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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Aug 19. 2018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를 읽고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 - 곽미성


1. 뜻밖의 진수성찬


여느 연애 소설, 에세이처럼 그저 단순한 연애, 사랑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첫인상과 달리 훨씬 폭넓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단품 메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애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구성이 꽉 찬 코스요리를 맛보는 느낌이랄까. 


프랑스인들의 연애관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그들의 역사, 사회제도, 페미니즘, 부르주아와 보헤미안, 파리, 직업관 등 다양한 방향으로 가지가 뻗어나간다. 뻗어나가는 모양새도 이야기의 결을 따라 무척이나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각각의 주제마다 파고드는 깊이도 적절하게 조절되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덕분에 단순히 ‘로맨틱’ 혹은 ‘낭만’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그려지던 프랑스식 연애관이 보다 구체화되었다. 물론 프랑스인이 아닌 한국 유학생 출신으로 프랑스에 정착하게 된 저자의 시선에 오롯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나와 같은 문화적 맥락을 공유한 한국인의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본다는 점, 동시에 프랑스인과 결혼하고 파리에 사는 현지인으로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야기를 (각종 통계자료와 함께) 들려준다는 점에서 설득력과 흥미가 배가 되어 다가왔다.

 


2. 그들에겐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


그래서 도대체 ‘프랑스식 연애’란 무엇이고, 그들을 어떻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연애 생활’을 하게 되었는가.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의 여성성이 점점 더 사회의 영향으로 규정된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여성성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연애 이야기를 하면서 페미니즘을 말하고,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을 말하고, 직업관과 사회제도를 말하는 것은 그것들을 말하지 않고서는, 맥락을 함께 건드리지 않고서는 그들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연애 생활’을 온전히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과 프랑스, 두 사회를 경험하면서 각 문화권이 연애와 결혼, 육아에 대해 어떠한 가치관과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여자들이 사는 모습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가임기 여성이 주도적인 피임을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섹스와 가능한 한 멀리 위치한 여자를 바람직하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덕분에 성인이 되도록 산부인과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여성도 많다.
프랑스에서는 낙태가 합법으로 여성 본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제공된다.
프랑스에서는 여성도 결혼 후 직업을 가지고 평생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부모가 성인이 되고 가정을 이룬 자식들의 삶에 크게 관여하지 않기에 상대를 고려하는 데 있어 ‘조건과 스펙 혹은 상대방의 집안 환경’이 그리 중요치 않다. (또한 그들에겐 결혼이 그리 공고한 제도가 아니기에)
프랑스는 동거 커플을 위해 시미연대계약(PACS)를 도입하여 자녀 양육, 소득세, 사회보장급여 등 결혼과 유사한 수준의 권리를 보장한다.
아이 엄마이기도 하지만, 직업인으로서 인생이 있기에 모유 수유를 하지 않겠다는 아내와 며느리의 결정을 존중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여성에게 모든 결정권을 주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부부의 공동양육 의식과 육아 휴직, 탁아소 시스템 등의 복지제도가 여성이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데 큰 역할을 한다.


성에 관하여 여성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그들 스스로 본인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에 능동적인 연애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이 결혼 혹은 출산 후에도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충분한 제도적 장치가 있기에 의존적인 사랑이 아닌 주도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가족 간에도 서로 연애는 개인의 영역이라는 인식과 그에 따른 존중이 자리 잡고 있기에 자유로운 연애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은 아직도 '성 역할' 고정관념에 갇혀있으며, 여성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은 부실하기 짝이 없으며 '가정'에 대한 정의도 매우 편협하고 보수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다. 공동육아에 대한 의식, 제도 장치도 부족하다. 개개인을 존중하는 문화 또한 부족하며 항상 단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선 파리지엔이 와도 결국 여느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처럼 백마 탄 왕자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사랑을 하게 되지 않을까? 


연애 혹은 사랑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남녀 간의 감정 시소게임만으로 비친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이란 시소게임을 논하기에 앞서, 시작부터 이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있던 것은 아닌지, 양쪽 모두가 오롯이 사랑이란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확인해 볼 때이다.


그들에게 있고 우리에겐 없는 것, 그것은 결국 양성 모두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연애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3.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책장을 덮었을 때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의 솔직하고도 발칙한 연애관, 그리고 그 토대가 되는 모든 것들(역사, 문화, 사회 시스템 등)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자연스레 내 개인의 연애, 한국인의 연애, 한국의 사상과 문화, 시스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프랑스가 그러한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선천적으로 그들에게 ‘더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DNA’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환경에서 투쟁(68혁명)을 통해 쟁취해냈다는 점이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를 앞세워 거리 시위가 시작되었다… 사회적으로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는 분위기여서 혼전 임신이라도 하면 가족과 직장에서 버림받고 피임약의 유통도, 남녀 합반인 학교도 없던 시대가 이 5월을 지나며 급속도로 자유연애와 여성 해방의 상징인 1970년대로 이어진 것이다.


작가 리베카 솔닛은 책 [맨즈플레인] 에서 '판도라의 상자에서 나온 호기심이 도로 상자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주목한다. 같은 맥락으로 '지혜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이브는 두 번 다시 무지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다. 비록 처음엔 형태가 불분명하고 선명하지 않을 수 있지만, 새로운 생각들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인간은 그것을 토대로 더 나은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할 것이고, 결국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탤런트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관념들이 표면 위로 떠오르고, 미투 운동을 통해 여성인권에 대한 관념들이 떠오르고, 주 40시간 근로제가 시행되면서 '쉼'에 대한 관념들이 떠올랐다. 하나하나 개별 사건 자체로는 '실패'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건(투쟁)으로 인해 유발된 새로운 관념과 가능성이 퍼져 나가는 것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는 개인에게만 국한된 소재라고 생각했던 연애 양식의 문제가 여성인권의 문제이고, 문화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 머릿속에 심어줬다. 그리고 한 번 판도라의 상자 밖으로 뛰쳐나온 이 관념들에 대해 나는 계속해서 복기하게 될 것이다. 


보다 많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길 바란다. 한국에도 충분한 사유와 논쟁을 통해 더 나은 가치와 다양한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 그것을 뿌리로 연애뿐만이 아닌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선택지와 가능성이 보장되고, 의식-문화-제도가 잘 물린 톱니바퀴처럼 선순환되는 구조를 형성하기를 바란다.


비록 내 좁은 방 침대 위에서 열린 '광활한 우주 속 좁쌀'만 한 판도라의 상자이지만,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언젠가는 혁명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녀들의, 프랑스식, 연애 - 곽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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