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 명절이 지나간 자리에서

by 시우

명절이 끝났다.

거리의 소음이 제자리를 찾고,

사람들은 다시 자기 역할로 돌아간다.

나는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하루를 맞이하고

하루를 흘려보낼 뿐이다.


휴일이 기다림인 때가 있었다.

끝없는 노동 사이에

겨우 끼워 넣은 짧은 숨.

쉴 수 있다는 게 선물 같았고,

그래서 쉬는 동안에도 불안했다.


시간표가 사라진 하루는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묘하게 두렵고,

가끔은 더없이 편안하다.


명절이 끝나면 돌아간다는 그 ‘일상’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있어도 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은

참 낯선 감정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하루는 저문다.

해는 뜨고, 밥은 익고, 물은 끓는다.

삶은 생각보다 스스로 굴러간다.

나는 그저 그 안에 있다.

더하지 않고, 덜하지 않게.


백수의 시간은 고요하다.

고요는 처음엔 무겁다.

그러나 오래 머물면

그 무게가 조금씩 투명해진다.

일하지 않아도,

누구의 일정에도 속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사실 하나가 의외로 단단한 위로가 된다.


오늘 아침, 창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천천히 안으로 밀려왔다.

명절의 냄새가 남은 집 안은
마치 오래된 숨을 내쉬듯
천천히 비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삶이란 일을 채워 넣는 게 아니라
잠시 빌려 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인지 공기마저
내 안을 조금 비워주는 듯했다.


하루를 세지 않고,
계절을 기다리지 않고,
시간의 리듬에 귀 기울인다.

세상이 나를 두고 간 듯하지만,
어쩌면 이제야
나는 나의 시간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때 나는 물처럼 살고 싶었다.

부드럽게, 유연하게,

낮은 곳으로 흐르며

세상과 싸우지 않고

돌에 부딪히면 돌아가고,

막히면 고요히 멈추었다가

언젠가 다시 흘러가듯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았다.
흐름에도 방향이 있다는 것을.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렀다.
그 길은 자연스러운 것 같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필연이었다.



바람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장애물조차 의미가 없다.

나무를 스치면 잎을 흔들고,

산을 만나면 넘어간다.

그러나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바람에게는 도착이 없다.

그저 흐르고, 머물고, 사라진다.

그 어떤 벽도, 그 어떤 굴곡도

그를 가두지 못한다.


물의 길은 목적이지만,
바람의 길은 순간이다.
물은 세상을 적시고,
바람은 세상을 깨운다.

물은 생명을 지탱하고,
바람은 생명의 숨을 실어 나른다.

그 두 흐름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천천히 배우고 있다.
머무르지 않되 사라지지 않는
삶의 리듬을.


무언가를 남기기보다,
무언가를 깨우고 싶다.
닿되 붙잡지 않고,
머물되 머무르지 않으며,
이루되 집착하지 않는 삶.


의도하지 않아도 움직이고,
사라지지 않아도 흩어지는,
그런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중력의 방향에 끌려가는 물의 길이 아니라,
매 순간 새로 태어나는 바람의 길처럼.
방향을 가질 필요조차 없는,
존재 그 자체로 자유로운 삶으로.


나를 막는 모든 것을 장애물이 아니라

또 다른 공기로 알고

유유히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저항하지 않고, 머물지 않고,

그러나 존재하며.


아침 커피를 식히며 생각한다.
365일이 휴일이라는 건,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이 내 것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세상이 나를 멈췄다고 말하는 시간,
나는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 속에서도
삶은 언제나처럼 조용히 나를 다시 짓는다.


나의 시간은 이제 바람처럼 흐른다.
머무르지 않되 사라지지 않고,
닿되 붙잡지 않는다.

멈춤 속에도 길이 있고,
고요 속에도 생명이 있다.


세상이 멈췄다고 말하던 순간,
바람이 지나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삶은 나를 다시 불러내고 있었다.


By 時雨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