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 세브란스 정형외과 주치의 선생님께서 허리 신경차단 주사 치료를 권해주셨다. 그간 먹었던 약으로는 통증이 -10% 선으로 그다지 나아지지 않아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수술은 아직 이르다.
물론 작년 말에 처음 병원 갔을 때는 아직 나이가 젊어서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지금 손대 봤자 10년 단위로 다시 나빠질 수 있어서 계속 수술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존치료 즉, 약물, 운동 등으로 해보자고 하셔서 약을 먹고 있었다. 사실 재발된다는 부분에서 수술을 망설이게 되었다. 비록 실손보험이 내 뒤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어도 말이다.
처방받은 4~5알 되는 약 중에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약이 포함되어 있어서 약값이 2개월에 8만 원 정도였다. 꽤나 비싸서 하루 3번 먹어야 하는 것을 1~2번만 아껴 먹으며 버텼다.
어마 무시한 약 뭉치와 펭수 안녕?
예약일에 맞춰 마취통증과 진료를 받고 바로 주사실로 향했다. 마취통증과 의사 선생님은 두어 번 신경차단 주사 치료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바지를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빈 침대에 앉아 기다렸다. 난생처음 입어보는 환자복이었다.(종합 건강검진 제외)
침대에 앉아서 보니 맞은편에는 젊은 여자 환자가 승모근 쪽에 초음파와 함께 주사치료를 받고 있었다.
대략 이런 느낌st
'나도 저렇게 하는 건가?, 아파 보이는데?'
신경차단 주사는 처음이라 온갖 상상으로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프면 어쩌지? 소리 질러도 되나?'
엄살이란 것이 집안 내력이었기에, 그래도 그나마 내가 젤 엄살이 없는데도 상당히 두려웠다. 난 웬만해선 고통을 참아내는 편이다. 물론 참느라 머리와 몸에 넘쳐흐르는 땀으로 인해 흠뻑 비에 젖은 생쥐 같은 꼴이 되지만 말이다.
잠시 뒤, 한 젊은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동의서에 사인을 받고는 나를 방사선 마크가 그려진 방으로 데려갔다.
'아 밖에서 하는 게 아니구나'
뭔가 웅웅 거리는 장비와 무섭게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하고 있는 침대를 보니 그야말로 괴물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 난 끝났다.'
나의 병명은 척추 신경관 협착증. 현대인들이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병인 허리병이다. 주로 디스크가 많이들 문제가 되는데, 나는 디스크보다는 신경이 내려가는 통로에 뼈와 인대가 자라나 통로가 좁아져서 신경을 눌러서 통증이 오는 협착증이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생기는 병이라 병원에서도 내 나이에는 흔한 사례는 아니라고 했다. 내 신체 나이가 노인이었다니... 아아... 아...
내 사진은 아님
침대에 올라가 엎드리자 나는 아무것도 할 수도, 볼 수도 없었다.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기에 더더욱 무서웠다. 위 사진처럼 엑스레이 같은 영상으로 보면서 신경에 직접 주사를 놓는 그런 치료였다. 내가 수술대에 올라가다니...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앗? 내 속옷!!
그런데!!! 갑자기 간호사가 엎드려 있는 나의 허리춤에 감춰져 있던 속옷을 아래로 확 잡아 내리는 게 아닌가??!!! 아????!!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악!!!!!!!!!!! 가림막이 없어진 나의 맨살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무척 당황해하고 있었다.
'아, 뭐지? 왜 벗기지? 아?? 속옷 이쁜 거 입고 올걸!! 아아!!'
민망한 속살과 부끄러운 시선처리,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섞여 희한한 마음으로 변해 묘해질 즈음,초록색의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린 덮개로 내 허리춤을 덮고는 빨간 솜으로 차갑게 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내 민망한 살에 뭐라도 덮이니 조금은 덜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한없이 빨개진 얼굴은 곧 터질 듯이 뜨거웠다.
참고로 정확한 시술 위치는 골반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살짝 위쪽, 그리고 양쪽에 주사를 놓는다고 했다.
드디어 인생 1회 차 신경차단 주사
우선 오른쪽부터 마취주사를 맞았다. 뭐 주사 바늘쯤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피 뽑는 주삿바늘도 빤히 쳐다보면서 피가 빠져나가는 걸 즐겁게 관람하던 나였기에, 주사 바늘은 늘 식은 죽 먹기였다. 참고로 죽은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죽이라면 유일하게 단연코 단팥죽이다. 삼청동에 새알심 넣어주는 유명한 단팥죽 집이 있다. 맛있다.
마취 주사 후 약물 주사 바늘을 넣는다고 하고는 마찬가지로 따끔하면서 좀 깊게 파고드는 바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들어가다 멈추고는 주사 약물을 주입한다는 말과 함께 뭔가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하고 묘한 느낌이 허리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어, 이건 아픈 건가? 뻐근한 건가? 이상한 건가? 이걸 뭐라 해야 하지?'
하는 순간 오른쪽이 끝났다고 하며 왼쪽도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진행이 되었다. 주사를 놔주는 똑 단발의 젊은 여자 의사 선생님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설명을 들으며, 나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은 주사라고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때 주사를 놔주시던 선생님이 "허리 근육이 많아서 다음엔 큰 바늘을 써야겠다."라고 뭔가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훗, 그래봤자 주사 바늘이지. 난 안 무섭다고. 난 근육맨이라고! (사실 그냥 살이다...)
그. 러. 나. 이건 나의 큰 오산, 경기도 오산이었다. 2회 차에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양쪽 신경에 약물이 다 주입된 후 주사자국에는 귀여운 곰돌이 밴드가 붙여졌고, 이동식 침대로 옮겨져 안정실로 질질 끌려갔다. 누워서 천정이 움직이는 건 드라마에서나 보던 응급실로 달려가는 침대의 모습이었는데. 뭔가 신기하며서도 재미있었다. 살짝 어지럽기도... 마취 탓인가, 긴장이 풀린 건가...
일단 주사를 맞은 직후에는 허리에 통증이 없었다. 마취 주사의덕이었을 거다. 10여분 누워 안정을 취하다가 나도 모르게잠이 들었나 보다. 간호사가 와서 이제 일어나라는 말에 정신 차려보니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코는 안 골았나 모르겠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한 달 뒤 2차 주사치료 날짜를 예약하고 출근했다.
아직은 결과가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주사 맞기 전에는 저녁마다 산책을 하거나 마트를 걸어가는데, 2분 정도(약 100미터) 걸으면 골반에 100톤짜리 무쇠 추가 날 주저앉히려 안간힘을 쓰고, 그걸 버티려는 나의 하반신은 점점 저려오면서 허벅지-무릎-종아리를 타고 뒤꿈치와 발가락까지 저림이 심해지는 방사통을 겪게 된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더 걸으면 급기야 하반신의 감각이 없어지는 심한 중증 협착증 환자였다.
오래 걷고 싶어요... >.<
주사를 맞고는 하루정도 허리가 뻐근했다. 아마도 약물의 효과였으리라.
며칠 후 걸어보니, 기존의 2분 보다는 약 2배 정도의 시간인 4~5분을 걸어야 저려오기 시작했다. 통증 없이 걸을 수 있는 거리가 두 배로 늘은 것이다.
전혀 안 아픈 걸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이 안 아프고 걷고 싶어 주사를 맞았기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주사도 15만 원 정도로 저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술이나 수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으므로 도전해볼 만했다.
2회 차 주사를 맞으면 또 2배가 될까? 아예 안 아프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맞아보고 판단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주사 치료였다. 일단, 돈이 아깝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