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로 가기 전에 모스타르에서 2박을 하기로 했다.
모스타르에 가기 위해 국경선을 넘었다.
도로표지판이 두 가지 언어로 되어 있는데 한 언어가
페인트로 지워져 있다. 길도 울퉁불퉁하고 뭔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
모스타르로 가는 길에 과일 노점상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리 없다
내려서 과일을 샀다. 장도 좀 봤다.
누나와 남동생들이 나와서 팔고 있었다
밀리한테 도로표지판이 왜 지워져 있냐고 했더니
보스니아 내전 전에는 두 언어를 공식적으로 다 사용했는데
내전 이후 한 언어는 다 지워졌다고. 아직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었다.
모스타르에 들어서니 아직 총알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번화가 도로에도 폭탄 맞아서 부서진 건물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우리가 묵은 곳은 이슬람 지역이었는데 번화가에 있었다.
바깥에서 부서진 도시를 보고 방안이 어떨까 했는데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에어컨도 빵빵했다.
쾌적하기보다는 마음이 불편했다.
전쟁에도 돈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고 이들은
자본을 가지고 이 땅에서도 돈을 벌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집 안과 밖의 격차가 너무 심해
차라리 불편한 숙소면 마음은 더 편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잠 자고 일어났더니 무슨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일행은 다 시내 구경을 가고
나랑 최 선생님만 남아서 여러 가지 개인사를 나누었다.
여행은 마음을 풀어지게 한다.
한국에서라면 나누지 않았을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웠다. 모스타르는 분지여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해가 지자 저 멀리 언덕에 십자가가 환하게 빛났다
건물에 박힌 전쟁의 상처
모스타르를 가로지르는 네레트바 강
전쟁은 여성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여성의 성기 부분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전쟁 강간 살상은 한 세트다.
도시 곳곳에 한날 죽은 묘비가 줄줄이 서 있는 묘지가 있다.
내 나이 또래의 청년들이 내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삶을 꾸려갈 때
전쟁으로 죽었다. 살았다면 내 나이였으리.
모스타르의 스타리 모스트
전쟁 전에는 이슬람 지역과 가톨릭 지역으로 나뉘어 사이좋게 살아갔으나
전쟁 중 파괴 었다가 국제적인 도움으로 다시 건설된 다리
다리 구석에 아주 조그맣게 1993을 잊지 말자고 적혀있다.
나도 1993을 잊을 수 없다. 결혼으로 신세 망친 해 이므로.
그러나 그 삶조차 가지지 못한 내 또래의 청년들이 여기서 죽어갔다.
내 투정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