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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Nov 30. 2016

사소한 경험이 삶에 미치는 영향

다른 카페에 썼던 글입니다.

그래서 야자체입니다. 구어체 문어체는 알아도 야자체는 모른다 하시는 분은

읽어보시면 야자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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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한 장면이 사진처럼 동영상처럼 뇌리에 꽂히는 경험을 한다지

누군가는 그걸 뭐라고 명명했을 법도 해. 적당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아. 누미노제?

검색해 보니 이것도 아니야. 누구 유식한 양반이 한 푼 보태줘.


비 오는 날이면 가끔가다 83년도 23호관인가가 생각나.

심리학 개론인가 수업을 듣는데 대형강의실이었어. 자연대 강의실이었는데..

강의실엔 무대가 있었고 무대 위엔 피아노가 한대 있었어, 그 뚜껑 달린 피아노.


비가 와서 차가 막히는지 강사가 안 들어오고 웅성웅성하며 있는데

어떤 남학생이 갑자기 무대로 올라가 피아노 앞에 앉더니 연주를 시작하는 거야.

아이들은 '우와'하고 나는 그 피아노곡을 들었어.


무슨 곡인지 모르지만 참 좋았어. 

옆에서 빗방울 변주곡이라고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서야 

곡의 제목을 알았지. 

상상해봐. 비 오는 날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는 남학생을...


난 그때 결심했어.

아들을 낳으면 피아노를 가르치리라.

피아노 잘 치는 남자랑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를 배워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들을 낳으면 피아노를 가르치겠다니 참 뜬금없지 않아?


법대생에게 차인 내 친구는 결심했지

아들을 낳으면 법대를 보내리라.

그 아들은 경영대를 갔어.


그래서 난 아들을 낳았고 학교에 들어가자 피아노를 사고 피아노를 가르쳤어.

레슨비 엄청 쏟아부었지. 언젠가는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하겠지 기대하며.

아들놈은 체르니도 벅찼어.


그러다가 미국 가기 전에 미국 가면 오케스트라나 밴드를 해야 한다고 해서

클라리넷으로 급 갈아탔지.


첫 레슨이 끝나자마자 클라리넷 선생님이 말했어.

"이 아이는 천부적입니다."

나는 감격했지. 

그리고 프러포즈하는데 피아노보다는 클라리넷이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또 낫겠다는 생각도 화살 스치듯 잠깐 했지.

프러포즈받을 여자는 따로 있는데 내가 웬 상관인지...


아이는 클라리넷을 다행히도 좋아했어.

고2 때까지 오케스트라 활동도 하고.. 상도 받았어

대학 들어가서도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하고

지금 군악대에서 클라리넷 연주해.


그 비 오는 강의실에서의 사소한 경험이

내 아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네.


그 남학생은 알까? 

자기의 사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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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한테 전화를 받았어.

군대에서 연주 연습으로 전투 연습을 대신하는데

토요일은 연습도 아닌데 혼자 연습하다가

행복하다고 느꼈대.


그 힘든 군생활에서 행복하다고 느꼈다니,

그리고 그 행복을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알게 되는

통로를 가졌다니 어미로서도 행복했지.


그래서 아이에게 악기 시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지. 본전 뽑고...

그래 나 본전 찾는 여자야.


본전 찾은 거 맞지?

아름다움에 대한 경험이란 게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

우리는 그걸 예술이라고도 하지.

개똥철학 더 나와서 밑천 드러나기 전에 고만 쓴다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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