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에게 아들과 목욕탕 가기가 로망이라면
엄마들은 딸과 여행하기가 로망일 것이다.
남편이 6개월도 안 된 아들(가까스로 앉는 어린애를)을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오더니
그다음부턴 절대 같이 안 갔다.
딸아이가 수능을
장렬하게 망치고
애태우며 기다리느니 놀러라도 가자고
여행을 떠났다.
부랴부랴 100만 원 미만 비행기표를
검색하여 열흘 남짓 준비했다
떠나기 이틀 전까지 우리는 짐도 싸지
않고 눈치만 봤다.
상대방이 알아서
세면도구 드라이어 챙기겠지 그러면서.
숙소 예약도 다 마치지 못하고
떠났다. 심지어 어느 구간은
이동수단도 결정하지 않은 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과 여행할 때의 특성
자는 곳과 먹는 것엔 돈을 안 아낀다.
아들과 여행할 때는
싸거나 지저분해도 괜찮았다.
런던의 기숙사가 여름방학 동안에는
싸다기에 아들과 런던을 여행하면서
묵었는데
냄새가 냄새가 소 외양간 냄새가 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딸은 아니다.
어떤 딸 엄마가 딸은 교통 좋고
범죄율이 떨어지는 곳(그러면 집값이 비싸진다)
에 집을 얻어줘야 한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렇다.
딸은 내 자아의 가장 연약한 부분 같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다.
그런데 이 딸x은
시큰둥하게 쫓아다닌다.
전매특허인 표정
딱히 원하지도 않았고
딱히 좋지도 않은 표정으로
따라다닌다.
그래서 세비야 숙소 앞 맛집에서
대판 싸웠다.
거기서 난
선글라스를 끼고 딸과 싸웠다.
서빙하던 젊은 처녀가 지나가며 흘깃거렸다.
딸x은 창피하다고 했으나
저 처녀도 엄마랑 싸울 테니 이해할 거다라고 했다.
모녀가 싸우는 건 동서고금 공통일 테니.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 가장
많이 상처를 주고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세비야
한 골목에서 헤어졌다.
딸이
"그럼 우리 따로 다녀!!"
하고 돌아서 갔다.
돈 한 푼 없는 주제에
길치인 주제에
아쉬운 건 내가 아니다.
내가 딸 걱정만 안 한다면
딸 걱정을 하는 순간 나는 을이 되고 약자가 된다.
허나 훤한 대낮에
겁쟁이 딸이 으슥한 골목으로 다닐 일도 없고
나는 을을 자처하지 않았다.
세비야 성당 옆에서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모녀는
한 번 더 알카사르 궁전 옆에서
2차 대전을 했다.
나는 오십 유로 지폐를 꺼내 들고
흔들며
이 돈 가지고 이제 따로 다니라고
외쳤다.
딸은 오십 유로는 받아 들었으나
혼자 다니기를 원치 않았다.
"같이 다니면 안 돼?"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름의 해결책은
딸과 모든 행동을 같이 하지 않는 거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산책을 혼자 하기 시작했다.
나는 딸과의 여행에서 혼자만의 추억을 챙기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나에게 좋은, 감동적인 모든 것을
딸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차에 타서
돌아다니며
**야 이것 봐 저것 봐하지 않는다
그러니 좋다
세 번째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한번 더 올 기회가
아이에게 생기기를 바라며
그때를 위해 여행의 여백을
남겨 놓는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을 딸과 다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아이와 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맛있는 타파스를 다 먹지 않는다.
아이는 친구와 남편과 아이와
자신의 삶에서 만날 다른 의미 있는 나아닌 타인과
같이 또 올 날이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