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던전앤파이터 퍼블리싱 PM이 들려주는 비하인드#0

#0. 프롤로그

by TiNG

#0. 프롤로그


자, SHOOT 들어갈게요! 스탠바이!
소녀시대 올라갈 준비! 레디~ GO!!!!
"

『 등줄기에 흐르는 땀과 바짝 긴장한 입술, 인이어에서는 끊임없이 무전이 오고 가고 있었다. 그렇다, 여기는 성황리에 진행이 되었던 던전앤파이터 페스티벌의 무대 앞이었다. 나는 무대에 오르기 위해 대기 중인 소녀시대를 앞에 두고, 뒤에는 장사진을 이룬 페스티벌 참가자들 사이에서 아무런 사고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



나의 25년 회사 경력 중 가장 크고, 자랑스럽고,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를 뽑자면 단연코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 초기에는 던앤파였다.)이다. 7년간 피 땀 눈물로 키워냈던 던파를 언급하기엔 한 번으로는 역부족이라,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회상해 본다. 이 주제로는 업체 발굴에서부터 계약, 마케팅, 기획, 운영, 투자, 정산 그리고 결별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로 엄청난 대작이 되어 버린 지 오래된 '던전앤파이터'라는 PC 온라인 게임이 그 주인공이다.


그에 앞서 나는 5살 무렵부터 내 인생을 표현하자면 게임과는 절대 뗄 수 없는 자웅동체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을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좋아해서 집에서 사라지면 동네 오락실에서 발견되는 게 일상 다반사였다. 모든 장르와 기종의 게임을 두루 섭렵했고, 게임이야말로 최첨단 기술과 고유한 문화의 집약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물론 '순기능에 한해서'이다. 지금도 매일같이 업무 후 퇴근하면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좌절감과 성취감을 골고루 섭취하고 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게임에 푹 빠져 살았던 덕(?)에 커리어도 게임 쪽으로 잡게 되었다.


처음엔 게임 월간지 외신 기자로 시작했는데, 특히나 출판사들의 급여 조건이 너무나도 열악했던 시기이다. 한 달의 절반은 집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바쁜 스케줄이 매달 쳇바퀴 돌 듯 반복되었다. 대신 아무리 힘들어도 게임에 미쳐있던 내게는 다양한 게임들을 남보다 먼저 해 볼 수 있다는 점은 크나큰 메리트였다. 2년여간 어찌어찌 외신팀장이 된 즈음에 맡았던 몇 안되는 국내 업체 -나는 외신팀이라 주로 외국 게임사를 맡았었다.- 중 하나였던 '파란색 대기업'의 게임 부서 담당자가 자기네 회사로 들어와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출장이나 파견을 오라는 뜻으로 처음엔 오해를 하기도 했다...

하필 그때 당시 스타크래프트라는 PC 게임 패키지 유통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한빛소프트에 계시던 지인에게서도 동시에 스카웃 제안이 들어왔었다. 그때는 대기업이니, 간판이니 뭐 그런 건 잘 모르고 순수하게 게임 자체만 쫓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 하나로 성공한 회사보다는 폭넓은 장르의 PC 패키지 게임을 유통 중이었던 '파란색 대기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퍼블리싱한 '짱구는 못 말려 3'가 탐나서 여길 선택한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나중에 5편까지 상품화를 담당했었다.

어쨌든 입사 후 정말 많이 '게임과 게임 외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고, 대기업의 생태계도 몸소 겪으며 성장통을 함께 앓았다. 20대 중반의 시절이었던 그 때를 돌아보니 무용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하루하루 생활이 처절한 생존 경쟁의 세렝게티 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언급하자니 던전앤파이터와는 상관이 없는 대기업 직장 생활 이야기이다 보니, 이 주제는 다음 기회에 이어보겠다.


'던전앤파이터'. 나에게 있어서 애증의, 애정의, 혼돈의 역사 그 자체다. 정말 많은 이벤트와 기획과 협의와 충돌 그리고 끝없는 정산, 출장 등을 통해 나의 본캐도 점점 레벨업이 되어 갔다. 다행히도 게임은 점점 덩치가 커져 매머드급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지만, 반대급부로 넘쳐나는 업무로 인해 던파를 맡았던 7년간 휴가 한 번 간 적이 없었을만큼 정말 너무 업무가 믾았다. 이 고생을 누가 알아주랴.. 불행인지 다행인지 던파가 게임업계에서는 TOP 3에 드는 매출 규모로 성장해주었으나, 내가 몸 담고 있던 대기업에서는 그저 '새발의 피'였기에, 비주류 부서의 애환은 회사 내에서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 밖에서는 정말 연락이 안되고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칭호(?)를 얻었었다. 사실 대기업에서는 같은 회사여도 부서에 따라 직무에 따라 업무량은 정말 천지차이다. 아 또 회사 얘기로 빠졌네.. 미안합니다..




던파의 성공 요인이라고 하면, 하나는 '끊임없는 이벤트''피로도 시스템'이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정말이지 유저가 지칠 정도로 이벤트를 끊임없이 갖다 퍼부었고, 매번 엄청난 현물을 뿌려댔다. 물론 그 와중에 가성비를 따져가며, '최소 예산 최대 효과'라는 양아치 같은 표어와 함께 매달 각종 비용 품의서에 파묻혀 살았다...

다른 하나는 바로 피로도 시스템인데, 이것이 정말 제대로, 정통으로 먹혀든 것이 던파다. 당시 정부에서는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을 막고자 말도 안 되는 '셧다운제'를 도입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암튼 피로도 시스템이란 것이 원래는 유저의 컨텐츠 소비 속도를 늦추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인데, 풀어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하루에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시스템이다. 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은 시간을 주어 동등한 조건에서 플레이를 하라는 뜻으로 좋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루에 100만큼의 피로도가 주어지고, 누구든, 언제 접속을 하든 간에 동일한 양만큼만 플레이할 수 있기에, 반대로 그만큼 플레이하지 않으면 그만큼의 손해를 보기 때문에 유저들은 죽기 살기로 피로도를 다 쓰려고 무진장 애를 썼고, 이는 어마어마한 동접자 수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후 여러 게임사들이 던파의 피로도를 따라서 만들기도 했었다.


이러한 성공요인을 발판으로 중국에서의 초대박을 치고 명실상부 TOP 게임이 되어버린 던전앤파이터. 그 뒤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을까? 전직 던전앤파이터 퍼블리싱 담당자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이제 시작합니다. 벌써 지치네요. ㅋㅋ


-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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