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을 지나는데
마침 장날이어서 장구경을 했다.
언양 장은 2일 7일이다.
아주 작고 귀여운 노란 고무신을 시작으로,
5만원짜리 개다리 하나, 굼벙이, 개구리 다리 말린 것,
심지어는 호랑이 고추까지 없는게 없다.
얼마 안 있어
우연히 티비에서 언양장에 관한 한시간짜리 프로그램을 했다.
그냥 흘려 보았던 언양장에 내가 모르는 스토리가 숨어 있었다.
50년 된 대장간, 근동에 이거 하나라고 했다,
소한마리랑 혼자 살며 텃밭에서 고추니, 콩이니
거둬서 장날이면 들고 나오는 할머니(카메라가 이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찍었다. 허리가 꼬부라져 거의 기다시피하며 밭을 돌보는 할머니,
콩이 안 팔리고 고대로 그냥 들고 집으로 오셨길래
카메라맨이 어쩌냐고 하니까 손주들 명절에 오면 주면 된다시는 할머니,
버스 시간표도 볼 줄 몰라 동네 사람을 곁눈질하며
버스 정류장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세월아네월아 버스가 늦게 오든,
하루에 동네까지 가는 버스가 몇 대 안되든 관계없는 할머니,
좀 늦었다고 골목길에서 더 골목길로 밀려난 할머니
(이 모든 할머니가 사실은 한 분이시다),
만물상 아저씨, 목청 좋은 아저씨...
언양장을 다시 가봐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 날 잡아 딸아이와 언양장에 나섰다.
처음 언양장에 갔을 때는 안가던 골목길로 할머니들을 찾아 나섰다.
골목골목에 할머니들이 좌판을 펼치고 있었다.
나는 마늘도 사고, 콩도 사고, 고구마 줄기도 사고
이것 저것 사는데 딸아이가 팔을 잡아 끈다.
"엄마 한 할머니한테만 사지 말고 골고루 사줘야 해."
나는 여기저기 다니며 가격 묻는 것도 귀찮아
한 할머니한테 이것저것 다 사고 있는 중이었다.
딸아이의 마음이 고와서
그 다음부터는 사이 좋게 한 할머니한테 하나씩만 사는 규칙을 정했다.
그리고 반찬가게를 발견했다.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고 반찬을 만든다는 인근에서 유명하다는 반찬가게다.
거기 갔더니 경상도 음식을 많이 판다.
경상도로 이사와서 처음 본, 콩나물 조린 것,
콩잎 삭힌 것(나와 같은 충청도 출신인 형부와 사는 언니에게 콩잎 삭힌 것을 보냈더니 형부가 이건 썩은 깻잎이라고 했단다. 내가 미국까지 썩은 깻잎을 보냈을라고..)
등등
콩잎 삭힌걸 달라니까
파는 아가씨가(젊은 아가씬데 기특하게도 엄마를 도와 장사를 한다)
냄새 좀 날거라고 한다.
경상도에서 산지 어언 16년,
나도 그동안 콩잎 삭힌 것 많이 먹어봤는데 무슨 말씀 하면서 사왔는데,
이건 경상도로 이사온 이래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콩잎을 입에 넣으면 걸레를 입에 넣은 것 같은 맛이 난다.
아니면 소외양간 냄새라고도 할 수 있다.
난 한두잎 먹고 포기했는데 내 사랑하는 딸 여정이는 잘 먹는다.
그래서 여정이에게 너 조선사람 다 됐다고 하니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지
왜 조선사람이냐고 한다.
반찬을 사러가면 농촌 노총각인지 뭔지 모르지만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는 나이든 아저씨들이 반찬을 사 간다.
아이 손 잡고 온 젊은 엄마들도 있고.. 반찬가게 옆에는 식혜를 파는데 어제 갔더니 식혜 옆에 호박죽을 파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집에서는
언제나 돼지 족발을 건져 올리고 있다.
시골장이라 계절에 따라 가지고 나오는 물건이 매번 다르다.
한번은 밥에 놓아 먹을 콩을 사는데 처음 보는 콩이라
이게 뭔 콩이냐고 했더니
도저히 못 알아들을 진한 사투리를 쓰시며
콩 이름을 가르쳐 주시는데 몇번 되묻다가
그냥 알아들은 척 하고 왔다.
이제는 콩은 다 들어가고 고추가 대세다.
이제 언양장에 이어 남창장도 개척했다.
남창장은 바다가 가까워서 해산물이 많고, 우시장도 가까워서 선지국이 유명하다
고 인터넷에서 말해줬다.
추석 담날 갔더니 장이 안 섰다. 해산물가게가 두집 있었고,
선지국밥집도 두 집 열었다.
아들이랑 (나의 사랑하는 딸이 학교에서 놀다가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했다)
내장국밥(분명히 선지국을 주문했는데 내장국밥을 준다.
그러나 요즘 나의 기억력 뿐만 아니라 머리와 입이 일치하지 않는 노화현상인지 뭔지 모를 증상을 가지고 있어서 차마 나는 선지국밥을 시켰으니 바꿔주세요 라는 말이 안 나왔다)을 먹고 장어를 사다 고추장 양념을 해서 구워 먹었다.
언양장 담 날이 남창장이라 오늘 또 갈거다.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된 선지국을 먹고 햅쌀을 사올거다.
친구가 좋다고 하는 속청도 살거다.
가을에 놀이 삼아 일주일에 한번씩 오일장을 돌아다녀 볼까하고 인터넷에서 경남 오일장을 검색해서 잘 정리한 후 바탕화면에 저장해 놓았다.
PS: 이 브런치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글이 트루 디텍티브, 조인성 안시성, 언양장이기에
언양장을 검색해서 오시는 분(특히 장날이나 장날 전에 많아요)
을 위해 드리는 몇가지 팁
공용 화장실 앞에 있는 큰 고깃집 있어요. 거기 고기 싱싱하고 싸고 좋아요
친절보다는 전문적인 응대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창장 언양장 울산 근교 장을 통틀어 고깃집 추천 1순위입니다.
그리고 어디에서 사도 상관없지만 장날마다 기름짜는 기름집 있어요
국산깨도 있고 중국산깨도 있으나 방금 짜서(특별하게 짜는 기름집도 잇다고 하나 어딘지 모름)
병에 넣어 파는 기름집에서 참기름 꼭 사세요.
집된장도 있어요 떡집 옆에서 엿기름, 고춧가루 등등 파는데 잘 보면 옹기에 유리 뚜껑 덮어놓고
된장 팝니다. 그거 사서 찌개, 쌈장 만들어 보세요. 맛있어요.
연잎밥도 팔아요 얼려놓고 파는데 위치 설명이 어렵네요.
가끔가다 혼자서 집에서 밥먹을 때,
그런데 찬밥먹지 않고 우아하게 먹고 싶을 때
늦게 들어온 남편 꼴보기 싫어서 밥은 줘야 하나 반찬 꺼내놓기도 싫을 때
하지만 저 인간 마음에 빚을 안겨서
나한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때 연잎밥 데워 놓습니다.
다시 쪄야 하지만 미리 꺼내 놓고 녹여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되요.
연잎밥 양도 많고 위에 은행 잣 등등 넣은 것도 넉넉해요
여느 식당보다 훨씬 나아요.
어딘지 알고 싶으면 밑에 댓글달아주시면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