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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Sep 19. 2019

담장

담장을 처음엔 아래 네 단만 쌓았다.

그러면 멋있을 것 같았다.

경계라는 심리적인 사인만 주고 들여다 보고 내다 볼 수 있어서.


그렇게 쌓았더니 

너. 무. 하. 다.

다 들여다 보인다. 


사실 여긴 다 담으로 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골목을 오고가는 동네분들이 

왜 남쪽으로 문을 내지 않냐고 이구동성이다.

우리집은 북쪽이 현관이고

우리나라에는 보통 남쪽으로 문을 낸다.

동네 평화를 위해 남쪽에 출입구를 내기로 했다.

문도 없이 그냥 뻥 뚫어놓기로. 


인터넷에 찾아보니 담이 낮아야 오히려 도둑이 덜 든단다.

오가며 다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네 단짜리 담을 내고 집에 들어와서 보니

도저히 살 수가 없다.

사생활이 없는거다.

그래서 다시 네 단을 더 쌓기로 했다.


어떻게 쌓을까

현장소장님과 그 사모님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보이지 않게 큐블럭을 뒤집자고 했다.

좋은 의견이라 뒤집기로 했다. 눈높이에서.

또 다 쌓지 말고 담이 그리 필요없는 곳에서는 

단계적으로 담을 내리자고 했다.


그런데 지그재그로 뒤집어 놓으니 이상하다.

차라리 위에서 두번째 세번째 줄을 다 뒤집어 놓을걸.

그러나 이미 늦었다.

어느 어르신이 이미 공사를 하고 가셨다. 


이제 저 담위에 우체부가 

우편물을 놓고 간다.


발굴지도를 보니

천년전에도 이 집은 북쪽에 문이 있었다. 

도로를 북쪽으로 끼고 있었는데

희안하게도 앞쪽에도 출입구가 있다.

결국은 천년전처럼 앞뒤로 출입구를 다 낸 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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