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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Apr 02. 2016

나는 외톨이 : 리더없이 생활하기

조직배치도 없이 혼자 일했던 입사 후 6개월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 겪은 여러 가지 상황 중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다. 내가 입사를 하고 배치를 받았는데, 이런... 리더가 없는 거다. 조직도 없고, 리더도 없고, 담당해야 하는 일도 정확히 정의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를 채용했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퇴근을 하고 기숙사에 가서도 물어볼 사람이 없고, 직장에 와서도 상사가 없으니 나는 이런저런 직장생활에 필요한 세세한 가르침도 없이 소일하는 일상이었다. 누군가가 일을 시키면 그냥 그 일을 하고 그분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세탁기를 여러 대 놓고 성능시험을 하는 것이 주 업무였고, 일본 책을 보면서 뭔가를 정리하는 일도 했었다. 도면실에서 하청업체로 보내야 하는 도면 접는 일도 도왔다. 가끔은 설계실에 몇 대 없는 PC를 붙잡고 앉아서 에디팅 워드 프로그램인 "장원"을 익히기도 했다. 당시에는 보고서는 손으로 쓰거나 아니면 손으로 쓴 보고서를 사무실 여사원에게 맡기는 게 일하는 룰이었다. 이렇게 눈치로 어깨너머로 배운 장원 덕분에 내 보고서는 내가 타이핑을 해야 했고, 다른 사람들의 보고서까지 내가 타이핑을 해줘야 하는 일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계실에서 장원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


내 일이라는 의미


장원이라는 워드 프로그램을 잘 다룬다는 건 빨리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업계 고등학교에서는 필수로 타이핑을 배운다. 설계실에 들어가서야 PC를 만져본 내가 어떻게 타이핑 자격증을 가진 사람보다 빠르겠나. 그런데 나는 보고서를 직접 써야 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연필로 적은 보고서 내용을 보고 그 내용을 잘 수정해서 타이핑을 해서 줬다. 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일의 주인이라서 직접 그 일을 하느냐, 아니면 시켜서 하느냐가 일의 질을 바꾸어 놓는다. 어떤 경우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과 시켜서 하는 일은 품질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사장들이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교육을 진행하지만 참석자에게 내용 전달하기는 가장 어려운 과정이다. 엄연히 주인이 따로 있는 회사에 대해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것 말이다. 그에 대한 방편으로 회사의 주식을 나눠주는 "우리 사주 제도"를 운영하기도 하고, 사내 소사장제를 도입하기도 한다. 



6개월간 놀지는 않았으니..


첫 리더를 만난 건 입사한지 거의 6개월 만이었다. 첫 리더와의 만남에 대해서는 내가 만났던 리더들 편에서 따로 이야기를 하고, 리더가 없는 동안 내가 배운 건 사람들 사귀는 것, 세탁기로 빨래하는 것, 도면 접는 것 등등 하찮은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혼자서 룰루랄라(내가 뭘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하며 보냈다. 그래서 퇴근도 일찍 했다. 일이 없는데 야근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요즘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회사에서는 딱히 시킬 일이 없었으니 6개월 중 2주간은 공장 생산라인에서 세탁기 조립 실습(이라고 부르고 막노동을 의미한다)을 하라고 했고, 12월쯤에는 3주 정도의 그룹 연수를 보냈다. 가끔씩은 외부 워크숍에 참석을 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저렇게 데리고 일을 가르치기보다는 외부로 돌리는데 머리를 쓰신 것 같다.


생산라인에서 근무한 건 지금까지도 좋은 경험이었고 필요한 경험이라고 본다. 내가 실습을 한 공정은 세탁기 톱 카바(통돌이 세탁기 몸체의 윗부분, 여닫이 문이 있는 부분이다)와 몸통을 스크루로 박는 것이었는데 투입된 지 3일 정도까지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따라잡기에 급급했다. 주변 베테랑 언니들이 도와줘도 내 몫을 다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흘째 되니 속도를 따라잡고, 그다음 주에는 주변 사람들과 농담도 해 가면서 살짝 자리를 비운 언니들의 공정까지 대신해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컨베이어 벨트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이 어떤 건지는 살짝 안다. 그리고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조금은 맛을 봤다. 겨우 2주였지만 경험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천지차이니까.



인화원, 신입사원 그룹연수


그리고 12월 한 겨울에 참석한 그룹 연수에서 드디어 그룹 내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그룹 연수는 채용인원이 많아서 몇 기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는데, 내가 들어갔던 기수는 약 450명 정도 되었다. 인화원의 대강당에 전부 모여서 졸리는 강의를 듣고, 50여 명씩 반을 나누어서 다시 강의를 듣고 틀별 활동을 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인화원을 한 바퀴 도는 아침운동부터, 모두가 기대했던 3주 차 전국 회사 투어 등등. 연수의 마지막 백미는 행군. 약 10km 정도 되는 길을 정해진 시간 내 완주하는 것이 었는데, 이상하게 여사원은 전원 다 패스를 하는데(악바리들만 뽑았을 수도 있고 여사원들이 악을 물고 했을 수도 있고), 탈진해서 탈락하는 건 남사원들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견디지 못할 정도도 아닌 일정의 연수였다.


12월, 인화원 연수... 눈쌓인 인화원

연수 중 다른 회사 대비 여사원이 많은 회사는 STM(System Technology Management)라는 회사였다. 이후 LG-ESD시스템으로 바뀌었다가 EDS와 결별하고 LG CNS가 된 회사였다. 당시 그런 회사가 있다는 것도, 전산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라 분위기도 다르고 좀 부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약 8년 뒤 운명처럼 난 그 회사로 이동을 한다. 사람의 삶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거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연수를 갔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조직개편이 있었고 드디어 나에게도 팀이 생겼다. 그런데... 그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는 많이 힘들었는데, 나도 리더가 되어보고 한 조직을 책임지는 위치가 되고 보니 철없는 신입사원과 이제 막 부임한 신임리더와의 대결구도였다는 걸 알겠다. 나도 힘들었지만 나처럼 막 나가는 사원을 데리고 일을 해야 했던 그분도 참 힘들었겠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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