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 자고 떠날 때는 몰랐다. 동행이 화장실을 어떻게 쓰는지. 단지 알 수 있는 건 바쁜 아침에 화장실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었다. 변비가 있는지 어떤지 알 순 없지만 바쁜 아침에 화장실을 오래 쓰는 것을 언뜻 알아차리기는 했다.
이태리 남부를 여행할 때는 한 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숙소를 예약하다가 여기저기 경로를 정하기가 귀찮아서 마지막 7일을 한 곳에 머무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 달을 유럽에서 돌아다닌 아들아이가 말하길 어떤 형은 런던에서 일주일, 파리에서 일주일, 로마에서 일주일 그렇게 여행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묻기를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었냐고 했더니 첫 유럽여행이었다고 한다.
보통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은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첫 유럽여행에서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고 하니 생소했다. 여하튼 나도 귀차니즘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물(그래 봤자 일주일이지만)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일주일을 머물며 네 명이 하나의 화장실을 공유하다 보니 상대방이 더 자세히 보였다. 나도 대학 때 후배랑 놀러 갔다가 부끄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후배가 화장실을 쓰고 나오더니 ‘언니는 화장실 쓰고 나서 그냥 나오느냐?’고 물었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샤워하고 배수구에 머리카락을 그냥 두고 나왔으며 욕조에 물을 튀겨놓고 그냥 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배수구에 머리카락이 걸려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화장실 청소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집도 아니고 타인과 같이 쓰는 화장실에서 들어가기 전과 유사한 상태로 나와야 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집안 청소가 내 일이 된 이후부터는 당연히 배수구의 머리카락을 건져 버리는 것도 내 몫이 되었고 욕조랑 세면대, 변기 청소까지 떠맡아하게 되었다. 남편이 욕실을 쓰고 나오면 세면대 반경 일 미터에 물이 튀어 있었다. 변기를 쓰고는 시트를 올려놓는 건 일상사였다. 그럴 때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다른 사람(아무리 남편일지라도)의 머리카락을 배수구에서 집어 올리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남이 쓴 세면대나 욕조에 튄 물을 보는 건 유쾌하지 않다.
그런데 마이 오리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 벌어졌다. 사실은 볼로냐에서부터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는데 마이오리에서 짜증이 극에 달한 것 같다. 더구나 일주일 동안 머무는데 룸 클린이 한 번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날마다 화장실 청소를 해 주고, 시트랑 수건을 갈아주는 곳에 머물렀다면 이런 갈등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날 리셉션에 방청소와 수건을 부탁했더니 추가 차지를 요구했다. 이 돈을 아끼려고 일주일간 청소를 우리끼리 해야 했다. 같이 여행하던 동행이 화장실을 치우지 않고 나왔다. 물을 흘려서 바닥이 철벅거려도 그냥 나온다. 배수구에는 머리카락이 그대로 있다. 하루는 내가 좀 깨달으라고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나왔는데 금방 원래대로 되어 있다. 깨닫는 바가 없는 모양이었다.
힘든 일주일이었다.
만약 다시 이런 상황이 된다면, 이야기 할 것 같다. 적어도 다른 사람과 살며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