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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안녕~

by 발광머리 앤


중고등시절 주말의 영화를 보았다.


나폴레옹에 관한 영화였는데


첫사랑 데이지에 관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고향에서 사랑했던 데이지,


야망을 따라 고향을 떠나고,


몰락후 데이지를 다시 만나는 걸로 끝났다.




그때 내 머리속에 시골처녀, 데이지가 각인되었다.


나폴레옹이 데이지를 떠나지 않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까?




마당을 갖게 된 첫해


씨앗을 구해다 뿌렸는데 일순위가 데이지였다.


게으른 나는 뿌릴 때


이름을 써놓고 구역을 표시하는게 귀찮아


"꼭 기억하리."


맘먹지만 늘 잊어버린다.


싹이 올라와도 이게 내가 뿌린 건지


어디서 굴러들어온 잡초인지 헷갈린다.


물론 그 둘을 구분할 능력은 없다.




어느 구역에서 뭔가가 많이 났는데


일년동안 꽃이 필 생각도 안한다.


꽃마당에 사진을 찍어 올렸더니


'데이지'란다




첫해는 허탕치고 겨우내 푸릇푸릇하다가


이듬해 봄이 되자 막 키가 큰다.


첫해 겨울에 마당이 너무 척박한듯하여


데이지를 일부 뽑아 여기저기 옮기고


이사람저사람 가져다 주고


드러난 맨땅에 깻묵도 심고


유명한 교리김밥에 가서 달걀 껍데기를 얻어다


묻었다.




어느 사람에게 데이지 좀 주랴?고 물었더니


자기는 데이지는 안 심는단다.


너무 퍼진다나


이때 내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그러고 보니 꽃마당 데이지 사진마다


엄청 번져서 잡초조차 이기는 모습이 생각났다.




드디어


데이지가 피었다.


장관이었다.


바로 이런 사진







KakaoTalk_20210515_214742021_01.jpg?type=w1600




신이 나서


이사람 저사랑 꺾어다 주었다.


커피컵에 담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가져다 주었다.


심지어 은행에 가는데도 가져다 뱅커에게 주었더니


와이프가 좋아할 거라며 기쁘게 받는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


진딧물이 끼기 시작한다.


역시 벌레가 기어다니는 매화 옆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벌레가 보이면 무조건 잘라다 버렸다.


사진의 저 구역 데이지부터


좀 무성하다싶으면 베어다 마당구석에 쌓아 놓았다.


해가 잘 들고 원래 있던 구역에서부터


옮겨 심고 좀 그늘진 구역까지 차차 한군데씩




드디어,


척박하고 휑한 내 정원을 꽉 채워줬던


데이지를 오늘로 다 처리했다.


일부는 완전 뽑아내고 작약을 심고,


작년에 직파하여


올해 몸집을 좀 불린 아이리스를 배치했다.


그러면서 내 정원엔 더 다양한 꽃과 나무로


가득찰 것이다.




데이지가 사라진 정원이


허전하긴 하나 아쉽진 않다


내년엔 올해보다 데이지가 적을 것이다.


나도 나폴레옹처럼 데이지를 차츰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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