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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dHood Feb 21. 2019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나는 오롯이 당황한다.

- Day 1.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신입 입사는 매년 있었지만, 정확히 '내 밑으로'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프로젝트 건별로 워킹 그룹을 정하기 때문에 실제로 사수-부사수로 일하지는 않지만)

그 친구의 가장 많은 워킹 그룹에 내 이름이 들어간다는 건 그에게 사수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앞으로 언제가 끝이 될 지 모르는 기간동안) 함께 일하게 될 그는

초롱초롱하니 나를 지켜보는 눈이 된다.


그 눈을 마주치자면

나와 마주보는 시선이 어색하면 안될 것 같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뭐라도 얻어가게 해야할 것 같고

나와 업무하는 시간이 개인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할 것 같은,

그런 부담감이 들어 아무 말이라도 시작해본다.


"집은 어디인가요?"랄지, "전공은 뭐예요?"라던가, "여기는 어떻게 알고 들어오게 됐어요?" 같은,

분명 답을 들었는데도 며칠 뒤에 또 물어보게 될 것 같은 질문들.


- Day 7.

좋기는 한데,

부담도 된다.


어떤 업무도 없으면 그의 손은 놀 수밖에 없다.

단순 업무만 시키면 그의 손은 늘지 않을 거다.

과한 업무를 하자면 그의 손은 갈 길을 잃고 방황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해내야 할 업무들의 제안서나 실행계획안 같은 것들과,

추후 연락하게 될 협력업체의 리스트, 프린터가 잘 안될 때 처리 방법 같은 것들을 와다다다 보낸다.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예요. 아마도..? 아마.. 그래도 모르면 물어봐요."

나조차도 무엇이 도움이 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신입은 오죽할까..


- Day 15.

신입사원은 말수가 적다. 사실은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어색한 것일지도 모른다.

신입사원은 고민이 많다. 편하게 질문하라고 해도,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모르는 게 당연한 거고, 그거 다 알면 팀장으로 입사했을 테니까 다 물어보라"고 말해줬다.

그래도 아직 질문의 물꼬는 트이지 않았다.


- Day 30.

신입사원은 기록이 많다. 잠깐 카페를 가도 필기도구에 노트를 챙겨서 온다.

신입사원은 손이 빠르다. 업무를 이해하는 능력도, 수행하는 능력도 빠른 것 같다.


"카페 갈 건데, 커피 나오는 동안 잠깐 수다만 떨 거니까 본체는 두고 와"

노트 두고 오라는 농담을 건네기 시작했다.

노트를 두고 오니까 커피 빨대를 씹기 시작한다. 불안한가봐..


- Day 90.

신입사원에겐 무엇이든 첫 번째가 된다. 문서도, 행사도, 무엇이든.

나의 5년 전을 돌아보자면, '이걸 보고 뭘 궁금해 해야 하는거지'와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는걸까'라는 질문이

가장 메인을 차지했던 것 같다.


업무를 맡기기 전, 최대한 업무의 배경과 업무 분장을 설명해주려고 해 본다. 적는 속도는 말의 속도를 (당연하게도) 따라오기 어렵다. 혹시 투머치토커로 보이지 않을까. '안궁안물'을 씹어 삼키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 Day 180.

신입사원은 말수가 적다. 일이 많아서 말할 시간조차 없다. 내일도 일이 많으니 오늘만 힘내라고 할 수가 없다.

신입사원은 고민이 많다. 뭐든 질문하라고 했지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할 것 같아서 조금 무섭다. 나도 가끔 고민하거든.


"너가 힘들면, 그냥 힘든거야. 주변에서 나나, 다른 사람 누군가가 더 힘들다고 한다고 네가 덜 힘들어지는 거 아니니까,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돼." 라고 했다.

열정으로 야근하다가 힘에 부친 것 같다. 병이 한가득인 것 같다. '나도 그랬었어' 라고 말하면 꼰대로 보일까?

공감과 꼰대질은 종잇장 같은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 Day 240.

신입사원은 첫 장기휴가를 냈다. 제 몫은 스스로 챙기라고 얘기 했었지만, 미리 휴가일정을 못 챙겨줘서 미안.

사람이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는 안다고, 잠깐 새에 업무가 폭탄이다.

나도 지금 열심히 버텨줄 테니까 내 휴가 때 너를 조금 믿을게. 라고 생각해본다. 내 사수도 이랬을까, 싶고.


신입사원이 뭔가를 물어보면, 설명해주게 된다.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게 나의 몫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설명하다 보면 묘하게 변명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업태 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라던가,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말이지...'로 시작되는 말 같은 것들.


3,4년 전 나는 저 자리에서 함께 공감하고, 불만을 표하고, 개선의지를 냈었는데. 그 때와는 반대 입장(사측이나 팀장님 등)이 이해도 되고, 이 친구를 완벽히 이해시킬 수는 없더라도 설명하고 싶다. 이렇게 꼰대가 되면, 어느 샌가 '요새 젊은이들은 말이야'로 시작되는 문구를 내뱉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당황스럽다.



- Day 300.

신입사원은 곧 '신입' 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 아직도 그에게는 안해본 것, 모르는 것이 많을 거다.

1년차는 끝나지만, 2년차는 처음이니까. (나도 6년차는 올해가 처음이야. 내년에 7년차도 처음 해볼 거야.)


모든 처음은 어렵다. 하지만 그 처음이 어려웠다는 건 너무 쉽게 잊는다. 쉽게 잊어버렸던 그 시간의 기억들을, 신입사원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다.


내가 사고를 칠까 봐, 뭔가 잘못될까 봐 걱정했던 5년 전, 내 사수는 'All is well'이라 말하지는 않았다.

"너가 못 챙기면, 다 놓칠 수도 있지. 근데 너가 잘못해서 진짜 큰 일이 나면, 널 뽑은 내가 해결해야지."

"그리고, 그런 문제 생기면 막으라고 팀장님이, 내가, 너보다 돈 더 받는 거야."


내가 신입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일하는 5년의 시간동안, 사고도 쳤고, 팀장님이 방패막이가 되어준 적도 많다. 사고가 아니라 재미없는 농담을 쳐도, 또 가끔 고민 상담으로 이어져도.


- Day, Today.

완벽한 사람은 절대 없는 것을 아는데도, 누구나 은연 중에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완벽하기를 기대한다. 마치 우리 엄마는 늘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어야 하고, 우리 아빠는 늘 굳건하고 든든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어떤 날엔가는, 신입사원에게 나도 '완벽한 사람'처럼 보인 때가 있지 않았을까. 나도 사수 노릇이 처음인 지라, 

실수도 하고 사고도 치고, 어쩌면 의도와는 다르게 실언을 할 지도 모른다. 그럼 '그건 아니다'라고 말해 준다면 

고마울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말수도 많고, 질문도 많고, 웃음도 많고, 함께한 시간도 꽤 많으니까.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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