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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현 행복코치 Aug 07. 2016

나를 찾아가는 다양한 방법들

내 삶에 들어온 많은 점들, 5편

20여 년을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동안 회사에서 일만 한 건 아니다.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고 틈틈이 시간이 나면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책을 읽었고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건 간단히 멍하게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책을 통해 스스로 진단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칭을 만났고 그 과정의 결과가 지금의 내 모습이다. 코칭은 참 어처구니없이 내 인생에 툭~하고 떨어진 선물이었다.  


코칭 교육에서 눈물보가 터지다. 


인사팀의 과장일 때 담당업무 중 하나가 리더십 진단이었다. 리더를 대상으로 본인, 동료, 부하, 상사의 360도 진단을 하고 그 결과를 각 리더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단순하게 생각했던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리더십 진단을 진행하는 것은 쉽다. 대상자는 회사의 전체 리더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대상자가 결정되면 진단 설문에 응답해야 하는 사람도 자동으로 정해진다. 그럼 설문시스템을 통해 설문을 하세요! 하고 안내하고 결과가 취합되면 결과를 안내하면 끝나는 단순한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어려운 것은 그 뒤의 상황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너무 다른 결과를 본 리더들이 담당자인 나를 찾아봐서 해법을 찾아달라고 하는 거다. 그런데 난 그 당시, 그냥 단순한 인사업무 담당자였을 뿐이지 그 결과를 통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명 두 명 고민을 이야기하는 리더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를 해주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갈증이 났다. 그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 "코칭"이라는 것이 다가왔다. 그래서 누군가 1년 코칭 교육과정이 열리는데 참석해보겠냐? 는 말에 OK를 외치고 달려갔다.


 1년 코칭 교육과정은 한상담학회의 유동수 선생님이 직접 운영하는 과정이었다. 그때 1기를 운영하고 운영을 더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신 분으로부터 코칭을 배웠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상담이 무엇인지, 집단상담이 무엇인지, 감수성 훈련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수강생이 누구인지 미리 알았다면 감히 참석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거다. 어쨌든 아무것도 모르고 참석한 1년 기간의 코칭 과정 첫날, 교육내용은 완전 충격이었다. 어떤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다른 글에서 풀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난 지금까지 꽁꽁 감춰뒀던 "내 속에 있는 발가벗겨진 나 자신을 만났다." 그리고 그 첫 만남에서 내 눈물샘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처음으로 만났다. 강해 보이려고 하는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작고 왜소하기만 한 진정한 내 모습을 말이다. 


구본형 선생님의 나를 찾아가는 여행, 사흘간의 인생 총정리 


그렇게 코칭 과정을 1년간 마치고 나는 역시나 회사일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회사일은 정신없이 흘러가고 그리고 나 자신도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무언가를 하고 싶어 졌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닌 타인의 시간이었고 그렇게 보내기에는 내 삶이 내 인생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그때 다가온 것이 한 번은 뵙고 싶었던 지금은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과의 만남이었다. 


구본형 선생님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자아를 찾아가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가격인 100만 원의 거금이 드는 교육과정이었다. 좋은 점은 평생 무료 참석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는데, 이제 선생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지금 소용이 없어졌다. 얼마 전 변경연의 수제자 여러 명이 과정을 다시 재개했던데 그때의 그 조건이 유지되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강원도의 한 펜션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무엇을 더 할지를 찾아보는 자기성찰 프로그램이다.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MBTI 진단을 하고, 자신에 대한 수필을 써서 제출해야 한다. 처음으로 써보는 나에 대한 일대기, 정말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별로 없었다. 당시 벌써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결혼할 상대도 없고, 회사는 너무나 다니기 싫지만 다른 방안이 없으니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시기였다. 어쨌든 이번 과정을 통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 기대로 참석한 교육에서 구본형 선생님은 나에게 "너는 아직 회사를 더 다녀야 되겠다"라고 하시는 바람에 입이 삐죽거리기도 했다. 


그때 그 말씀처럼 10년이 지난 지금도 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늘 가슴 한 구석에는 제출하지 못한 사직서를 품고서 말이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그 방법은 글이든 말이든 무엇이 되었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성장을 희망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그 방향으로 지금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칭을 배웠고, 그리고 늘 마음과 머리의 한 구석에는 코칭을 담고 있고, 그리고 또 이렇게 글을 쓰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강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정 이후 가끔 구선생님을 뵐 때마다 나에게 "너 연구원 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1년 과정의 험난한 길을 헤쳐갈 자신이 없어서 시도를 하지 않고 내년에.. 내년에..라는 말을 했던 것이 이제는 후회가 된다. 어디서 그런 깊이 있고 따뜻한 리더를 만날 수 있을지 싶다. 한창의 나이인 59세에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구본형 선생님의 명복을 기원한다. 아마 저 세상에서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멋진 목소리로 시를 읊고 계실 것 같다. 


무의식 속의 나를 만나는 길, 모닝 페이지 


줄리엣 카메론의 명작인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이 있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내면에 숨은 예술적 감성을 찾아가는 12주의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책이다.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모닝 페이지다. 아침이나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적는 것인데, 12주 간의 아티스트 웨이를 하면서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적었다. 노트로 몇 권을 쓴 것 같다. 총 12주, 7일을 하면 약 84일간의 기록인데 그 기록이 내 내면의 무엇인가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처음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했었는데,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를 통해 흘러나온 내 내면의 이야기는 슬펐다가 기뻤다가 널을 뛰었다. 어떤 날은 이 정도면 잘 살아왔다고 자위를 하다가 어떤 날은 꺼이꺼이 목을 놓아 울기도 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모닝 페이지는 아침에, 그것도 머리가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쓰는 것이라 이성이 충분히 나 자신을 점령하지 못한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글의 순서도, 글의 논리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이성이 통제하지 못하는 감성의 이야기, 내면의 이야기를 끌어냈다는 거다. 


어느 날 모닝 페이지를 쓰는데 바로 옆에서 조그만 여자애가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느낌만으로 존재를 알리던 그 애는 나를 아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마치 '너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그 정도면 된 거 아냐? 나도 좀 사랑해 주지?' 그런 이야기를 전달해 왔다. 그 애는…. 바로 나였다. 그렇게 나는 나를 닦달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던 거다. 지지 않으려고 나를 지키려고, 하루하루 직장생활에, 사회생활에, 원래 내성적이고 의견을 잘 내비치지 않던 나 자신이 당시의 모습을 가지기 위해 부던히도 애를 쓰고 살았더란다. 그래서 내 내면에 있던 나의 순순한 나 자신은 그게 너무나 힘들었나 보다. 그 애의 눈길을 느낀 이후, 내 삶을 조금은 편하게 조금은 천천히, 조금을 힘을 빼고 살아가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는 않았다. 


모닝 페이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내 내면에 누가 볼세라 꽁꽁 숨겨놓았던 내 존재를 깨닫게 했다. 결국 나는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기를, 사람들을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해내기보다는 스스로를 움직여서 뭔가를 해내고 싶어 하는 사람임을 다시 알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배운 버크만 진단에서 그 사실은 어김없이 확신할 수 있었다. 본성과 다른 행동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나를 말이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일을 만들고 또 해결하고, 그렇게 몰아치듯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 내면의 모습은 그냥 혼자서 나를 닦달하면서(?) 일을 만들어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400일 감사일기를 쓰다.


전 직장을 퇴직할 무렵부터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한 이유는 단순하다. 난임클리닉을 다니면서 자존감이 너무 많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스스로 노력해서 안된 게 없었는데, 이 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함께 난임을 겪고 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모임을 하면서 서로 위로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시작한 것이 감사일기였다. 무엇인가 스스로 감사할 것을 찾아야 했다. 너무나 힘들기도 했고 견딜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무어라도 해야 했다. 난임 카페에 감사일기를 시작했다. 하루하루 무조건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한다는 중압감이 대단했다. 처음에는 감사할 게 너무 없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고, 출퇴근 길에 시달리고, 결혼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무슨 그렇게 감사할 것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알량한 책임감 때문에 하루하루 계속 적어나갔다. 


남편과 신경전을 벌이면서도 회사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감사할 것을 찾았고, 해외여행을 가서도 날짜를 넘겨서도 감사일기를 써 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아지는 순간이 왔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끔 속을 썩이는 남편이 곁에 있는 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누군가는 위선으로 느껴질 만큼 진지하게 감사할 것을 수십 가지라도 찾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온몸이 화상으로 일그러진 지선 씨가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남아 있는 것도 감사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순간이 왔다. 내 마음은, 조금씩 긍정의 마인드로 변해갔다. 


총 400일의 감사일기를 썼다. 그리고 감사일기의 마지막에 이제는 의도적인 감사의 글을 쓸 필요가 없음에 감사했다. 감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에 머리에 감각에 각인이 된 덕분이다. 감사일기를 쓴 이후로 감정이 흔들릴 일이 생겨도 원래의 평온한 감정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코칭 교육과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


코칭 교육을 받으면서 많은 코치님들을 만났다. 태생이 그래서 그런지 그분들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고 생각할 시간을 준다. 코칭 과정 중 잠깐잠깐의 대화 속에서도 나는 많은 것을 털어낼 수 있었다. 어릴 때의 좋지 않았던 기억들, 성인이 되면서 켜켜이 쌓여 있던 삶의 찌꺼기들, 그리고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기억 조각들. 그것을 정리하고 걷어내는데 코치님들이 버팀목이 되었다. 코칭 주제를 두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던 내 어깨를 감싸고 쓰다듬어 주던 코치님들과 스스로 틀을 깨지 못하고 주춤거리던 내가 용기를 내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있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내면에 있는 큰 에너지를 쓰라"라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던 코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도 어려움이 있으면 마음을 추스르고 싶을 때마다 연락을 드리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로부터 얼마나 큰 에너지를 얻는지 모른다. 늘 감사할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것을 그분들처럼 다른 이들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아직도 그런 기회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말을 듣는다. 그냥 혼자 멍하니 있기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척 보면 압니다... 하듯이 얼굴에 "목하 고민 중"이라는 팻말이라도 붙어 있는 걸까. 중, 고등 때도 생각이 많았고, 그 전에도 책만 보이면 들고 앉는 성미라 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쨌든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지만 어릴 때 그렇듯이 개똥철학만 한 가득 머릿속에 담고 있는 수준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지금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고민했고, 늘 만족이라고는 모르고 생활한 것이 맞다. 나의 생활에 만족하고 살게 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결혼을 하고 남편과 살아가는 핀트가 어느 정도 맞고 나서야 평온한 삶이 되지 않았나 싶다.  


젊었던 30대에는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가기보다는 주변의 도움을 얻어서 내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면, 조금 내공이 쌓인 40대에는 스스로 방법을 찾아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정도로 성장한 것이라고 토닥여주고 싶다. 스캇 펙의 책 제목처럼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많지만 지금으로도 저으기 만족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싶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얻는 것이 훨씬 빠르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가면 그다음에는 스스로의 노력과 에너지로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앞으로 내 내면이 어떻게 성장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혹자가 이야기하듯이 '삶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안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냐?' 하듯이 안갯속 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재밌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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