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호가 마지막 머물렀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처음 프랑스를 여행할 때 나는 고호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방이 해바라기 밭이고 밀밭이었기 때문이다. 고호는 그냥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렸던 것이다. 그럼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걸 그리는 화가도 있냐고?
있다.
예전에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화가들은 중국의 그림을 베껴 그렸다. 중국의 산과 바위와 나무를 그렸다. 자기 눈에 보이는 조선의 산수는 하찮고, 비루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릴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조선의 산천과 사람들을 그대로 그린 처음의 화가는 누구더라...
고호도 마찬가지이다. 고호 이전까지 화가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았다. 그보다는 밥을 먹기 위해 그렸다. 귀족들에게 종속되어 초상화, 가족화, 기록화 등을 그렸다. 고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렸다. 감자 깎는 사람들, 밀 맡에서 일을 쉬고 낮잠 자는 농부들, 밀밭, 해바라기 밭을 그렸는데,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가지 않았다. 살아서는 그림 한 장 팔지 못했다.
프랑스 여행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배부른 돼지가 될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까를 논의했다. 존경하는 선배 언니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 거라고 했다. 난 좀 머뭇거렸다. 난 배고픈 건 못 참으므로. 하기 싫은 걸 하라고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것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하기 싫은 건 죽어도 못하므로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걸 선택하겠다. 뜬금없이 뭔 소린지.
여하튼 고호는 나의 favorite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번 여행엔 고호 마을에 꼭 가고 싶었다. 여러 곳에서 고호가 머물렀지만 파리 근교에 머물 계획이었으므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가기로 했다. 거기는 고호가 마지막 머물렀던 곳이다. 나에게 숙소를 제공하던 뮤리엘 할머니에게 아침에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겠다고 했더니 못 알아듣는다. 내가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고 오베르가 아니라 우베르라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프랑스인들에게 꼭 우베르라고 해야 함을 꼭 기억하시라. 우아즈는 강이름이다.
뮤리엘이 나를 뽕뚜아즈 역으로 데려다주었다. 뽕뚜아즈에 들어서자 오래된 느낌이 나서 뮤리엘에게 물었더니 중세부터 있었던 마을이란다. 나중에 오르세이 미술관에서 본 그림 중에 여러 화가들이 뽕뚜아즈를 그린 그림이 많았다. 파리 근교의 오래된 중세 마을이라 그런가보았다ㅣ 뽕뚜아즈에서 몇 정거장 가지 않아 오베르 쉬르 우아즈가 있었다.
내려서 고호 박물관에 갔더니 이런 동상이 있다. 왠지 비루해 보인다. 뒤에 화구를 메고, 손에 붓을 들고 있다.
고호의 창의성과 작품에 대한 열정 기타 등등이 나한테 옮으라고 손을 맞닿았다.
고호가 마지막 머물렀던 여관을 들러 이 교회로 갔다. 교회 옆 의자에 주황색 입은 중학생쯤 되는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옆에 세우고 앉아 있었다. 왜 학교에 안 갔는지 묻고 싶은 아줌마 오지랖이 발동했으나 참았다. 프랑스어로 뭐라고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 마을에 고호가 머문 기간은 몇 달 되지 않는데 기간에 비해 많은 그림을 남겼다. 마을 곳곳에 고호가 그린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을 그림으로 표시해 놓았다.
교회 옆길로 쭈욱 따라 올라가면 마을 뒤에 공동묘지가 나온다. 최근에 새로 생긴 무덤부터 몇백 년 전 무덤까지 같이 있는데, 고호 무덤이라고 따로 특별한 표시가 있는 건 아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동생 테오와 같이 묻혀 있다.
무덤에서 나오면 넓은 밀밭이 나온다. 그 한가운데 이 그림이 서있다. 까마귀가 나는 풍경을 그린 곳이다. 내가 갔을 때는 밀을 다 수확한 다음이었다. 하지만 그 황량함과 고독함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무덤에서 나와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리고 고호가 죽은 곳도 여기라고 한다. 자살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로 이 곳에서 고호가 권총으로 스스로를 쏘았다.
그 황량한 밀밭길을 지나면 다시 마을로 들어가는 소로가 있고, 이 소로의 시작인지, 밀밭길의 끝인지를 알 수 없는 곳에 십자가가 서 있었다. 나도 잠시 서 있었다.
뮤리엘이 뽕뚜아즈 역으로 나를 4시에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뽕뚜아즈 역으로 가는 기차가 두시 반에 온다고 하여 밥도 못 먹고 마을 한 바퀴를 돌았다. 밥을 못 먹은 건 아니고 때를 놓쳤다. 한 시가 넘으니까 마을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세시까지 쉰단다.
그래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커피 한 잔 마신 게 다다. 두시 반 기차를 타려고 역에 갔더니 옆에 헌 책방이 있다. 시간이 좀 남아 들어갔더니 별별 책이 다 있다. 그림책이 있나 싶어 찾았다.
돌아오는 역에서 사진 한 장 찍었다. 막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한 15분 기차를 타고 뽕뚜아즈 역에 도착해서 뮤리엘을 기다렸다. 역 근처를 조금 돌아보았다. 세탁소 미장원, 복덕방이 도란도란 모여서 사람들이 사는 냄새가 났다. 멋지게 차려입은 여자가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갔다. 머리 감고, 깎는데 10유로라고 써 붙인 이발소에서는 남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 있었다.
고호는 적어도 자기 눈으로 무엇을 보는지 알았고, 그것을 그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아무도 사 가지 않았다. 그가 살아생전에는. 어떤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무엇을 보는지도 모르는 썩은 동태눈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배부르게. 나는 나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은 내 눈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그걸 표현하고 알리고 싶다. 설사 배고플지라도.
그가 죽은 밀밭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황량했고, 그의 무덤은 평화로워 보였다. 나도 평화롭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