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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펜 Dec 22. 2017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만약은 없다'를 읽고

만약은 없다 - 남궁인


1. 압도적 에세이


정말 압도적이었다. 첫 에피소드부터 전해오는 강렬한 충격에서부터 한 동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응급실을 찾아오는 환자들, 긴박함 속에서 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피와 땀으로 적셔지는 흰 가운, 죽어가는 환자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들… 이 모든 것을 그저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타이트한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마냥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처참한 환자의 몸 상태와 수술 장면을 보고 있자면, 내 머리가 제대로 붙어 있나, 손목은 멀쩡한가 어루만지며 겨우 안도할 정도로 오한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압도적이었던 것은, 죽음 앞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오열하고, 반성하며 뛰어다니는 작가의 독백이었다. 수많은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보는 그의 넋두리 앞에서 나 또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고, 죽음이라는 거대한 존재 혹은 사건들로부터 잠식당할 수밖에 없었다.


2.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남자


작가는 응급의학과 의사이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죽음에 근접한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그는 단 한 명이라도 이 세상에 붙잡아 놓기 위해 피와 땀으로 온몸을 적신다. 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냄에도 불구하고, 운명의 장난인 것 마냥,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경험들을 마주하게 된다.

자살 시도 환자를 살려냈건만, 걸어나간 지 2시간 만에 이번엔 완벽히 목숨을 끊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온 신체를 헤집었건만, 알고 보니 보험금을 노린 살인의 피해자였고 그 증거를 훼손한 꼴이 되어버린다. 본인이 돌려보낸 말기 암 환자가 교통사고를 내어 맞은편 운전자가 죽어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얼굴이 반만 남은 시체의 환영과 함께 밥을 먹고, 안타깝게 증발하는 생명들에 오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들을 애써 이해해 보려 하면서 그는 기어코 응급실을 지킨다. 


그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을 등지고 삶의 경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등 뒤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그들과 뒤엉켜 진흙탕 몸싸움을 하며 사투를 벌이는 듯하다. 수많은 생명을 살림에도 불구하고, 죄스럽다고, 인간이 인간을 다룸에 미안하다고 입술을 깨무는 그에게 무한한 존경과 경의 그리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3. 죽음 앞에서의 침묵


“억울한 한 죽음이 있었고, 다른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도저히 어떠한 책망이 불가능한, 피칠갑한 모습의 잔혹한 죽음이었다. 우리는 이 생명들이 얼기설기 위태롭게 얽힌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서도, 실은 어떤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죽음에 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그런 일을 가볍게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고뇌와 고통과 그를 넘어선 우연이 혼재하는 극적이고 거대한 세계, 그 일부만을 핥으며 공감을 표하거나 어떤 죽음은 응당 왔어야 했다고 지껄이는 짓거리는 전부 미친 짓이다. 스물네 개의 갈비뼈와 폐부가 전부 으스러진 죽음에 관해서, 그리고 전신이 악성 종괴로 죄어드는 죽음에 관해서 우리는, 그 처참한 시체만을 눈앞에서 볼뿐 아무것도 언급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어찌 보면 그 누구보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는 그도 죽음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 죽음이란 그렇게 거대하고, 위태롭고, 얽혀있는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그저 스쳐가는 죽음이라는 이유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이라는 이유로 쉽게 생각해봤다면, 그것은 지나친 오만함이 아닐까. 죽음 앞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인간으로서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표현 수단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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