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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Apr 22. 2016

[잠시 샛길]커리어를 관통하는 그 무엇, "자기인식"

단지 엉덩이가 무거워서만은 아니다.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KTX 안이다. 글을 쓰려고 아이패드를 가져와 직장생활에 대해 쓰고 있는 글을 열심히 쓰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어떤 능력이 있어서 아직까지 다들 어렵다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지.


난 강한 사람? 아니면 살아남은 사람?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이 요즘은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는 말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난 내가 강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지금까지 2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엉덩이가 무거워 뭔가를 바꾸는 걸 좋아하지 않고, 덕분에 남들보다 인내심이 좀 더 있고, 그리고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했다는 것 정도.


내가 일하는 스타일을 설명하자면, 일이 있을 때는 나 자신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일을 하지만 매일매일을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중요한 타스크가 없으면 열심히 일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직위, 직급을 떠나서 어쩔 수 없는 직장인 마인드라 호시탐탐 놀고먹을 궁리를 한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기도 하고, 가끔은 해야 할 일을 슬쩍 숨겨놓기도 한다. 주부라면 공감할 거다. 식사를 하자마자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 놓으면 좋겠지만 어차피 다음 끼니때 또 설거지거리가 나오기 때문에 하루 이틀쯤은 슬쩍 미루는 것처럼. (물론 우리 집은 그 기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문제지만....) 


지금도 실행하지 못했지만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일탈이 있다. 출근길에 그냥 여행을 떠나 버리는 것.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휴대폰도 꺼 버리고,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것. 후폭풍이 무서워서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일인데, 내 성향상 그런 일이 내 삶에 등장하기는 요원할 것 같다. 


경력개발 이론 중에 "계획된 우연"이 있다. 좋아하는 이론 중 하나인데 크롬볼츠라는 분이 만들었다. 이론의 핵심은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 목표를 향해 달린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결과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즉, 성공의 목표를 정한다고 해도 그렇게 될 리 없고, 다가온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이론으로 지금까지의 성공에 대한 이론인 '목표를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진다'와는 다른 주장을 하신 거다. 그분의 이론을 보면서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야. 


아무 생각 없던 초년 시절


처음 창원으로 입사를 했던 그때, 앞으로 내 경력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첫 취업을 할 당시는 한 번 입사하면 정년까지 보장되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당시는 경력개발이라는 말 조차 없었고, 특히 여성은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는 게 최고의 목표였다. 마치 동화 속처럼 백마 탄 왕자를 잡을 생각만 했다. 그래서 당연히 적당하게 직장 다니다가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전업주부로 살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내 삶은 그렇게 풀리지 않았다. 직장생활 20년을 하고 나서야 결혼을 했고, 결혼 당시 난 박사학위를 가진 대기업 인사부장으로 한참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남들 보기에 두 발과 손은 회사에 푹 파묻고 있었지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머릿속 한편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한번 들어가면 평생직장? Oh, No~~


'한번 들어가면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시절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음에도 '직장이 곧 나의 삶'이라는 생각을 벗어나게 된 건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96년 서울 발령을 받고 올라왔을 때였다. 서울로 올라온지 약 1년이 난 후 한국 전체가 경제위기에 빠졌다. 98년 IMF사태를 서울에서 직접 겪었다. 회사에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골머리를 싸맸다. 성과급이나 임금인상은커녕 급여 자진반납, 릴레이 자기계발 무급휴직, 복리후생제도 축소 등으로 비용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인원감축, 명예퇴직 등등의 살벌한 말들이 TV 엥커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회사에서 가차 없이 진행되는 비용절감 및 인원감축에 대한 이야기는 회사를 떠나는 당사자가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힘들었던 서울생활과 국가경제 파탄은 지금까지 평생직장이란 단어를 내 머릿속에서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떠나는 마당에 난 다른 회사로 이동했고 승진까지 했다. 덕분에 다시 평소의 바쁜 직장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단지 변화가 있다면 평생직장이라는 단어가 있던 자리가 텅 비었다는 거다. 그때까지도 그 단어를 대신할 그 무엇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바빴다.


두 번째 확실하게 내 삶에 대한 방향을 세우게 된 것은 내부 제보자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LG에서는 정도경영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강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비자금을 만들거나 회사 비용을 유용한 경우 아주 강한 제재를 했고 징계를 받았다. 정도경영 위반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 중 하나가 그룹 홈페이지를 통한 무기명 제보였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부서도 비자금을 조성해서 유용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고 감사를 받았다. 내부 제보자로 몇 사람이 지목이 되었는데 내가 그중 한 명이었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다. 멍해졌다. 머리가 텅 비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기에 이런 지목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난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으나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상황이라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를 살리는 건, 나 자신의 능력


그 사건으로 인해 부서는 초토화되고 많은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모두 손 놓고 있는 동안 불안한 여유가 생겼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밤을 밝혀가면서 일을 했는지, 그 결과가 이렇게 밖에 안되는지를. 지금까지 "회사=나"라는 생각을 벗어나 "회사는 회사, 나는 나"라는 구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직장생활이든 뭐든 생존을 위해서는 내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더 악착같이 살았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회사가 아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등 외부 세상에 대한 시야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아마 그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회사라는 태양만의 바라보는 해바라기 신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비롯한 내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다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많은 갈등을 겪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또 그만큼 많은 희열이 있었다. 힘든 한 달을 보내면 통장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월급이라는 신기루 마약도 힘을 내게 하는 희열 중 하나였고(물론 관성이 생겨 약발이 지속되는 시간이 한 달에서 몇 초로 광속으로 짧아졌지만), 하나의 힘든 과제를 끝날 때마다 느꼈던 자긍심은 뭐로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하고 짜릿한 희열이었다.

잠시였지만 프리랜서로 강의와 코칭을 할 때 직장생활에서 얻었던 짜릿함을 느낄 수 없음이 안타까웠던 것 중 하나였다는 걸 보면 어지간히 직장생활에 길들여진 것임에는 틀림없나 보다.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성공적이던 아니든 간에 상관없이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있고 그리고 내 미래를 향한 벽돌을 쌓아 올리고 있는 중이다. 내 삶이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는 방향도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또 다른 기회가 온다면 잡을 거다. 삶이란 늘 선물을 숨겨두고 있고 내가 찾은 선물은 또 삶의 궤적에 작은 흔적을 남길 거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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