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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 터진 날

by 발광머리 앤

저녁 여섯 시를 조금 넘긴 시간, 볼 일을 마치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경주 로컬 커뮤니티 단톡방 메시지가 삼백 개를 훌쩍 넘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눌러봤다. 황오당 사장님이 '잘못된 주문에 치즈빵이 100박스가 와서 13000원짜리 빵을 만원에 할인판매를 한다'는 다급한 외침과 그에 응답하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실 나는 황오당 빵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경주로 이사 온 후, 가게 앞을 몇 번 스쳐 지나간 게 전부였다. 황남빵은 알아도 황오당 빵 맛은 몰랐다. 가게 앞에 치즈로 속을 채운 그림이 있었으나, 단팥대신 치즈는 왠지 이상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놓치면 안 된다.”는 직관적인 결심과 느낌. PC통신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공구 DNA’랄까. 누군가 ‘떨이’라고 외치면 왠지 양잿물도 마실 기세가 되살아났다.


황오당 사장님은 톡으로 주문을 받아 배달을 하고, 나머지 살 사람은 아덴 빵집 사장님 가게에 빵을 가져다 놓았으니 거기서 가져가라고 한다. 집으로 가던 길을 틀어 용황동으로 가는데, 퇴근 길이라 길이 막힌다. 톡방에는 이제 몇 박스 안 남았다고 하니 마음이 조급했다. 맛도 모르면서.


가는 길에 누군가 내가 황오당 사장님인 줄 알고 내게 배달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사장님이 아니라고하니 미안하다고 한다. 프로필을 보니 초등 아이가 있다. 사는 동네가 돌아가는 길 일 듯 하여, 사는 곳을 물었는데, 돌아가는 길이었다. 너무 친절해지려는 나를 자제해야 했다.


아덴 빵 가게에 뛰어 들어가 바닥에 놓여있는 박스를 보니 아직 몇 통 남았다. 두 통 집어 들고 황오당 사장님 계좌에 입금했다. 운 좋게 막차를 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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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자를 열어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치즈가 달콤하면서도 짭짤했다. 아주 맛있었다.

“아, 이 맛을 모르고 살 뻔했구나.”


조금 뒤, 단톡방에 “완판”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돌아와서 남편에게 한 개 빈 빵상자를 넘겨 주었다. 아주 잠깐 동안 도파민이 폭발했다. 단톡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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