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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광머리 앤 Apr 01. 2017

P로 살기

안 하던 짓을 했다.


이주일 전인가 서울 출장에 대비해서 기차표를 싼 값에 예매해 놓은 것이다. 주로 시간대가 안 좋아야 싸므로 10시 반에 떠나는 표를 30프로 할인해서 샀다. 아침 표도 9시 3분 기차로...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다. 인식형(P)인 사람이다. 기차표는 내가 가고 싶을 때 가서 현장 발매기로 산다. 여행을 할 때도 미리 예약하면 싸지만 언제 어디로 갈지 몰라(그때그때 정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예약하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출장 당일 아침 변기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정신을 차려보니 30분밖에 안 남았다. 로션 하나 안 바르고 집에서 튀어나와 운전을 하는데 아무래도 9시 3분까지는 무리다. 가면서 기차표 취소했다. 운전하면서 스마트폰 하면 안 되긴 하지만..


기차역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이 다행히(?) 막혀 있었다. 그러면서 취소하길 잘 했다고 자기 위안. 


회의를 마치고 원래는 동대문 제평에 갈 계획이었다. 거기서 10시까지 있다가 10시 반 기차를 타는 것이 원래 생각해 놓은 일.


하지만 회의를 마치니 너무 피곤했다. 그냥 서울역으로 가서 표를 샀다. 할인해서 구매했던 기차표보다 만원은 더 비쌌으나 이제 내 나이를 생각해서 무리하지 말자 만원 더 쓰자 하면서 샀다. 금요일 오후라 자유석밖에 없어서 자유석으로 구매하다 보니 앞뒤 한 시간 내외의 기차는 타도 된다네! 구포로 가는 기차표는 자리가 좀 남을 것 같아 원래 산 기차표보다 한 시간 먼저 떠나는 기차를 탔다. 대전 대구만 들리는 바람에 엄청 빨리 간다. 동대구에서 갈아타려고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번에 새로 연 신세계백화점을 구경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원래 기차표보다 한 시간 일찍 탔으니 시간 여유는 많다.


신세계에서 내려 오만 것들을 구경하고, 장도 조금 보고 기차를 타니 우연찮게도 내가 산 기차표에 적힌 그 기차네. 


계획하진 않았으나 만족한 하루였다. 다음부턴 성격에 안 맞는 예매 같은 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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