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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Mar 01. 2018

2016 가을, 인버네스

에든버러를 떠나 인버네스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 

아침에 한인민박을 떠나 버스터미널로 오니 이제 정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도착한 파리에서는 아들, 에든버러에서는 한인민박의 사람들과 함께였으나 이젠 정말 혼자다. 인버네스까지는 버스로 간다.


나는 버스 여행이 좋다. 천천히 이생각저생각하며 이사람저사람보며, 이풍경저풍경보며 가는 것. 구글 지도를 켜고 버스가 지도에 그려진 길을 따라 움직니는 것을 보며, 마을 이름과 풍경을 감상했다. 


북쪽으로 올라가자 점점 추워졌다.









에든버러에서 트립어드바이저로 숙소를 예약했다. 여행시즌도 아니고, 남아있는 숙소 중 핫딜을 중심으로 골랐다.


영어가 가능하고, 미국에서 간호사를 했다는 60가까운 그녀는 남편과 함께 비앤비를 운영하고 있었다. 숙소는 아주 깨끗했고, 아침으로는 스코틀랜드 음식인 블랙 푸딩이 제공된단다.


이제 이방인들 사이에서 처음 잠드는 데, 비타민을 먹다가 비타민의 딱딱한 껍데기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넘어가는 순간 까칠한 게 목구멍을 긁었다.


순간 죽는구나. 했다. 이역만리에서 한국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어쩌나 하는 생각이 전광석화의 속도로 지나가며 동시에 허리를 굽혀 혼신의 힘을 다해 '칵'하고 내뱉었다. 다행히 껍데기가 나왔다.  오, 살았다!


아침에 비앤비 숙소를 나와 동네 구경에 나섰다. 인버네스를 택한 이유는 '아웃랜더'에 미친 내가 제이미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가을연가의 배용준을 찾아 한국까지 와서 깍깍대는 일본 아줌마를 탓할 수 없다. 내가 딱 그렇다. 아웃랜더 첫 장면인 클레어가 생활용품점 쇼윈도에서 꽃병을 보는 신을 재생해 보리라. 

알고 보니 인버네스는 네스호수가 있는 곳이다. 어렸을 때 네스 호수에 괴물이 산다는 걸 읽은 기억은 있으나 네스 호수가 인버네스 근방인지는 몰랐다. 이 강물이 네스 호수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길을 가다가 성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마침 일요일이라 미사가 있었다. 미사는 세계 어느 나라나 같은 순서로 진행되므로 좋다. 

저녁이 되어 다시 집에 도착했다. 아침과 빛이 다르다. 동네를 돌며 구경을 했다. 저 마주 보이는 빨간 문을 가진 집의 왼쪽으로 길이 나 있다. 그 길로 내려가면 인버네스 시내다. 

밤이 되었다. 마침 보름달이다. 보름달만 보면 환장하는 나는 전생에 늑대였나 보다. 새벽에 깨어 저 보름달을 보았다. 진짜 혼자다. 행복하다.

아침에 일어나 버스터미널로 가서 여행할 곳을 찾았다. 대략 여기쯤이 관광지인 듯싶어 버스 표하는 아가씨에게 정류장  이름을 대며 표를 달라 하니 거기는 왜 가느냐고 한다. 관광하러 간다고 하니 고개를 갸웃한다. 거긴 아무것도 없고 여길 가란다. 그러면서 표를 하나 준다. 고맙다고 하고 받아 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내가 원래 사려고 했던 곳을 보니 진짜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준 표에 찍힌 정류장에 내리니 오래된 성이 하나 있다.

성 구경을 시작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시켜준다. 사진의 창문에 슬라이드가 커튼처럼 드리워지고 거기에서 영상이 나온다. 영화가 끝나면 커튼이 젖혀지고 저 풍경이 나온다. 


원래 기독교가 전해지지 않은 야만의 시대에 한 신부가 기적을 행하고 기독교를 전한다. 기독교를 처음 받아들인 이 동네 유지가 저 성을 짓는다. 이 성을 누가 와서 침략하고 어쩌고 하는 역사다. 

폐허가 된 성이 주는 느낌이 잇다. 이 캐슬 이름이 뭐더라. 어커트 캐슬? 구글 지도를 찾아보니 찾아보니 맞다. 호수라기보다 바다 같은 네스 호 주변의 폐허가 된 성. 날씨도 좋고,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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