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아무거나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지 않는연습.
언젠가부터 캠퍼스는 우리가 그토록 말하던 ‘낭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 듯하다. 내가 어렸을 적 중고등학교 시절 때만 하더라도 10년 뒤를 생각하면 활기찬 캠퍼스에서의 생활 그곳에서의 생기발랄함 그리고 푸른 잔디밭을 누비고 다니는 그런 캠퍼스의 낭만을 꿈꾸며 그 고단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버티곤 했었다. 그리고 정말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서 무언가를 시켜먹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잠시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캠퍼스에는 낭만이라는 것은 사라지고 교수님들이 내주는 조별과제며 앞으로 취직을 하려면 취득해야 하는 자격증 공부로 동아리마저 사치이고, 또 들고 싶어 하는 동아리마저도 토익공부, 자격증 공부하는 동아리들로 들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게 요즘 대학생들은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오늘 하루 교수님이 내준 숙제, 리포트, 발표수업에 밀려 캠퍼스에서 잔디밭에 앉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잃고 편의점에서 들려 삼각 김밥, 컵라면으로 끼니를 채우며 혼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칸막이 자리에 앉아서 잠시 유튜브 먹방을 보며 그것이 요즘 삶에 유일한 낙이고 재미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다.
이러한 대학생, 청춘들이 가장 많이 토로하는 답답함이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거울 보는 시간은 많으나
정작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해 무언가를 선택하기에 어려워하는 이들..'
어느 날 한 학생이 찾아왔다. ‘저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는 공부도 곧잘 하여 학점도 좋은 학생이었다. 누군가 보기에는 부러움의 대상일지 모르나 그 학생은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해하며 자신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한낱 고민 많은 대학생일 뿐이었다.
사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은 20대 청춘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30들에게도 있으며 또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곧 은퇴를 앞둔 50대, 60대들에게도 있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꿈꿔보고 도전해봐야 하는 나이! 아직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잠시 실패하고, 넘어져봐도 괜찮을 나이가 바로 이십 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러한 열정으로 꿈틀대야 하는 청춘들이 무엇인가를 시도해보기도 전에 미리 겁을 먹고, 몸을 사리게 되는 그래서 점점 내가 꿈꾸고, 흥미롭고, 나의 적성에 맞아서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닌 무엇을 해야 할지 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도 모르겠어서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들...
또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이들 조차 내가 정말 하고 싶고, 나의 심장을 두근거려 달려가는 그 길이 아닌 좀 더 안정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그것이 마치 다 인 것 마냥 남들이 하기에 너도 나도 공무원을 선택하는 요즘 대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 채 부모님이 요구하기에.. 또 요즘 사회가 불안정하기에 그중 가장 안정적으로 보여서 너도 나도 준비하는 그 길..
불과 그리 멀지 않았던 그때.. 80년 90년도 때에만 하더라도 ‘너의 장래희망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대통령이요. 피아니스트요. 과학자요. 등등’ 여러 가지가 나왔었는데 요즘 아이들에게 너는 무엇이 되고 싶어?라고 물으면 많은 어린이들이 공무원이요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것은 그 아이들의 대답이 아니라 분명 부모님들의 대답일 것이다. 부모님들 또한 내 자식이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편하게 살길 원하기에 말씀하셨겠지만 사실 그러한 모든 답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그래서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또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원하는지'를 알기도 전에 이미 내가 가야 할 길이 누군가에게 대답으로 인해 결정되어 있고 그래서 경주마처럼 나의 옆, 뒤를 알지도 못한 채 그냥 앞만 보고 달리는 많은 청년들이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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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에게 요즘 대학생들을 나타내는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나는 단연코 ‘아무거나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대학생들과 있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들이 바로 ‘아무거나와 모르겠어요’이기 때문이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우리 뭐 할까?’
‘아무거나요’
‘뭘 좋아해?’
‘모르겠어요’
바로 이것이 요즘 대학생들과의 대화이다.
이 대화는 자신의 미래의 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오늘 점심메뉴 고르듯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서 ‘아무거나와 모르겠어요’ 대답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자존감에 비롯된 결과이다. 자존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가 이로운 결과를 가져왔을 때 자신 스스로에 대한 효능감과 만족감이 올라가게 되며 나타나게 되는 결과’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작은 것 하나부터 무엇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결과를 맛보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무언가를 선택하기에 어려운 환경인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입을지, 먹을지 등에 대한 결정이 아이에게 있기보다 부모님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사회가 다른 나라와 많이 다른 부분 중에 하나이다.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그 다큐멘터리만 보아도 한국에 살지 않은 다른 나라에 있는 그 어린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 스스로 이불을 정리하고, 양치질을 하고, 무슨 양말을 신고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게 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이가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가 일으켜 세워주고, 늦는다고 양치도 해주고, 무엇을 입을지도 엄마가 결정하며 밥을 먹기 싫어하면 엄마가 떠서 입으로 넣어주기까지 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 같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이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를 없애고, 내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는 즉 자존감을 쌓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결과가 어떠한 반응을 가져올지 모르니 많은 이들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 앞에 서면 대충 얼버무리며 ‘아무거나~!’라고 말하며 다른 이가 선택을 대신해주길 바라게 되고, 결국 나의 미래에 대한 선택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나의 삶에 대한 결정조차 누군가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답답함을 토로하는 대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 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조금 더뎌도 괜찮으니.. 아주 작은 것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경험을 먼저 쌓아보라고’ 그리고 어린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조금 알록달록해도 괜찮으니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해 볼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시라고’ 말이다.
우리 모두 오늘 밥 메뉴! 무엇을 먹을지부터 스스로 결정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