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개학을 했다.
개학 전 일주일부터 왼쪽 어깨가 아프고, 편두통이 왔다. 개학을 하니 거기에 덧붙여, 오한이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늘 개학할 때마다 경미하게 있는 증세였지만 올해는 더 심하게 느껴졌다.
대학원 시절, 어린아이를 둔 선배들은 개학을 앞두면, 아이들도 같이 아프다고 했다. 아이들도 다 크고, 이제는 개학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개학은 아직도 힘들다. 아니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나도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개학이 왜 이리 힘든가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학생들을 점점 이해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연이어 안식년을 마친 후, 수업 시간에 만난 학생들은 놀라웠다. 15명 정도의 세미나 수업에서 교수가 앞에 있는데도, 의자 위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었다. 앞뒤 잴 겨를도 없이 ‘다리를 내리라’고 했더니, 천천히 다리를 꼬고 앉았다. ‘다리를 풀고 똑바로 앉으라’고 했더니 아주 기분 나쁜 표정을 했다. 그 외에도 3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마주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코로나로 학생들이 대학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선배로부터 전해지지 못해서일까?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지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학생들과 나의 괴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내 아이들보다 학생들이 나이가 더 어려서, 학생들의 행동을 아이들에게 물어보기도 어렵다.
또 다른 이유는 대학 구조조정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속했던 단과 대학이 해체되고, 다른 대학으로 편입되었다. 나이가 십 년이라도 젊다면 새로운 대학에 뿌리내리고 적응해 보겠지만, 은퇴를 얼마 안 남긴 시점에서는 없는 듯 존재하다가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되도록 회의에는 빠지고, 설사 참여하더라도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
심지어 이사까지 해야 한다. 이사해야 한다는 대학 본부의 결정을 전공주임으로부터 전해 들은 날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번 여름, 불용품과 망실용품을 처리하며 이사를 준비했다. 내가 부임하기도 전에 구매했던 용품부터 최근에 구입한 용품을 정리하며 마음이 아주 복잡했다.
그러니 점점 은퇴를 기다리게 된다. 이번 학기에 개학하면서 앞으로 몇 번 개학을 맞이해야 은퇴할지 손꼽아 보니, 딱 열 번이 남았다. 이제 열 번만 개학을 하면 은퇴다. 많이 남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열 번의 개학을 잘 맞이하고 싶지만, 몸이 아프다.
아프면서 나를 돌보고 살펴보았다. 약도 먹고, 병원에 가서 주사도 맞았다. 몸이 회복되고 정신이 돌아왔다. 나에게는 아직 열 번의 개학이 남았고, 이 시간을 의미있게 지내고 잘 마무리하고 싶다.
그러면서 첫 번째 든 생각은 이렇다. 학생이 없으면 선생도 없다. 학생이 이렇다저렇다 불평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것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각 세대가 완전히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갖는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자라왔고,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배워왔을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수평적 소통에 익숙한 세대에게 위계적 공간의 예의란 얼마나 낯설고 억압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요즘 학생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살아온 세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찰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그른가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한 배움이 일어나는 공간을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구조조정으로 흔들리는 대학을 바라보면서도 마찬가지다. 한강 이남의 사립대학 중 마지막까지 존재했던 철학과가 우리 대학에서 마침내 사라지고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100만 도시의 하나밖에 없는 종합대학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과가 입학 인원과 관계없이 존재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도 지쳤다.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속한 대학에서도 그렇고, 학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걸 견딜 시간이 나에게는 얼마 남지 않았고, 그다음은 후배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여기까지 하고 물러나겠다는 내려놓음이 나를 쉬게 한다. 그냥 나에게 주어졌던 기회에 감사할 뿐이다.
남은 열 번의 개학을 다시 생각해 본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고 했다. 단순히 견뎌내야 할 시간이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포함한 나머지 삶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잃을 것이 없다는 자유로움이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내 몸이 보내는 신호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과정일 수도 있겠다. 개학의 아픔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때의 산통처럼, 더 나은 교육을 위한 변화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를 놓는 일이다. 지식의 전달을 넘어서, 앎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그 다리는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매 학기마다, 매번의 만남마다 우리는 새로운 다리를 놓는다. 그 과정에서 교수도 학생도 함께 성장한다.
열 번의 개학이 남았다. 이제 그 시간들을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으로, 부담이 아니라 감사로 맞이하고 싶다. 진심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은퇴하고 싶다.
어깨의 아픔도, 편두통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과 나눈 진정한 배움의 순간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시간들, 함께 성장해 나간 기억들이야말로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