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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Feb 07. 2019

딸과 여행하기

아빠들에게 아들과 목욕탕 가기가 로망이라면

엄마들은 딸과 여행하기가 로망일 것이다.


남편이 6개월도 안 된 아들(가까스로 앉는 어린애를)을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오더니

그다음부턴 절대 같이 안 갔다.


딸아이가 수능을 

장렬하게 망치고

애태우며 기다리느니 놀러라도 가자고

여행을 떠났다.


부랴부랴 100만 원 미만 비행기표를 

검색하여 열흘 남짓 준비했다

떠나기 이틀 전까지 우리는 짐도 싸지 

않고 눈치만 봤다.

상대방이 알아서

세면도구 드라이어 챙기겠지 그러면서.


숙소 예약도 다 마치지 못하고

떠났다. 심지어 어느 구간은

이동수단도 결정하지 않은 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과 여행할 때의 특성


자는 곳과 먹는 것엔 돈을 안 아낀다.

아들과 여행할 때는

싸거나 지저분해도 괜찮았다.

런던의 기숙사가 여름방학 동안에는 

싸다기에 아들과 런던을 여행하면서

묵었는데

냄새가 냄새가 소 외양간 냄새가 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딸은 아니다. 

어떤 딸 엄마가 딸은 교통 좋고

범죄율이 떨어지는 곳(그러면 집값이 비싸진다)

에 집을 얻어줘야 한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렇다.


딸은 내 자아의 가장 연약한 부분 같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다.



그런데 이 딸x은

시큰둥하게 쫓아다닌다.

전매특허인 표정

딱히 원하지도 않았고 

딱히 좋지도 않은 표정으로

따라다닌다.


그래서 세비야 숙소 앞 맛집에서

대판 싸웠다.


거기서 난 

선글라스를 끼고 딸과 싸웠다.

서빙하던 젊은 처녀가 지나가며 흘깃거렸다.

딸x은 창피하다고 했으나

저 처녀도 엄마랑 싸울 테니 이해할 거다라고 했다.

모녀가 싸우는 건 동서고금 공통일 테니.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세비야 

한 골목에서 헤어졌다.

딸이

"그럼 우리 따로 다녀!!"

하고 돌아서 갔다.


돈 한 푼 없는 주제에

길치인 주제에 


아쉬운 건 내가 아니다.

내가 딸 걱정만 안 한다면

딸 걱정을 하는 순간 나는 을이 되고 약자가 된다.


허나 훤한 대낮에

겁쟁이 딸이 으슥한 골목으로 다닐 일도 없고

나는 을을 자처하지 않았다.


세비야 성당 옆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모녀는

한 번 더 알카사르 궁전 옆에서 

2차 대전을 했다.


나는 오십 유로 지폐를 꺼내 들고

흔들며

이 돈 가지고 이제 따로 다니라고 

외쳤다.


딸은 오십 유로는 받아 들었으나

혼자 다니기를 원치 않았다.


"같이 다니면 안 돼?"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름의 해결책은

딸과 모든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 거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산책을 혼자 하기 시작했다.

나는 딸과의 여행에서 혼자만의 추억을 챙기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나에게 좋은, 감동적인 모든 것을 

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차에 타서 

돌아다니며

**야 이것 봐 저것 봐하지 않는다

그러니 좋다


세 번째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한번 더 올 기회가 

아이에게 생기기를 바라며

그때를 위해 여행의 여백을 

남겨 놓는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딸과 다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아이와 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맛있는 타파스를 다 먹지 않는다.

아이는 친구와 남편과 아이와

자신의 삶에서 만날 다른 의미 있는 나아닌 타인과

같이 또 올 날이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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