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의 깊이

―― 사소함이 삶을 지탱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시우

사람의 시선은 언제나 멀리 있는 빛을 향한다.
가까운 것들은 너무 익숙해서,
그 안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세상은 저 멀리의 빛에 ‘성공’이라는 표찰을 붙이고,
마음은 알지 못하는 사이 그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오래 머무는 빛은
눈을 잠시 멀게 하는 찬란함이 아니라,
오랜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낮은 불씨에 가깝다.


지속되는 것들은 대개 이름이 없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소함’이라 부르지만,
바로 그 반복이 삶의 바닥을 단단히 다진다.
무대 위의 찰나는 한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 순간을 지탱한 시간은 언제나 장면 밖에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축이 흔들리면,
찬란함도 금세 허공으로 흩어진다.


하루는 대부분 눈에 잘 담기지 않는 동작들로 이루어진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네 번의 짧은 소리,
엘리베이터가 층을 지날 때 울리는 낮은 종,
카드 단말기에 찍히는 한 번의 ‘삑’,
복도 끝 센서등이 늦게서야 따라 들어오는 불빛.
우리는 그것들을 ‘하루의 잡음’이라 부르며 지나치지만,
그 잡음 사이로 흐르는 리듬이야말로
하루를 일정한 속도로 굴러가게 하는 보이지 않는 축이다.


일상은 단조로운 반복이 아니다.
손에 익은 동작이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운다.
출근길 신발끈을 조여 매는 순간,
책장을 덮기 전 손가락 끝에 남는 종이의 거칠음,
세탁대 위에 가지런히 놓이는 옷걸이의 간격.
작은 정렬이 마음의 어지러움을 한 칸씩 치운다.


평범한 일을 특별하게 한다는 것은
거창한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아니다.
이미 있는 것을 다른 감각으로 다시 보는 일,
익숙한 표면 아래 숨어 있던 무늬를
조용히 드러나게 하는 일이다.
특별함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바로 여기—늘 지나치던 자리에서,
한 박자 늦게, 다른 조도로 켜질 뿐이다.


삶은 거대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기보다,
작은 리듬들이 겹겹이 포개지는 합주에 가깝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 전의 짧은 정적,
사무실 공기청정기의 미세한 숨,
방 안 벽시계 초침이 맞물리는 순간의 미묘한 어긋남.
그 미세한 틈을 알아차릴 때,
세계는 소리 없이 깊이를 얻는다.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다.
다만 한 호흡 늦게 듣고,
한 칸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한 번 더 손끝으로 만져 보는 일.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의미가 굳는다.
가르치려 들지 않고, 증명하려 서두르지 않을 때,
사물은 자기의 온도를 내어 준다.


어쩌면 인생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지탱의 문제일지 모른다.
가볍게 흘러가듯 살아도,
남는 흔적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식탁의 자리마다 포개어 두는 수저의 방향,
문을 닫을 때 힘을 빼고 끝에서 살짝 눌러 주는 습관,
메모 끝에 남기는 짧은 밑줄 하나.
그 조용한 규율이 삶을 무너지지 않게 한다.
그 태도를 잃지 않는 한,
삶은 쉽게 얕아지지 않는다.


밤이 오면 불빛은 한 톤 낮아지고,
작은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씻어 엎은 컵의 물자국,
문틈을 드나드는 얇은 공기,
책상 위에 엎어 둔 펜이 남긴 잉크의 점.

그렇게 하루는 성취가 아니라,
사소한 흔적으로 남는다.
빛은 크지 않아도 좋다.
하루의 끝마다 조용히 돌아와
방을 한 톤 낮게 밝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 불빛 아래에서
말하지 못한 말은 여백에 눕고,
닫지 못한 마음은 그대로 둔다.
남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하루를 지탱한 무게감이다.
그 무게 위로,

새벽이 천천히 내려앉는다.


글 / 時雨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