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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Mar 28. 2017

8. 같이 사 먹기, 해 먹기

전 어렸을 때 엄마가 밥상머리 교육을 심하게 시켰어요. 앞니로 숟가락을 긁으며 먹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렇게 먹지 말라고 말로 하면 될 걸 숟가락을 입에 넣기를 기다렸다가 긁으면서 빼면 손으로 탁 쳐서 밥알이 뿔뿔이 흩어지고 주워 담게 하곤 했어요. 어린 가심에 한이 맺혔습니다.


어른이 먼저 드신 후 먹기, 밥 먹으세요 식사하세요 그러면 혼나고 꼭 진지 드시라고 해야 하고 맛있는 거 연달아 두 번 먹으면 혼나고, 소리 내서 먹으면 혼나고 여하튼 엄청 혼나면서 밥을 먹었네요. 밥 먹는 뭐는 건드리지도 않는다는데. 다른 것으로는 혼난 기억이 없는데 식탁에서 유독 그랬어요.


크로아티아 여행할 때는 나는 몰랐는데 한 분이 '김 선생(그냥 김여사나 같은 겁니다)이 맛있는 걸 혼자 다 먹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한 요리에 새우가 일곱 개 나왔으면 하나씩 골고루 먹으면 될 걸 김 선생은 하나 이상 먹는다는 거죠. 맛있는 음식을 제일 많이 먹고 언제나 제일 가운데 앉아서 먹는다는 거예요.


모스타르 번화가의 식당(강추함. 이름은 사라방드?)


그러고 보니 그렇더군요. 최 선생이 우스개 소리로 김 선생은 맛있는 거 혼자 독점한다고 이야기했더니 자기 이야길 시작하더군요. 경상도 두메산골 아주 가난한 집 넷째 딸이었대요. 형제 중에 대학 나온 사람은 자기밖에 없고요. 대학 갈 생각도 안 했는데 선생님이 대학가라고 교대 원서를 써줬대요. 그래서 자기 입은 자기가 챙겨야 했대요. 넷째 딸 입에 뭐가 들어가는지 농사짓고 소 키우느라 바쁜 부모가 돌아보지 않았겠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그런 건 가난한 집 넷째 딸로 태어나 자기 먹을 건 자기가 챙겨야 했기 때문이라는 거겠죠.


돌아와서 한국에서 유행하던 아들러 심리학 책을 읽었어요. 한 사람의 어떤 행동을 볼 때 우리는 과거에서 그 원인을 찾는대요. 저 사람이 먹을 거에 연연하는 건 어려서 못 먹어서야, 저 남자가 공격적인 건 어렸을 때 어째서 그래, 나 스스로에게도 그러잖아요. 내가 돈을 밝히는 건 어렸을 때 가난했었던 상처 때문에 그래.


그런데 그 아들러 책에서는 뭐라고 말하냐면 그건 그 행동에 대한 핑계라는 거예요.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과거에서 찾아서 돌린다는 거지요. 그냥 김 선생은 식탐이 많고 남 배려 안 하고 먹는 걸 어렸을 때 가난해서 못 먹은데 귀인을 할 뿐이라는 거예요.


또 비슷한 시기에 남편 친구가 와서 일장 연설을 하고 갔는데 키워드는 '우리는 창조자'라는 거예요. 우리는 과거에 어떠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자기 때문에 과거에 기인하는 행동에서 벗어날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이번 이태리 여행에서는 밥 먹기에 대해 할 말이 많아요. 여행 중반이 지나니 대학생 딸이 밥 먹는 게 거슬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아침을 함께 먹을 때는 식탁의자에 다리 한쪽을 올리고 먹어요. 저도 그렇게 먹을 때가 있는데 그건 혼자 먹을 때에요. 전 군자가 아니라서 혼자 있을 때는 만판 편하게 있습니다. 맛있는 게 나오면 "맛있다 발음은 거의 맛있다에 가까워요'하면서 짭짭거리고 먹어요. 숟가락질 속도도 빨라지고요. 저는 밥맛이 뚝 떨어집니다.


남편이 짭짭거리고 먹기에(결혼하고 몇 년 지나 알았어요. 콩깍지가 벗어진 게죠) 그거 가지고 몇 번 부딪히다가 이젠 같이 안 먹어요. 자기는 맛있게 먹는데 왜 그러냐고 해요. 이 여대생 엄마도 자기 딸이 밥 먹는 걸 보며 뿌듯하게 우리 애가 참 복스럽게 먹는대요. 그 소리 듣고 난 아무 말 안 했어요.


어느 이태리 산속 마을 레스토랑에서 송로버섯이 올라간 스파게티를 먹었어요. 한 포크 하고 두 번째 포크질을 하려는 순간 스파게티가 다 없어져 버렸어요. 정말 게 눈 감추듯 먹는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여행 중반쯤에 엄마에게 그 짭짭거리고 먹는 것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어요. 더불어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콤팩트 두드리는 거랑 루주 칠하는 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가뜩이나 동양 여자 없는 동네 식당에 들어가면 우리만 쳐다보는데... 한 달을 그렇게 참으면서는 못살겠더라고요. 그랬더니 자기는 이야기 안 하겠대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키우지 않았대요. 전 거기서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다음부터 식당에서 화장을 안 하고 짭짭 거리는 소리도 적게 들리는 건 저의 착각이었는지 모르지만요.


제가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요?



같이 다니다가 먹고 싶은 메뉴가 달라지면 각자 다른 식당에 들어갔어요. 또 공금으로 식사를 할 경우도 있었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게 좀 비쌀 경우에는 더치페이를 했고요. 이런 건 초기에 규칙을 정하면 별 문제는 없어요. 아침이나 저녁을 해 먹을 경우에는 순서를 정해서 한 사람은 요리하고 한 사람은 설거지를 했어요.


근데 여행하다 보니 요리 좋아하는 사람이 요리를 계속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설거지를 하게 되긴 하더라고요. 한 사람이 요리를 할 경우 장보기도 담당하게 되는데, 장을 같이 보면서 뭐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좋던데요. 이태리 스파게티 국수로 한식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었어요. 대학생 엄마가 요리를 잘 했는데 조개 모양 스파게티로 수제비를 끓이지 않나 창의력을 발휘해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줬어요.


아침에 누룽지도 끓여 먹고요. 고기 사다 스테이크도 구워 먹고, 크로아티아에서는 동행이 말하기를 한국에서 보다 더 잘 먹는다고. 아줌마들이라 그런지 현지 새벽시장에 나가서 장 봐다가 음식 해 먹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어느 숙소의 부엌

참 도시락도 싸가지고 다녔어요. 장시간 운전할 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을 거 없다고 주먹밥을 만들어서 양상추 데친 거에 싸가지고 풀밭에서 먹기도 하고.. 차도 물병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먹고.


나폴리에선 그 유명하다는 피자를 안 먹고 여행 막바지라 중국집에 찾아들어가 볶음밥이랑 만두를 먹었어요. 볼로냐에선 스파게티를 안 먹고 동네(대학가) 술집에서 간이 뷔페를 먹었네요. 주문하면서 동행은 웨이터의 푸른 눈에 풍덩 빠질 뻔한 걸 건져가지고 왔어요.


이러고 쓰니 먹던 생각이 하나둘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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