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하나의 작은 섬을 만드는 일과 같았다.
곧 다섯 번째 회사로 이직한다.
퇴사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길 때까지의 과정 속에서 매번 ‘나’라는 인간에 대해 면밀히 돌아보게 된다.
나는 참 욕심과 겁이 동시에 많은 사람이다. 이상적인 직장에 대한 기준이 계속 까다로워지고, 한 가지가 충족되면 또 다른 결핍이 눈에 보이고 갈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핍으로 인해 언젠가 내게 닥칠지 모를(혹은 망상에 불과한) 위험에 대해 미리 겁을 먹고 생존을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이러니 내 마음에 쏙 드는 평생직장을 찾아 정착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회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은 인생이 매몰되는 것은 죽어도 싫다. 그렇기에 나는 이 쉽게 좁힐 수 없는 대척점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객관적인 실력을 쌓는 것]이다. 남의 돈을 받는 이상 ‘을’의 입장을 벗어날 순 없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인정받을 수 있는 객관적인 실력이 있다면, 회사가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때 미련 없이 새로운 회사로 떠날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혹은 보다 주요한 위치에 올라 나의 기준과 가치관을 회사에 반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다.
내가 이 결론을 말했을 때 누군가가 ‘객관적인 실력’이라는 말 자체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고 했다. 특수 직종을 제외하고 100% 정량화될 수 없는 대부분의 업무 영역, 그리고 회사 생활에서, 실력은 결국 회사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평가받기에 ‘객관적’ 일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난 나에 대한 특정한 (우호적인) ‘주관적 평가’가 장소와 시간, 사람을 불문하고 반복된다면 그것이 곧 나의 ‘객관적인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퍼포먼스를 내고 여러 회사, 여러 동료들에게 ‘일 잘하는 사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반복해서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내 ‘객관적인 실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요약하자면, 외부 요인에 쉽게 휘둘리거나 구속당하지 않을 수 있는 객관적인 힘을 스스로 키우겠다는 말이다.
‘사람이 별로여서’, ‘회사의 갑질에 분해서’, ‘커리어 패스가 애매해서’, ‘대표의 경영철학이 안 맞아서’ 등 참 많은 이유로 퇴사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어딘가에는 분명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결국 워크도 라이프다. 욕심 많은 내 성격에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좀 더 힘을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