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위바위보쌈 May 25. 2023

돼지고기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시간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조화로운 음식, 보쌈


"그럴 수 있겠다"


보쌈을 좋아한다고 하면 신기해하면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보쌈은 대중적이면서도 대중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보쌈을 싫어하진 않지만,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진 않는다. 보쌈은 친숙한 것 같으면서도 멀다. 사람들에겐 갈색으로 치장된 삼겹살로 만든 보쌈이 일반적이다. 칼국수 집에서 사이드 메뉴로 주문하는 보쌈이나, 족발집에서 시키는 보쌈이 제일 친숙하다. 그래서인지 보쌈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내게 보쌈은 특별하다. 어릴 적 어머니가 김장철 만들어줬던 돼지고기 보쌈. 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을 때, 뭐인지 고민하기 싫어서 떠올렸던 음식이다. 그때부턴 보쌈 덕질이 시작됐다. 보쌈을 사랑하고, 보쌈을 생각하고, 보쌈을 찾아다녔다. 자연스럽게 보쌈을 자주 먹고, 자주 만들게 됐다. 


보쌈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돼지고기를 물에 담근다. 된장, 마늘, 대파, 양파, 커피 등 돼지고기의 잡내를 지우기 위한 재료들을 넣는다. 그리고 불을 키운다. 강불에서 5분, 중불에서 15분, 약불에서 15분. 잘 절여진 삶은 고기를 물에서 건져낸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열을 식혀준다. 5분 정도 식히고 뒤집혀서 또 식혀준다.


식힌 돼지고기에선 향긋한 냄새가 올라온다. 이때다 싶으면 칼로 먹음직스럽게 자른다. 어슷 썰어도 좋다. 부위마다 다르지만, 그저 먹기 편하면 된다. 미리 준비해 둔 보쌈김치와 싸 먹는다. 그전에 고기만 따로 맛을 본다. 역시 양념이 곳곳에 스며들어 돼지 잡내는 나지 않는다.


이젠 김치와 함께 싸서 먹는다. 김치는 적당히 달면서도 짭짜름해야 한다. 너무 달면 고기 맛을 해친다. 너무 짜도 마찬가지다. 적당함이 포인트다. 아삭한 배추 맛도 살아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시원해도 상관없다. 보쌈김치는 그 고기와 어떻게 어울리냐가 포인트다.


보쌈의 미학은 여기 있다. 고기만 먹는 것도 아니고 김치만 먹는 것도 아니다. 고기와 김치가 적절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부드러운 살코기와 비계가 보쌈 겉절이와 만났을 때 내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그 맛. 무한으로 먹어도 계속 들어갈 것 같은 그 맛. 그것이야말로 보쌈이다.


보쌈의 사전적 정의는 삶은 돼지고기를 편육으로 썰어서 배춧속이나 보쌈김치 따위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본래 보쌈은 '보쌈김치'를 뜻하는 말이었다. 조선시대, 어쩌면 그 이전에는 배추 안에 배춧속을 넣고 돌돌 말아서 보기 좋게 썰어낸 김치 요리를 '보쌈'이라고 불렀다. 고춧가루가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하얀 김치 요리가 빨갛게 변했고, 김장철에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먹게 된 것이 지금의 보쌈으로 보인다.


보쌈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순한 음식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삶아내기까지 인내, 김치를 만들기 위한 노력 속엔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보쌈을 파는 전문점을 찾아가면 따뜻함과 정(情)이 물씬 느껴진다. 사람 사는 냄새가 보쌈에 묻어있다.


종로 보쌈골목에 있는 삼해집 고기보쌈

세상 곳곳엔 숨어있는 보쌈이 많다. 그리고 보쌈 속엔 이야기가 있다. 인생의 고됨이 담겼고, 무한의 노력이 담겼다. 곳곳에 숨은 보쌈을 드러내고 싶다. 보쌈이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적어 내려가고 싶다.


전국에 드러난 또는 숨겨진 보쌈집의 미학을 드러내려 한다. 보쌈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보쌈을 먹기 전, 먹는 순간, 먹은 후. 그리고 가게를 나서는 순간까지. 하나하나 생생하게 묘사해보려고 한다. 더불어 보쌈 속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보쌈 덕후의 이야기다. 수년간 혼자 해온 보쌈 덕질을 공유해보고 싶다.


저와 같이 보쌈 드시러 가실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