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파리 인아웃 비행기표와 에어비앤비의 파리 근교 아들아이 학교 근처의 어느 개인실 5박만 예약하고 갔어요. 한국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불가리아, 루마니아로 갈지 영국으로 갈지 정하지 않고 단지 비수기라 그냥 워크인 해도 되는 숙소가 있겠지 하면서요.
파리에 도착하니 아들아이가 나와 있더라고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 없이 아이 뒤를 따라 버스를 타고 에어비앤비 숙소로 갔어요. 할머니 혼자 사는 곳이더군요. 할머니 이름은 뮤리엘 다행히 영어가 내 수준이랑 비슷해서 마음이 편했어요. 영어가 너무 유창하면 쫀다는.ㅋㅋ
노랑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뮤리엘은 네가 두 번째 코리안 손님이다 그러면서 반겨주었어요. 아침마다 차랑 크루아상, 빵, 직접 만든 잼, 버터 등을 내어주며 내 앞에 앉아 이야기를 했어요. 쿠바에서 30년을 살았다고 하고, 남편은 저세상으로 떠났다고 하고 대학 들어간 손녀가 있고, 아들 딸이 반경 20킬로 내에 살고 있대요.
미국의 타운하우스 같은 곳에서 방 두 개 중 하나를 손님에게 내어주었어요.
매주말 파리 가는 기차가 파업을 해서 근처 기차역으로 나를 데려다주는데 어느새 귀신같던 머리를 틀어 올리고, 빨간 루주를 바르고 파란 트위드 재킷을 바르고 나오는데 프렌치는 프렌치더라고요 멋 부린 모습이.
이 할머니가 첫 번째 코리안 손님이었다는 한국 청년에게 들었다며 니네 나라 젊은 남자들은 군대에 강제로 가야 한다며? 하고 물었어요. 그래 내 아들도 군대 갔다 왔어. 그날 나는 울었어. 아주 비극이야. 어쩌고 하면서 말을 이어나갔어요.
세 번째 날인가 토요일이 되니 음식을 만들더라고요. 만두처럼 생겨서 '라비올리 만들어?'하고 물었더니 아주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프랑스 음식인 뭐라고 하는데 그건 까먹었ㄱ, 한국에도 비슷한 음식 있어 만두라고 하니까. 내일 손주들 만나는데 가지고 갈 거야 하더라고요.
다음날일 일요일 아들이랑 같이 간 프랑스 식당에는 3세대가 만나서 식사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아마도 주말에 3세대가 만나 밥 먹고 이야기하는 게 이들이 사는 방식인가 봐요.
며칠 뮤리엘의 삶을 보니 나중에 나도 늙으면 저리 살겠다 싶더라고요. 혼자서 살다가 주말에나 아이들과 손주들 보러 나서겠지. 애가 멀리 살면 어쩌나, 나는 뮤리엘처럼 음식을 잘 못하는데 식당에서 만나 사줘야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들대요.
하루는 아침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이 그리워?'하고 물었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very much'하기에 정말 남편을 사랑했구나. 그러니까 넌 그렇지 않냐네요. 난 말문이 턱 막혔죠. 한참있다가, 그리 그리워할 것 같진 않아.라고 대답했어요.
뮤레일이 왜? 하고 묻길래, 남편을 사랑해서 사는 게 아니거든. 하고 대답하니, 단박에 이혼하려고 한 적 없어?하고 물어요.
한국에선 안 사랑한다고 이혼하진 않아, 이혼하려고 한 적 있는데 아이들이 울어서 그만뒀어. 뭐 이런 이야길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툭 났어요. 나도 당황하고 뮤리엘도 당황하고.
갑자기 뮤리엘이 너 여기서 프렌치 러버 찾아야겠다 하기에 막 웃으면서 I hope so!
그다음부터 뮤리엘은 저녁때 나만 보면 프렌치 러버 찾았냐고 묻고 난 못 찾았다고 그러고,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야 된다고 하고.
그 이후 제 여행은 스코티쉬 보이프랜드도 못 만들고, 잉글리시 러버도 못 찾고, 다시 들른 파리에서 프렌치 러버도 못 만나고, 결국 코리언 허즈번드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ㅠㅠ
뮤리엘의 정원
여행이란 게 아는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이야기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게 하는 거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