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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마을아파트 Jun 02. 2024

38화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그리워만 하기, 아파하지는 않기


나에게 글쓰기의 시작은 녀석이었다.

이제는 그런 녀석이 없는데, 나의 글은 어디로 가야 할까.

브런치에 글을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의미 없는 움직임만을 반복한다.


그렇게 무심히 시간은 흐르고,

아직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 채

그렇게 다시 시간은 흐른다.



어느 날, 난장판인 집안꼴이 유독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어지러웠던 나의 마음을 보여주듯,

집안꼴도 딱 나랑 똑같다.


그래서 집정리를 시작했다.


첫 번째, 거실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꽂이의 책들을 다 꺼냈다. 그리고 알**, 예스** 중고서적 팔기 앱을 통해 책 뒷면 큐알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큐알코드 찍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동안 눈과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던 사랑스러운 나의 책들이 또 다른 이들을 가득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에 책들을 분류하고, 상자에 담기 전 다시 한번 먼지를 털어내고, 책 상태를 확인한다.


그리고 집 정리는 (아니 내 머릿속 정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금씩 조금씩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녀석을 보낸 이 아픔도 허전함도 정리되지 않을까.




책 분류 중







녀석의 사진을 보면 가슴 한구석려와

한동안 사진조차 피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 한쪽에서

늘 나를 기다리고 있던 녀석의 모습과 눈동자.

언제나 나를 반겨주던 윙윙 프로펠러 꼬리와 동그란 눈동자, 그리고 아이보리빛 포근한 털냄새.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자리에

녀석이 있다가, 녀석이 보였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뜨면

빈자리뿐.


나의 오감에 새겨있던 녀석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큰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지난했던 그리움과 아픔의 시간을

무작정 걷다 보니, 

저어기 저 앞에 은 불빛이 어른거린다.


이제는 너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살펴보고

일상에서 너와 함께한 순간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아픔보다는 함께했던 찰나의 기억을 회상한다.


한 장 한 장 사진 속 녀석은 꽤 괜찮아 보인다.

인간만이 표정이 있지 않나 보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녀석을 보며

나도 따라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한 아이보리빛 행복이 스며든다.


그래서 이젠 그리워만 하고, 아파하지는 않기로 했다.

진하게 녀석이 보고 싶어져서 나오는 눈물은

아니 콧물은(눈물을 참으면 콧물이 나오더라)

...

음!  그냥 쓰윽 닦아버리지 뭐!




사랑해 쏘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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