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분투기'를 읽고
'편집자 분투기'는 지은이가 약 20년 동안 출판 편집자로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 한 권의 책이 기획되고 출판되기까지의 과업들, 그리고 편집자로서 어떠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총체적으로 기술이 되어 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점이다. 한 7~8 의 내용을 10으로 늘여놓은 느낌이라 읽으면서도 '어? 앞부분에서 읽었던 이야기인데' 하며 앞장으로 다시 넘겨봤으니 말이다.
그래도 읽는 내내 지은이의 진심이 느껴져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던 책이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내용과 형식으로 세계를 편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책에도 여러 겹의 세상 읽기가 포개어져 있는데 여기에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그 책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가 있기에 편집자는 무릇 자신이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거듭해서 물어보아야 한다고 한다.
즉, 쉽게 말하면 편집자란 세상을 읽어내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인 것이다. 이들은 이 세상이 가진 결핍은 무엇이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의문은 무엇이고, 독자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나 지식을 전달할지 스스로 세상 읽기와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출판 기획을 하고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를 다듬어 그 내용과 형식을 '책'이라는 매개체에 담아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출판된 책들이 독자들의 손을 거치게 되면서 그들의 수만큼이나 또 다른 세계들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거기서 파생된 공감과 깨달음, 기쁨과 슬픔, 때로는 분노와 경각심 등이 끊임없는 상호작용하며 사회 전체의 정신적인 부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참 매력적인 직업이라 생각된다. 세상에 방향성을 제시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낸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그 뒤에 감추어진 요소들, 그들이 그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 그리고 포기해야 했던 많은 부분들도 함께 바라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출판이 진흥되어야 한다는 것은 출판 내적인 문제이기에 앞서 급격하게 이뤄지는 세태 변화 속에서 어떤 최소한의 중심, 혹은 좌표를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항이라고 믿는다. 예컨대 디지털과 아날로그적 삶의 균형,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 몸과 정신의 균형, 실리와 항구적 가치에 대한 균형 등등 모든 균형을 잡는 데 책처럼 실질적인 대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변화에 관한 강박관념이 심화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속도감 있게 변화를 추동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변화 그 자체에 대한 부추김을 다룬 책들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영서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속도감은 우리 출판계 절판에 걸쳐 실용서와 이재에 대한 책들의 붐을 가져왔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해볼 것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버리지 말아야 할 것까지 다 버리고, 변화 그 자체만 가져가자는 강박은 없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변화는 우리들의 정체성만 변화시키고 정작 변화해야 할 잘못된 관행은 그대로 두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이런 우려가 기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책은 이런 변화에 마땅히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고 있다. 고도의 정보, 통신 기능의 발전을 토대로 다양한 분야가 접목되면서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방향과 속도로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고 한다. 당장 내일, 역사에 기록될만한 혁신이 시작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지은이가 이야기했듯이, 어느 시대에도 인간의 삶에 좀처럼 변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한국은 이제야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자존감과 관련된 서적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개인의 마음, 개인의 삶'에 대한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의 직업 선택의 기준도 '고소득'에서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로 옮겨 가며, 일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만족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의 가치에 대한 가중치가 증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어떠한 맹신, 변화에 대한 필요 이상의 강박이 또다시 인간의 중요 가치에 대한 회귀의 흐름을 매몰시킬까 걱정된다. 이 사회의 변화 속도만큼이나 그동안 경시되었던 많은 정신적 가치들이 빠르게 확산되어 기술, 산업혁명과는 별개로 유지되는 단단한 고유의 영역이 형성되기만을 간절히 원할 뿐이다.
전반적으로 편집자라는 직무에 대해 기술적으로 서술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책과 출판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독서의 유용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책이 없었다면 내가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이토록 쉽고 자세히 알 수 있었을까.
리허설 없이 딱 한번, 커트 없이 진행되는 인생 속에서도 우리는 책을 통해 다양한 직업을, 다양한 선택을,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고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