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그늘 아래 서면
차문을 내리면 들려오는 노랫소리
창문을 내리기 전에도 들리는 댄스곡도 있지만
평소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운전자를 다시 보게 된다
(옛사랑)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이문세 노래를 듣는 사람이 이젠 많이 없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차창 너머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대부분 옛 추억팔이 라디오 프로에서
단골 메뉴로 틀어주긴 하지만
cd나 mp3로 작정하고 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나 할까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오면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내가 사랑한 얘기 우 우우우 우
주유소 그늘 아래 서면
주유소 기름 향기 맡으며 잊을 수 없는 기억에
내 맘 데로 가사를 바꿔 부르며
밥 먹으러 들어오는 차들을 기다린다
우 우우우 우
그 하늘 밑 그 향기 더하는데
우 우우우 우
혼자 미친 듯 노래 부르고 있는데 차가 주유소로 들어왔다
오! bmw 520 이놈 잘 나가는 놈이지
" 주유구 열어주세요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오만 원"
"네 ~알겠습니다"
익숙한 몸놀림 무의식적으로 캡을 열고 노란 주유기를 집어넣는다
"많이 먹어라 먹고사는 거 중요한 거다 열심히 달리려면 먹어야 달리지 ㅋㅋㅋ"
오만 원은 금방 주유가 끝났다
캡을 닫고 주유구를 닫으니 bmw는 천천히 나아갔다
"벤츠보단 날라리티 나는 bmw 가 좋아"
다음에 들어온 차는
그랜져 각 그랜져
"이야 오래된 차네"
차창이 열리며 중년 남자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만땅너주슈"
들리는 노랫소리는
잇히 요시 앗싸 싸 아싸
아하 신바람 이박사 ㅋㅋㅋ
"네 주유구 열어주세요"
주유하는 동안 혼자 노래하기 시작했다
몸은 알아서 일하고 머리는 딴생각하고 ㅋㅋㅋ
(나는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주유는 정말 금방 끝나고 새로운 차가 온다
차창이 내려갈 때마다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주크박스 같지만 주유시간이 짧다는 게 아쉽기만 하다
빨간 마티즈!
이번에 들어온 차는 빨강 마티즈 내가 기다리는 마티즈는 아니지만 차창 너머로 클래식이 들려온다
"모차르트 밤의 여왕의 아리아"
매주 금요일이면 아침에 빨강 마티즈가 온다
내일이면 빨강 마티즈가 올 것이다
항상 이문세 음악이 들리는
선글라스로 이쁜 눈을 가리고 앞만 보다 주유가 끝나자마자 그냥 휙 가버리는 빨강 마티즈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 미소가 아름다워요
눈을 감으면 싱그런 바람 가득한 맑은 숨결이 향기로워요
길을 걸으면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
하늘을 보면 님의 부드런 고운미소 가득한 저 하늘에 가을이 오면
뒷좌석에는 샘플들과 도안들을 가득 실고 전국의 대리점들을 돌기 위해 마티즈 밥 먹이러 금요일마다 온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매주 얼굴 한번 볼 수 있었다
(기억이란 사랑보다)
내가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건
그대 내 생각하고 계신 거죠
....
기억이란 사랑보단 더 슬퍼
갑자기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영훈이 녀석이 주유소 사장이랑
결국 붙었다
평소 최저인금보다 적다고 불만이 많았는데
결국 사장이랑 싸운 것 같다
영훈이는 장갑을 던지고 나갔고
사장은 주유소 화장실 옆으로 가서
담배를 피운다
(그녀의 웃음소리뿐)
하늘은 맑아있고 햇살은 따스한데 담배연기는 한숨 되어 하루를 너의 생각하면서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흰 구름 말이 없이 흐르고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걸
어느 지나간 날엔 오늘이 생각날까 그대 웃으며 큰소리로 내게 물었지
사장아 나도 네 마음 안다
결국 금요일은 영훈이 몫까지 근무하게 돼버렸다
5시부터 11시까지
"사장아 내 맘은 알겠지만
특근비는 줘라 응"
오늘 빨간 마티즈
오늘은 이문세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무슨 일 있나 걱정이 된다
언제나처럼 선글라스로 이쁜 눈을 보여주지 않고 앞만 보고 있지만 백미러로 날보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다
이문세의 노래도 안 들리고 뒷좌석의 짐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옆좌석에 청첩장 뭉치들 쇼핑백 하나 정도 될까
"일거리가 없나 요즘 불경기라 걱정이네"
주우는 역시나 빨리 끝난다
그렇게 빨강 마티즈는 가버렸다
오늘은 하루가 길었다
영훈이 녀석이 밉기도 했지만 이문세 노래를 듣지 못해서 더 긴 것 같았다
오늘의 하일 나이트는 밤 10 씨쯤 친구 놈의 전화였다
"야! 제수 씨 재혼한단다"
불러 불라 불라
그다음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다음 일주일도 기억나지 않는다
금요일이 되었지만 빨간 마티즈가 왔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영훈이 땜빵이 힘들어서 기억이 안 나는 건지
빨강 마티즈가 안 와서 인지
"빨까 마티즈 못 오면 내가 찾아갈 수도 있을까?"
혼자 피식 웃는다
(깊은 밤을 날아서)
그러나 우리들 날지도 못하고 울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꿈결처럼
고운 그대 손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
영훈이 녀석이 다시 출근해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사장이 최저인금을 맞춰주기로 한 것 같다
"나는? 사장 녀석 ~한번 술사 들고 가야지!!"
이번 주 금요일
그러나 빨간 마티즈는 오지 않았다
빨까 쉐 버려
몸도 피곤했나 잠시 멍 때렸다고 돈을 차창 밖으로 던져 버리고 가버리나
"젊은 아가씨가 입도 거칠어"
빨까 수에 버려 이혼 전 집사람이 타던 차인데
딴딴하게 생긴 차체에 묵직한 승차감
빈틈없어 보이는듯한 차
나에겐 그런 이미지가 남아있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보고 싶던 그 얼굴을 그저 스쳐 지나면 그대의 허탈한 모습 속에 나 이젠 후회 없으니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그렇게 또한 주가 지났다
몸은 편해졌지만
사장과 술은 잘 먹었지만
멍한 한주는 그렇게 쉽게 지나갔다
금요일
오늘 아침에 빨강 마티즈가 왔다
창문이 내려가고
이문세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굿바이)
굿 바이하며 말없이 떠나가 버린 고운님의 모습이
날마다 아침 햇살 속에 서 있는 건
내 마음속에 그리움인가요
"오만 원이요"
그녀는 앞만 보고 있다 화들짝 놀라며 지갑을 찾았다
지갑에서 오만 원 꺼내 나에게 건넸다
"가득 채우면 6만 원 정도 나왔는데?"
"내 축의금이다 돈은 넣어두고 잘살아라
이제 이문세 노래 그만 듣고 딴 노래 들어"
어떻게 알았어? 그녀가 처음으로 나를 처다 보면 이야기했다
"승철이가 전화했더라 재혼한다고 축하한다 이제 나 같은 건 잊고 잘살아라"
그렇게 빨강 마티즈를 보냈다
(소녀)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노을 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며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음~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노을 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면
찾고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