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20대 여성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 이 나라에선 도저히 못 살겠어서 호주로 떠난다. 그녀가 풀어놓는 썰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숨 막히는 출근길, 일개 부속품이 되어야 하는 직장생활, 남자 친구 부모님의 멸시, 그리고 가난.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말도 그녀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그녀의 집에 있던 쥐구멍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퀴벌레구멍이 되고, 개미구멍이 될 뿐, 근본적으로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지 말라고 울며 붙잡는 남자친구와 가족을 뒤로하고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난다. 방 2~3개가 있는 아파트에서 8~10명씩 거실, 베란다에서 잠을 자는 ‘닭장 셰어’ 생활을 시작한다. 한국의 밑바닥보다는 호주의 밑바닥이 그녀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호주에서 그녀는 최선을 다해 생존해나가며, 본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나간다. 결국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고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라고 다짐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언뜻 보면 지옥 같은 한국 탈출기 혹은 호주 이민 성공기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계나가 한국에 대해 내뱉는 가시 돋친 말들 중,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다. 재력, 학력, 외모 셋 중 아무것도 없다면 한국에선 경쟁력이 없다는 말. 이 나라에선 가난이 죄가 된다는 말. 한국 사람들은 끝없이 비교하며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는 말. 나도 씁쓸한 맞장구를 처가면서 읽었으며 한국이 참 문제가 많은 나라임에는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맹신하는 물리적 ‘탈출’만이 유일한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한국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닭장 셰어’와 같은 의식주 환경은 한국의 것보다 열악할 수 있으며, 언어 능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기도 힘들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라며 인종차별을 겪게 될 수도 있고, 힘들 때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도 없다. 한국에선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먼 외국 땅에선 사소한 것 모두가 ‘큰 일’이고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장소만 달라질 뿐이지 다른 종류의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어떤 종류의 고난을 택할 것인지는 개개인의 선택 사항이고, 그 각자의 선택에 따라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계나는 호주(혹은 다른 나라)로 이민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인양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따르지 않는 주변인들에게 여타 한국인들과 다를 바 없는 따가운 시선을 던진다.
"혜나 언니나 예나가 호주 오기 싫어하는 건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 혜나 언니는 계속 스타벅스에서 일해. 거기서 한 시간에 얼마 받으려나? 5000원? 좀 오래 했으니까 6000원? 그걸로 한국에서 생활이 돼? 그 돈 모아서 집 살 수 있어? 부모님 병들고 그러면 어떻게 해? 참 이상해. (중략) 혜나 언니는 여기 있으면 시집 잘 가는 수밖에 없어."
"예나도 마찬가지야. 걔, 공무원 시험 합격 못해. 이제는 9급 공무원 시험도 고시급이라는데 걔가 그 정도로 밤새워 공부하고 그러지 않잖아. 그거 합격할 노력이면 호주 영주권 쉽게 딴다. 그리고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한국에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을걸?"
결국 그녀도 본인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평가하고, 호주로 떠나지 않고 한국에서 머무는 약자들의 인생에 대해 ‘실패한 인생’이라고 꼬리표를 붙여버린다. 이렇게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가 과연 진심으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리고 한국에 남겨진 사람들은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일까?
나도 고백하건대 참 한국이 싫다. 사실 고백이랄 것도 없다. 내 주변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한국에 대해 끝없이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나 때문에 이골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나 또한 한국인이며, 이 나라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나도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6개월 동안 독일 함부르크에서 인턴 생활한 적이 있다. 세계 최고의 시스템과 성숙한 시민의식, 문화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겪어보면서 당연히 ‘영원히 한국을 떠나 이 나라에 정착해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내린 답은 ‘그래도 한국’이었다. 위에 언급했듯 타지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고난과 역경들이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리던 것들이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내가 태어나서 삶을 꾸려온 곳은 한국이었고, 나 자신은 내 삶의 기반을 모두 뒤로한 채 외국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앞으로 살아갈 곳도 한국이라는 답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다고 내가 싫어하는 한국의 부조리한 면들이 바로 다시 좋아지거나, 무감각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찌 됐든 내 입장에선 한국에서 살기는 해야 하는데 이 나라의 미운 점들이 끊임없이 눈에 밟히고 귀로 들려왔다. 그때부터 ‘정녕 방법은 없는 것일까’라는 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끝에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이 한국 땅에 나만의 ‘섬’을 만드는 것이었다.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 자의와 상관없이 특정 집단에 소속되면서 형성된 인간관계를 돌아봤다. 타인과 비교한다던가, 돈으로 으스댄다던가 내 신념과 반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고,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힘을 쏟기 시작했다.
‘덜 한국적인’ 직장에 들어갔다. 독일에서의 인턴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바탕으로 수평적이고, 오롯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회사들을 찾아 지원했다. 어떻게 보면 집보다 오래 머물러야 하는 공간에서 내 가치관과 다른 사람들과 하루에 9시간 이상씩 있는 것만큼 지옥은 없다고 생각했다. 직급과 상관없이 동등한 인격적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본질에서 벗어난 사내 정치 행위나 부조리함이 없어야 했다. 입, 퇴사를 반복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만족할 만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를 유혹하고 흔드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지 않으면 뒤쳐지고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냥 남들처럼 순응하라고,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내 신념을 ‘갖는다’라는 표현보다는, ‘붙잡고 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게 되었다. 잠시라도 방심하게 된다면 놓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가치관을 강화시킬 수 있는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읽고 또 읽으면서 되뇌었다. 흔들리지 말자고.
이렇게 나는 나만의 ‘섬’을 만들었다. 내가 가까이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을 위해 울타리를 치고 그 이외의 것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도랑을 팠다. 그래서 전보다는 덜 흔들리고 나름의 신념에 따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원체 불안하고 나약한 인간인지라 울타리가 자꾸 부러지고, 도랑이 다시 메워지기를 반복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그럼에도 나름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 같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절이 바뀔 수도 있다. 시간은 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절을 짓고, 일구어 나가는 것은 결국 중들이 아니던가. 나는 꼴 보기 싫으면서도 내가 사랑하고, 살아가야 할 이 애증의 땅에서 더 나은 미래를 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만의 ‘섬’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부디 이 나라의 면적과 내 ‘섬’의 면적이 같아지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