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사사에서 본 일이다.
늙은 여자 하나가
아시아나 사무실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세계일주 항공권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세계일주 항공권으로
진짜 세계일주 여행을 할 수 있는지 좀 보아주십시오."
하고 그녀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사무실 여직원의 입을 쳐다본다.
여직원은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항공권을 자세히 보고
"좋아요."
하고 돌려준다.
그 여자는 "좋다"는 말에 기쁜 얼굴로
항공권을 받아서 가방 깊이 집어넣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하며 나간다.
그녀는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이번에는 대한항공 사무실로 찾아들어간다.
가방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항공권을 내어 놓으며,
"이걸로 정말 세계일주를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사무실 직원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항공권을 어떻게 만들었어요?"
한다.
여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럼 마일리지를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에요?"
"누가 마일리지를 길바닥에서 줍습니까?
사람들이 마일리지를 얼마나 악착같이 모으는데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늙은 여자는 손을 내밀었다.
항공사 직원은 "좋소."하고 던져 주었다.
그녀는 얼른 집어서 가방에 넣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항공권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잉크 묻은 손가락이 아시아나 항공 파일 안으로
그 항공권을 쥘 때 그녀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항공권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그리 많이 모았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녀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항공권을 가방 깊이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어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나 같은 여자에게 1마일이라도 줍니까?
10 마일리지 한번 그냥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천 원에 1 마일리지씩 모았습니다.
어떤 카드는 천 원에 1.5 마일리지도 줍디다.
또 어떤 카드는 가입하면 마일리지를 보너스로 주고요.
500마일 주는 이벤트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어요.
포인트를 마일리지로 전환도 하고요.
일 년에 사만 포인트만 전환할 수 있어요.
남편 딸 아들 마일리지도 다 긁어모았어요.
이렇게 모으는데 5년 넘게 걸렸어요."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마일리지를 모았단 말이요? 그걸로 무얼 하려고?"
하고 물었다.
그녀가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고저 세계일주 항공권을 꼭 한번 갖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모아서 발권했던 세계일주 항공권
인천-샌프란-파나마-리마-보고타-런던-빈 -이스탄불-인천
결국 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