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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Apr 05. 2016

첫 리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처음 만나는 상사는 모두 어렵고 두려운 존재인가?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님의 침묵"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중략}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첫 키스, 사람들마다 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이 아닐까. 그와 비슷하게 직장에서 처음 만나는 직장상사는 첫 키스처럼 깊은 기억을 남기는 존재인가 보다. 직장 생활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몇 번 있다. 첫 번째는 창원에서 첫 리더를 만났을 때, 두 번째는 서울 발령을 받고 적응할 때, 세 번째는 내부 제보자로 몰렸을 때. 그중 가장 힘든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첫 리더를 만났을 때였다.


나도 팀이 생겼어요!!??


입사 후 6개월이면 뭐든 좀 익혔을 만한데 리더도 없이 사수도 없이 혼자 일을 하다 보니 그런 능력이 길러졌을 리는 만무하다. 92년,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조직 개편이 있었다. 설계실 내에서도 많은 변경이 있었다. 드디어 내 팀도 만들어졌다. 리더도 부임을 했다. 총 4명. 팀장, 대리 한 명, 그리고 나를 포함한 신입사원 두 명. 팀장은 서울에서 내려온 분이었다. 그분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다. 당시 금성사에서 출세를 하려면 반드시 지방근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내부 룰이 있었나 보다. 서울에서 물먹었다는 둥, 더 좋은 자리로 가려고 지원해서 내려왔다는 둥, 그분이 어떤 이유로 서울에서 창원까지 오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 2년간의 창원 생활 이후 다시 서울 본사로 가셨다.


그 분과의 첫 대면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팀이름은 거창했다. Seed research team, 줄여서 SR팀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찾아내고, 본사의 상품기획팀과 설계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팀. 소비자의 불만사항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주 역할이었다. 덕분에 서비스센터에 접수된 불만사항을 한가득 놓고 분석하기도 했다. 사람들을 불러다 FGI (Focus Group interview)를 하기도 했고, 시제품 세탁기를 집집마다 설치해 놓고 실생활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재미있는 업무였는데 당시에는 왜 그런지 참 어렵기만 했다.


세탁기 중에 세제 자동투입장치가 달린 세탁기가 있었다. 소비자 모니터링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인데, 습기로 인해 세제가 굳어서 제대로 투입이 되지 않는 거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주에 있는 LG화학 연구소와 함께 연구를 했지만 결국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하고 이 제품은 단종되었다. 요즘 같으면 액체세제를 쓰면 되겠지만 당시에는 액체세제 생산은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낙담했었던 기억이 있다.


첫 리더는 늘 어려운가?

일도 쉽지 않았지만 특히 팀장과는 잘 맞지 않았다. 우리들 보고 느리다고 했고 생각이 없다고 했다. 팀원 세 명이 똘똘 뭉쳐서 팀장 한 사람을 왕따 시켰다. 세 명이 모이면 히히호호하다가도 팀장이 나타나면 침묵했다. 세 명이 함께 모여서 팀장 뒷담화를 하면서 신세한탄을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그분은 어깨가 참 무거웠을 것 같다. 새로 생긴 신생팀, 뭔가 실적은 만들어야 하는데, 세탁기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고... 말을 해도 알아먹지 못하는 신입사원 둘에 대리 한 사람... 그렇게 해서 일이 되었겠나 싶다.


첫 팀장으로부터 칭찬도 들었지만 야단도 많이 맞았다.


앞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너무나 내성적인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익혀나가기 시작한 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내성적이니 앞에서 말은 못 하고 글로 써서 전달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야단을 많이 맞았다.


"너는 보고서 던져놓고 가면 그만이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보고서에 다 써놨는데요... 보고서 보세요.."


반항이 아니라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니 글로 써서 보여줬는데 그걸 말로 다시 하라니 그건 정말 도망가고 싶을 만큼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쁜 리더들에게 보고서 들이밀고 봐달라고 하는 철딱서니 없는 신입사원이었다.


또 한 가지 야단을 맞는 이유는 예의 없음이었다. 나름 예의를 차린다고 했는데 팀장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팀장님은 경상도 사나이 중의 사나이. LG화학에서 선물로 준 세제를 남자가 들면 면이 안 선다고 나보고 들라고 했던 분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야단맞은 건은 휴가 때문이었다. 미리 말하지만 이런 사원이 있다면 나도 혼꾸멍을 내줄 거다. 감기몸살이 걸려 월요일 휴가를 냈는데 회사에 연락을 한 건 어머니였다. 그 다음날 출근해서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을 맞았다.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 지금 리더가 되어보니 내가 봐도 나 자신이 참 대책이 없긴 했다. 직장인이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움직여야 하는데 어머니에게 대신 전화를 하게 하다니 말이다.


여러 가지로 참 힘들게 한 분이긴 하지만 나름 직장 예절을 알려주신 분이고, 더 크게는 창원공장 최초의 멕킨지 스타일의 보고서 작성법을 알려주신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지간한 리더를 만나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어주시기도 했고.


다시 1년 뒤 조직개편으로 우리 팀은 다른 분이 지휘하게 됐다 그런데 그분은 설계실에서 가장 바쁜 분이었다. 함께 회의를 한 것이 몇 번되지 않았다. 그분으로부터 들은 말은 "아이고, 미안해... 지금 너무 바쁘네.." 워낙 유능한 분이라 여기저기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많았다. 당시 진행되고 있던 맥킨지 컨설팅의 멤버였고, 그 외에도 설계실 내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개입이 되어 있었다. 그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다. 영어를 워낙 잘하셔서 영어강사와 대판 싸우고 더 이상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도 들었고, 한국말도 아주 빠른데 영어는 더 빠르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최고 학부에 최고 학과를 나와서 왜 창원에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쨌든 그분은 창원공장 내 스타였음에는 분명 하나 리더로서는 꽝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하다


사회 초년 시절 창원공장에 근무하는 동안 여러 리더를 만났다. 직접적으로 업무를 함께 하는 리더도 있었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게 된 분도 있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봐도 화려하게 빛나는 분도 있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싫은 리더 분도 있었다. 의사결정을 하지 않아 속 터지게 하는 분도 있었고, 너무 빠른 의사결정으로 좌충우돌하게 만드는 분도 있었다. 이렇게 리더십이 무엇인지, 스스로 일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서서히 익혀가는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고 하면서 사람들을 알아가고, 겉보기와는 다른 사람들도 보면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실망도 하고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되는, 서서히 하나의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시기였다고 할까..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직장생활에 대한 책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한 번 입사를 하면 큰 무리가 없으면 정년까지 보장되는 시대였다. 대기업에 입사를 하면 적응을 못해서 나가는 경우는 있어도 회사에서 내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또 여성들은 결혼을 하면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했고 심지어 그룹 본사의 몇몇 회사에서는 결혼을 하면 퇴직을 시키기도 했던 시대였다. 나만해도 입사 후 길게 3년 정도만 다니면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3년이 지금 25년이 되어간다. 그렇게도 지긋지긋해하던 일이 돌이켜보니 정말로 지긋지긋했다기보다는 깨알 같은 재미를 찾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보람된, 또 가끔은 잘 했다고 스스로 칭찬도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는 늘 있다. 정해진 시간 동안은 반드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나지 않게 잘 해야 하고. 그런 반면에 직장에 있음으로 인해서 주어지는 기회들이 있으니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하면서, 견디면서 찾으라"


연희동 한선생이라는 분의 팟캐스트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분의 한 마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일하면서, 견디면서 찾으라"


직장생활, 쉽지 않다. 다들 환상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회사에 오면 즐겁게 차 마시고 이야기하고 서로 칭찬해 주고. 그런 환상적인 직장은 꿈에서나 있는 거다. 그래서 실망하고 직장을 떠난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직장을 떠나 다른 직장에 들어간다고 힘들지 않을까? 직장이 싫어 개인 사업을 한다고 행복한 일상만 기다리고 있을까? 만만에 콩떡이다. 무엇을 하든 힘들다. 하물며 등산을 해도 힘들고, 먼 길을 걸어가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그 힘듦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닌가.


직장생활의 목적이나 목표는 개인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월급에 목을 맬 것이고 어떤 이는 직장이라는 안전한 피난처가 필요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직장을 통해 새로운 제 2의 삶을 모색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목표가 있으면 그를 위해 노력하고 견디는 것이 답이 아닌가 싶다.




학생들을 만나면 잘 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일단 뭐든 시작하고, 시작했으면 바닥까지 파 보라고. 일을 하다 보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모두 끌어올려 극단으로 끌고 가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피치를 끝까지 올려서 한 일과 어설프게 끝낸 일은 반드시 차이가 있다. 자신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능력이다. 아이스링크 쇼트트랙에서 마지막 스케이트 칼날을 0.1초 빨리 결승점으로 밀어 넣는 것, 그 한 끗 차이가 바로 능력이고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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