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빛을 따라

―― 사라지며 남는 것들에 대하여

by 시우

새벽 공기가 벽을 스치며 지나간다.
빛이 오기 전의 공기는
세상의 가장 조용한 숨결을 품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이 깨어나는 시간의 숨.


이른 아침,
커튼 밑단을 스치는 얇은 햇살이
부엌으로 미끄러진다.
싱크대의 금속 손잡이가 먼저 눈을 뜨고,
찬 물컵의 표면이 미세하게 떨린다.
소리 없이 번지는 빛이
방 안의 냄새를 바꾼다.


하루의 첫 온도는
빛이 아니라 공기에서 태어난다.
커피를 따르자
잔 속에서 빛이 부서진다.
김이 오른다.
따뜻함은 향보다 먼저 눈으로 느껴진다.


빛이 움직일 때,
시간도 함께 저어지는 것 같다.
먼지가 떠오르고,
그 작은 입자들이
햇살을 매개로 춤춘다.


오전의 빛은 바쁘다.
책상 위를 훑으며 종이의 결을 일으키고,
화분의 잎사귀를 다독인다.
빛이 닿는 자리마다
사물은 스스로의 형태를 되새긴다.
그러나 드러남은 오래가지 않는다.
빛이 닿는 순간부터,
사라짐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정오의 빛은 잠시 머문다.
모든 색이 짙어지고, 그림자가 짧아진다.
공간이 단단해지는 그 한순간,
세계는 가장 또렷해진다.
그러나 완전함은 언제나
소멸의 문턱에 선다.
가장 밝은 순간이,
가장 빠르게 저물어 간다.


오후의 빛은 느려진다.
바닥 위를 천천히 굴러다니며
섬유 사이로 스며든다.
햇살은 이제 빛이 아니라
온기의 형태로 남는다.
팔꿈치를 스치는 따뜻함,
종이 위에 남은 희미한 그림자.
사라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남겨두는 또 다른 방식이다.


저녁 무렵,
빛은 문턱 앞에서 머뭇거린다.
화분의 잎 하나를 쓸며
짧은 인사를 남긴다.
그 순간의 온도는
낮과 밤 사이의 숨결 같다.

햇살은 머무는 법을 모른다.
그러나 떠난 자리마다
온도가 남고, 하루가 완성된다.
남는 것은 빛이 아니라,
빛이 잠시 스쳐간 것들의 기억이다.


밤이 오면

스탠드 불빛이 하루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나 그 빛은 방향이 없다.

사물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만,

숨결이 닿지 않는다.

남은 밝음은 온기를 잃은 껍질처럼,

그저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래서 밤은 더 넓고,

더 고요하다.


창문에 가로등 불빛이 눕고,
벽의 얼룩이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서로를 감싸 안으며 쉰다.
그 속에서 하루는
조용히 마무리된다.


소파에 널브러진 쿠션을
햇살이 오던 방향으로 돌려두고,
낮의 온도를 손끝으로 떠올린다.
잔의 따스함,
책 위에 남은 그림자의 결,
잎사귀의 미세한 떨림.
그 사소한 흔적들이
오늘을 완성한다.


새벽이 오면
집은 다시 윤곽을 되찾는다.
커튼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와
벽을 천천히 쓸어내린다.
어제와 같은 자리지만,
사라진 것들이 남긴 자리에
새로운 시간이 얹힌다.


하루는 그렇게,
겹겹이 얇아지며 두꺼워진다.
빛은 늘 떠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눈부심이 지나간 자리에
조용한 온도가 남고,
그 온도가 시간을 만든다.


삶도 그렇다.
모든 것은 조금씩 스러지지만,
그 자리에 또 다른 결이 생긴다.
사라진 것들은 여전히 머물며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비춘다.
빛이 멎은 뒤에도
온도는 남아,
살아 있음의 다른 얼굴이 된다.


글/時雨.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