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현 행복코치 Oct 31. 2016

직장인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언제나 사직서가 있다

그렇지만 실행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브런치의 글들을 보면 사직했다, 퇴직했다는 것에 대한 글들이 인기가 많다. (그래서 25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런 글은 인기가 없나 싶기도 하다.) 


왜 퇴직을 했는지, 회사를 그만두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적은 글들이다. 이들이 퇴직을 한 사유는 다양하다. 희망이 없다, 선배들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다 등등. 그중 선배들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아 힘들었다는 말이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들이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건달할배 채현국 님이 한 말씀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직장생활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데,
지금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다."


젊은 세대들의 말에 나까지 별 볼 일 없는 선배로 여겨져서 가슴이 먹먹하다가 '절대 하찮게 여겨져서는 안 되는 직장생활'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이렇게 가볍게 여기는 세태가 안타까웠다. 왜 그렇게 퇴직에 대한 글이 인기가 많을까? "이십 대의 태반이 취준생"이라는 이태백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돌 정도로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인 요즘에 말이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갔으면 잘 견디고 무어라도 쟁취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퇴직을 할 거라면 애당초 취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맞지 않았을까? 요즘은 정부차원에서 신생기업 설립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내 가슴속에도 사직서는 늘 함께 했다.


나도 가슴에 손을 얻고 말을 하자면, 내 가슴 한 귀퉁이에도 사직서가 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하는 상사를 만났을 때,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대놓고 무시를 당했을 때, 가끔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뒤로 밀릴 때, 가아 끔 있었던 성희롱에 가까운 짓거리를 당했을 때, 이만큼 했으면 되지 않았나, 이제는 그냥 쉬고 싶다는 등등의 무책임한 이유까지. 


많은 이들이 멋지게 사표를 던지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걸 꿈꾼다.  하지만 선뜻 실행을 할 용기는 없다.

나만해도 경험하지 않은 걸 시도할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손을 놓아버리면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차마 직장이라는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퇴직을 하고 나면 세상이 끝날 것 같았다. 무서웠다. 


퇴직 이후...


그렇게 두렵고 어려워했던 걸 실제로 했다. 많이 두려웠고 겁났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21년간 다닌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떠나는 날,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유라고 할까. 약 1년간을 소속 없이 살았다. 소속은 없었지만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고, 그동안 직장에 매어 있었기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런 중에도 가끔은 남편 출근을 챙겨 주고 느지막이 운동을 하고 늘어지게 누워서 책에 파묻히기도 했다. 물론 20년 넘게 늘 고정적으로 통장에 찍히던 숫자가 사라졌기에 무언가 기댈 곳이 없다는 불안함은 있었지만 비정기적으로 찍히는 낙전 같은 숫자들이 그 부분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메워주었다. 직장을 떠나면 죽을 것 같이 두려웠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또 시작한 직장생활


하지만 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소속 없는 자유도 좋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다 무시하고 또다시 그 어렵다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글쎄다.. 딱히 내세울만한 이유가 있지는 않은데,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닐까… 직장 초년 시절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직장에 다니는 것밖에 몰라서 그랬다고 해도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아직까지 그 어렵다는 직장생활을 나는 해내고 있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는 말은 너무나 가볍게 값싸게 스스로를 폄하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매일매일 직장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그걸 견디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하지 않은가.. 


직장을 떠나고 싶은 이유만큼이나 지금까지 사표를 던지지 않은 이유도 많다. 


첫 번째는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두 번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내려고 하는 책임감 때문에

세 번째는 뭔가 새롭게 할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네 번째는 어디를 가나 비슷할 거니까.

다섯 번째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여섯 번째는 그냥 이렇게 지내도 될 것 같아서… 


이유를 들자면 끝도 없다. 


이 중 가장 명쾌한 대답은 무엇일까? 


결혼 전에는 나 스스로 먹고살아야 했으니 그렇다고 치고, 결혼 후에는 '힘들면 그만두라.'는 든든한 남편도 있는데 말이다. 지금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첫 번째와 두 번째가 큰 이유다. 이 회사에 입사하면서 했던 생각을 지키고 싶어서. 이 회사의 인사 프로세스나 체계를 대기업 수준으로 올려놓고 싶다는 나 혼자만의 책임감 때문에.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설계실장님께서 전체 회의를 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회사를 오는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그 이유가 월급이 되어도 좋고, 성취감이 되어도 좋다. 단 그 이유가 스스로에게 납득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직장생활을 하기 힘들다고. 


그 말이 지금 떠오르는 이유는 지금 내가 충분히 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일까? 어쨌든 지금 내게 주어진 역할, 책임, 의무는 조금씩 수행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한 구석에는 사직서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면서 하품을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야의 발달단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