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행복코치 Oct 31. 2016

시야의 발달단계

내 삶에 들어온 많은 점들, 6편

이 글은 약간 번외, 프리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니까. 변화는 당연한 것이니 뭔가 변화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또다시 생각해보면 직장생활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은 사무실, 나의 일터


입사 후 첫 근무지는 창원공장 중 작은 부서인 세탁기설계실이었다. 업무의 범위는 세탁기에 한정되었고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도 정해진 몇몇이었다. 하지만 설계실은 작다고 할 수 없었다. 총인원이 130명이나 되었으니까. 물론 130명의 세탁기 설계실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것과 업무를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개인적인 친분과 업무능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도 일에서는 철저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참 지랄 같은 성격이라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일머리도 있고 깔끔하게 일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회사 동료로는 까칠해도 일을 잘 하는 사람 편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때는 세탁기 설계실에서 세탁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판매가 되는지만 알면 됐다. 손익이 얼마인지 총매출이 얼마인지는 나에게는 안드로메다처럼 머나먼 이야기였다. 설계실에서 그냥 세탁기만 파는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발령을 받았다.


공장이 이렇게 복잡한 조직이었어?

 

앞서 이야기한  Super A 프로젝트 팀장이 된 거다.

공장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팀의 리더가 되면서 내 시야는 넓어지기 시작했다. 한 사무실이 아닌 공장 전체를 보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범위가 공장 전체였고 창원 2 공장에는 세탁기 이외에도 에어컨, 청소기, 브라운관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 각 공장의 위치가 어딘지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알았다. 그때서야 한 공장을 움직이기 위해서도 인사, 재무, 공무 등등의 많은 부서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조직과 업무협의를 하는 방법도 배웠고. 대리지만 프로젝트 팀장이라는 위치 덕분에 만나기 힘든 부장님들과 협의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 공장 전체를 보는 시각을 익혀 나갔다. 


회사 전체를 보다.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창원공장만 아니라 구미, 평택, 김해, 청주 등 LG전자의 모든 공장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각 공장의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무엇을 주로 생산하는지, 본사에서 각 공장을 어떻게 무엇으로 평가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공장생활과 서울 본사의 생활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 공장의 생활은 흔히 이야기하듯 기계를 만드는 사람들의 단순하지만 따뜻함이 있다. 하지만 본사는 돈과 마케팅, 전략을 주로 다루는 곳이라 그만큼 세련되었지만 차가운 곳이다. 물론 두 지역을 단순 비교한 상대적인 이야기이기는 하다. 공장은 야전이고 실전이라고 하면 본사는 후방에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 모인 그런 곳, 그래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은 지방 공장보다는 서울 본사에 더 어울렸다. 


투박한 따뜻함  vs.  세련된 차가움 


서울 본사 발령을 받고 올라온 첫 해는 비슷한 이유로 많이 힘들었다. 서울 직장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의 점검일 수도 있지만 힘들었던 것이 의류학이라는 학부 전공이었다. 당시 서울 본사의 인사부에서는 내놓으라는 서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경영학, 심리학, 그도 아니면 경영대학 출신들이 주류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 창원에서 발령받아 올라온 지방대 의류학과가 끼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알게 모르게 많이 무시를 한 것 같다. 하긴 아는 것이 없으니 무시를 할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내가 아는 것이 없었다. 다들 알아듣는 Infra라는 말을 나만 몰랐다. 그래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학부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고 MBA를 하자고. 이왕이면 인맥보다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그래서 서강고등학교라는 별명이 찬란한 서강대 MBA로 진학을 했다.


회사와는 다른 학교생활


MBA 과정은 공부도 공부지만 나에게 더 많은 의미가 있다. MBA를 하면서 한국에 얼마나 많은 회사가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 학년에 MBA는 약 80명 정도를 선발하는데, 내가 하는 회사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고 몇몇은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경영자였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회사를 벗어난 사회를 보게 되었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장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직장인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더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던 말도 무색하게 MBA를 어렵게 졸업하고 얼마 뒤 다시 박사과정을 하기 위해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박사과정을 보내고 논문을 준비하는 3년 반의 기간 동안 또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부기관 사람들을 만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렇데 학교의 특성인지 동문 중에 의외로 정부기관 사람들이 많았다. 정부의 정책을 만들고 이행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공무원들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일을 해나가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인적 네트워크는 점점 넓어져 갔다.  


직장을 벗어나 만난 사회에서 경험한 인간관계


세상을 직접 경험한 것은 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던 약 1년간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코칭 회사 프로젝트 멤버로 일을 하고, 여기저기 모임에 얼굴을 내밀면서 조금씩 직장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사회의 모습을 조금은 맛을 봤다. 실력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람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밑바닥에는 성실함과 인성, 책임감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Global이란..


그렇게 사회에 대해 조금 경험을 하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와서 불완전하지만 초급 임원이 되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가 해외에 생산공장이 있다 보니 해외에서 일을 하는 것,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절절히 경험하고 있다. 지금 회사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 어떤 것으로 귀결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경험 또한 내 삶에서 귀중한 자원이 되고 한 획을 그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런 경험을 하는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쓸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어 그리 특별할까 싶었는데,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나 혼자이고, 아주 특별한 경험이라는 사실 말이다. 20년 넘게 한 영역에서 일을 했고, 그리고 그 일을 아직도 사랑하고 잘 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이 그 증거가 아닐까.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일을 해본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함께 일을 하는 곳은 어디든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는 것 말이다. 성실함, 실력, 책임감을 겸비한 사람은 누구든 좋아하고 어떤 경우에도 선호 대상이 된다는 것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찾아가는 다양한 방법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