어떻게 해서든 큰 퍼블리셔나 대기업의 손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던 때였다. 마케팅이나 운영비가 없어서 문 닫는 개발사가 많았으니, 막대한 자본력을 지닌 큰 회사와 손잡는 것은 정말 필수이자 하늘의 별따기였다. 솔직히 작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개발사에서 연락 오는 것이 허다했었다.
아무튼 이 게임의 스샷에서 풍기는 '뭔가 될 것 같은' 기운이 나의 근성을 건드렸다.
'어디 만날 때까지 해보자!'.
재차 연락을 거듭에 거듭에 거듭에 거듭한 끝에 드디어 미팅 일정을 잡았다. 삼성동 미래에셋 뒤에 있는 작은 사무실로 방문하니, 중단발 머리의 허 대표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첫인상은 뭔가 비범해 보이는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본인 소개를 '최초 비운동권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친구들과 함께 창업한 젊은 기업가라고 했다.
당시 '캔디바'라는 캐주얼 게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던, 십여 명 규모의 작은 게임회사였고, 놀라운 것은 이 회사의 모토가 '고객 상담은 하지 않는다'였다. 이 얼마나 용감무쌍한 소린가! 이 포인트에서 적잖이 놀랐고, 허 대표가 나와 같은 야구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에 두 번째 놀랐으며, 세 번째 놀란 포인트는 그의 단발머리가 얘기해주듯 음악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었다. 훗날 허 대표는 회사를 정리하고 꿈을 좇아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갑자기 미국으로 도망갔던 여자 연예인 A 씨와의 소문도 있었다.)
더 놀란 것은 실제 미국 야구팀에 입단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두둥,,, 그리고 돌아와서는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구단주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몹시 바쁜 인생인 그를 괴롭히던 것은 바로 아토피였다. 심한 아토피를 앓고 있던 허 대표는 항상 팔을 긁고 있었고, 얼굴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벅벅벅벅벅...
독립 야구단이란 프로구단에서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리그 운영을 하던 독립리그인데, 환경도 상당히 열악하고, 그대로 잊혀지거나, 아니면 프로구단의 눈에 띄어 프로 데뷔하는 것이 최상의 목표인 곳이다. 당연히 스폰서도 없고, 사비로 도시락 사 먹으며 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이야기도 추후 풀기로 하고...
무엇보다 이 회사의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이 상당히 예뻤다. (엄근진) 나중에 들었는데 허 대표가 같이 밥 먹자고 해도 꿈쩍을 하지 않는 철옹성이란 소문도 있었다. 하긴, 작은 회사에 인포데스크 있는 것도 좀 특이했었다.
귀사와 함께 하겠습니다.
당시 만났던 허 대표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나름의 철학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어린 시절 즐겼던 오락실 게임을 온라인 게임으로 내놓고 싶어 했다. 던파라는 큰 게임에 앞서 만들어 본 '캔디바'라는 '잡다한 캐주얼 게임 모음 포털'은 나름 매니아 팬층이 있었다. 절대 고객응대를 하지 않는다는, 지금 들으면 놀라 까무러칠 소신과 외부 협력 없이 자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새로 만들고 있는 던파는 주인공이 직접 몬스터를 때리고, 웅크려서 피하는 리얼한 격투 게임을 담았다고 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게 잘 구현된 건 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MORPG를 만드는 규모 치고는 작은 개발사였고, 이후 거대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MORPG란 수백수천 명이 한 필드에 모여 즐기는 MMORPG와는 달리 4명씩 한 팀을 이루어 즐기는, Massive Multi Online RPG에서 Massive를 뺀 소규모 멀티 게임을 뜻한다. 물론 이 방식이 서버나 게임을 구현하는데 더 용이하다. 큰 백화점을 짓는 것보다 작은 가게를 여러 개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추후 다른 회사의 기라성 같은 MMORPG 게임을 능가하는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하게 된다. - 동시 접속자란 말 그대로 지금 현재 게임에 동시 접속해 있는 유저 수를 뜻하며, 게임의 성공 척도 또한 동접자수로 평가된다.
허 대표와 이런저런, 서로 가지고 있던 게임에 대한 이야기, 안목과 정보 교환을 마칠 즈음 허 대표는 시원하게
"귀사와 함께 하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와ㅡ 이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애원을 했던가!
이 때는 몰랐다. 이 것이 나의 고난과 역경의 시작인 것을. 또한 우리와 함께 하게 된 계기도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정말 황당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허 대표의 조건은 하나였다.
"개발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맡아 주세요.".
경험이 짧았던 우리 팀은 이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시에는 체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발굴해서 서비스해 오던 게임들은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못한, 고만고만한 게임들 뿐이었다. 당시 내가 게임 부서에 다시 합류하면서 던파를 가져온 것은 정말이지 업계와 회사에 큰 획을 그은 일이었다.
참고로 나는 처음부터 게임부서로 경력 입사를 하였으나, 중간에 구조조정에 의해 잠시 S전자 수원사업장에 있는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로 전배를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게임 부서로 합류하게 된 히스토리가 있다.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이 이야기도 나중에 에세이를 통해 풀어보자.
아무튼 드디어 네오플과 계약서에 도장 찍을 일만 남은 것이다. 참 오래도 걸렸다. 그렇지만 실제 도장 찍기까지 더 걸렸다는 것은 비밀이다...

To be continued...
- TiNG
v.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