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무거운 구름이 가득했던 2월의 첫날, 쏘피를 소풍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에 앉아있던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도 나중에 세상을 떠날 때,
쏘피처럼 저렇게 잠자듯이 편안하게 떠나고 싶어.
가족들 얼굴 하나하나 다 보고, 잠자듯이 편안하게..."
아들은 나의 말을 유심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창 밖의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의 죽음을 능동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나에게도 그런 복이 있을까?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있을까?
'능동적인 마침표' 예전에 보았던 이 문구가 생각이 난다.
능동적인 마침표...
쏘피의 죽음은 능동적인 마침표인가...
쏘피야, 그렇게 너를 보낸 나를 이해할 수 있겠니?!
나는 맞는 건가?
나는 괜... 찮은 건가?
쏘피를 소풍 보내고,
죽음이 나의 곁에 함께 한 이 순간이
힘겹다.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조각들이 파편이 되어
나의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2월의 첫날 이른 아침,
가족 모두 분주히 움직였다.
한숨도 자지 못한 얼굴의 아들과 딸은
비몽사몽 한 쏘피를 쓰다듬고 있었다.
쏘피는 전날 밤에도
착, 착, 착, 착, 착...
중독성 강한 발자국 소리를 내며
온 거실을 헤매고 비틀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방향감각을 잃고 구석으로 들어가면 나오질 못했다.
이렇게 수많은 날과 수많은 밤을
독한약을 먹으며 버티고 버텼다.
쏘피의 약은 날이 갈수록 양이 많아졌고,
그 많은 약을 먹어도 증상은 심해졌다.
간수치는 정상치의 몇십 배가 넘은 지 한참이 지났다.
그냥 그렇게 녀석은 버티고 버텼다.
한계를 느낀 것은
걷다 쓰러지고, 걷다 쓰러지고
그래도 또 멈추지 않고 걷다 쓰러지는 녀석의 모습을 보던 날 밤이었다.
병원에서 비상시에 먹이라고 준 수면제를 먹여도 녀석의 증상은 제어되지 않았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본 가족 모두는 대성통곡을 했고,
고통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녀석을 끌어안으며 나는 펑펑 울었다.
'이제는 너를 보내줘야겠구나.
이 결정을 너는 못하니, 내가 해야 하는구나.
내가 널 보내줘야겠구나.'
그리고 다음날
나는 수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목이 꽉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목을 풀어보려
침을 꿀꺽 삼켜보지만,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가족들과 상의를 한 후, 전화드립니다.
쏘피가 이제는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안락사 진행을 하고 싶어요.
안락사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혹시... 많이 아픈가요?"
수의사 선생님은 나의 질문을 들으시고,
침착하게 대답하신다.
"가족들과 모두 상의하시고 전화 주신 거죠?
안락사가 진행되면 그 속도는 굉장히 빠릅니다.
주사 한방이면 아이가 잠자듯이 그렇게 끝납니다.
그렇게 보내면 이제 다시는 아이를 보실 수 없습니다.
...
신중하게 생각하신 건가요?"
수의사 선생님의 대답을 들으니,
참았던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선생님, ㅠ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쏘피가 혼자 떠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워요.
그리고 밤마다 너무나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해요. 이제는 보내줘야겠어요.
쏘피가... 쏘피가 많이 힘들어해요."
그리고 그렇게 쏘피의 안락사 날이
2월 1일로 정해졌다.
2월 1일 아침,
쏘피는 아침밥을 먹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쓴 약을 억지로 먹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산책을 갔다.
침통한 표정의 아들과 딸은 쏘피를 연신 쓰다듬고, 끌어안고,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그 동그란 눈을 많이 많이 쳐다봤다.
그 좋아하던 산책도 녀석은 힘든지 기운이 없다. 잔뜩 구겨진 표정과 힘없는 걸음걸이...
누구를 위한 산책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녀석은 힘들어했다.
그렇게 녀석의 마지막 산책이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녀석을 가슴으로 꽉 끌어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10시10분 눈의 쏘피. 마지막 산책길이 참 힘들었나부다.
누워있는 쏘피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는 딸
햇볕을 받고 자고 있던 너, 그립다.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