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영국은 파운드가 비싸서 어지간하면 안 가는데 파운드도 낮아진 마당에
파리에서 에든버러로 향했다.
저녁때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에서 자고 다음날 시내 관광을 나섰을 때
"여기다!"
싶었다.
지금까지 많은 곳을 다녔지만 에든버러가 참 좋아서 다음번 안식년엔
여기로 와서 일 년 동안 연구를 열심히 하리라 다짐했다.
에든버러는 영국의 지배를 사 백 년 가까이 받고 있는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다.
아일랜드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고, 스코틀랜드에서도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었다는
점에서 낯설지 않았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을 다닐 때면 어항 밖에서 구경하는 것
같지만 뭔가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를 가진 곳은 어항 안에 있는 기분이다.
각설하고, 에든버러 성에 올라가 왕이 다녔다는 로열 마일을 따라 걷다가 그 주변으로
발걸음을 확장해 나가는데 엘레펀트 플레이스라는 평범하다 못해 허름한 식당 앞에
조앤 롤링이 앉아 있는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앤 롤링이 그녀의 첫 책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저술한 곳이란다.
가난한 이혼녀로 난방할 돈도 없어서 동네 식당에 나와 글을 썼다는 그녀는 12번이나 원고를 퇴짜 맞은 끝에
가까스로 출판하고 영국 여왕 다음 가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별로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지만 꼭 이렇게 쓰고 싶다)
처음 출판할 땐 "을"이어서 "갑"인 편집자가 원고를 뭉텅뭉텅 잘라내서 1권이 제일 앏다는..
나는 그 잘려나간 원고가 보고 싶다.
나는 도저히 이 곳이 그곳이란 걸 믿을 수가 없어서(생각지도 못했기에, 너무 한적하기에)
그냥 지나쳤다가 그날 저녁 숙소에서 폭풍 검색을 한 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날 다시 찾아 나선 엘레펀트 플레이스
스코틀랜드 국립 도서관에서 비를 피하다 찾아 나섰더니 코앞이라..
난 왜 그녀가 여기서 글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도서관 옆이라 언제든지 자료 조사하러 들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로열 마일을 따라가면 그 유명한 경제학자,
누구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아담 스미스의 무덤이 있다고 하는데
그 근처 무덤(아담 스미스가 잠들어 있는 곳일까?)에 가서 등장인물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당장 한국에 돌아가면 도서관 옆 카페나 식당을 찾아봐야겠다. 하나 우리 집이 도서관 옆이다.
이번에는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해 보았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프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조앤 롤링이
여기 앉았을까 저기 앉았을까 가늠해 보았다.
화장실 가득히 여길 방문한 해리포터 팬들의 낙서가 보였다. 나도 한자리했다.
저 위에 힘들어도 어쩌고는 내가 쓴 게 아님을 미리 밝힘
외로움, 친구와의 우정, 부모와의 애착과 분리, 없어져야 할 선민의식, 선과 악의 대립, 내 안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 등 삶의 모든 것을 다루어낸 자리에 내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