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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Nov 02. 2023

나만 알고 싶은 보쌈 맛집

서울 중구 방산동 장수보쌈

서울 중구 방산동 장수보쌈 외관

수백 번 고민했다. 이 집을 써야 할지. 너무 아끼고 싶은 집인데, 쉽게 쓰려하는 건 아닐지. 여러 차례 고민했다.


이 집은 보쌈을 사랑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이다. 오랜 기간 마음속 1등을 차지한 곳이다. 먹기만 해도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넘치는 식당이다. 바로 장수보쌈이다.


장수보쌈은 을지로4가역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사이에 있다. 정확히 방산시장 건너편에 있다. 시장 어르신들이나 을지로를 찾은 젊은 사람들이 이곳을 왕왕 찾는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매력 있는 장수보쌈은 늘 사람이 붐빈다. 저녁에는 조금 늦게 가면 고기가 다 떨어질 때도 있다. 그만큼 인기가 많다.


일각에서는 안 좋은 평도 나다. 맛 때문이 아니다. 예전에 현금만 받을 때가 있었는데, 그런 영향도 있고 노포라서 살짝 깨끗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사장님이 시크하실 때가 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포털 사이트에 나온 평점만 믿고 안 가기에는 너무너무 아까운 집이다.


이 집은 원할머니 보쌈을 만드신 분이 나와서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오래됐고 맛있는 집이다.


어떤 지하철역으로 왔든 길을 따라서 장수보쌈 앞에 도착하면 노포의 향이 엄청나게 몰려온다. 간판부터 노포 그 자체다. 발걸음을 얼른 안으로 들이고 싶은 느낌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테이블이 5~6개 정도 있다. 좀 좁기도 하고 다닥다닥 붙어야 하는 느낌도 있다. 테이블을 지나면 보쌈을 써는 간이 주방이 있고, 안쪽에는 보쌈을 만드는 주방이 있다.


구석 한 편에는 TV가 늘 틀어져 있는데, 사장님 중 한 분이 야구팬이시다. 그래서 같은 야구팬이라면 보쌈을 먹으며 야구를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1층에 자리가 없다고 걱정할 이유가 없다. 2층도 있기 때문이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시기 힘들어서 2층을 점심처럼 바쁠 땐 안 받긴 하는데 여유가 있을 때는 2층도 열린 공간이다.

서울 중구 방산동 장수보쌈 옛 메뉴판

자리에 앉으면 메뉴판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쌈백반은 1만 2000원이었는데 1000원씩 올라 1만 3000원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좋은 가격이다.


보쌈을 통으로 시켜도 되지만, 국이랑 밥, 반찬이 나오는 백반이 더 매력적이다. 반찬은 버섯볶음, 가지무침, 시금치다. 간이 세다. 이것만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있는 반찬들이다.


시킨 백반은 곧바로 고기를 썰어서 가져다주신다. 야들야들한 고기와 때깔 좋은 김치가 접시에 담겨서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중구 방산동 장수보쌈 삼겹살보쌈

이 집의 보쌈 부위는 전지, 삼겹살, 항정살 등이다. 주로 전지가 나오곤 했는데 최근 갔을 때는 삼겹살을 주시기도 했다.


전지는 국내산, 삼겹살은 오스트리아 산이다.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삼겹살은 수입산을 쓰는 게 맞긴 하다.


그렇다고 맛이 다르지 않다. 전지든 삼겹살이든 맛은 똑같다. 그래서 신기하다.


이 집 고기는 정말 전국을 통틀어서 최고 수준이다. 1등은 아니지만,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고기의 부드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잡다하게 양념을 많이 치지도 않았다. 퍽퍽하지 않은 것에 더해 잡내 역시 없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갖췄지만, 고기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대단하다. 돼지향이 미세하게 나되 부담스럽지 않고 된장이나 월계수처럼 향이 강한 것들을 많이 쓴 느낌도 아니다.


그냥 고기만 따로 씹어도 행복해지는, 기뻐지는, 즐거워지는 그런 맛이다.

서울 중구 방산동 장수보쌈 전지보쌈

특히 전지가 맛있다. 전지는 비교적 싼 부위이고 오랜 기간 공들여서 만들어야 하기에 맛있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집 전지는 기가 막힌다.


전지로 맛을 완벽하게 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장수보쌈의 기술이 탁월하다는 이유다. 극찬 또 극찬하게 되는 배경이다.


고기의 질도 완벽하다. 전지인데도 부드러울 수 있게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이 적절하다. 정말 너무 부드럽고 녹아내리는 맛이다.


이 집 수육의 비밀을 다 알진 못한다. 다만 주방에서 만든 고기를 보조주방으로 가져와 통에 넣어놓은 상태에서 어느 정도 공기와 접촉시키는 것 같다. 그러면 안에 육즙이 고여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서울 중구 방산동 장수보쌈 보쌈김치

양념만 봐도 훌륭하다. 왜 다른 보쌈집들은 이런 김치맛을 내지 못할까.


이 집 김치는 먹자마자 웃음이 나온다. 어떤 양념을 썼길래 이런 맛이 날까. 어디선가 먹어본 적 있는 듯하면서도 새로운 그런 보쌈김치의 맛이다.


정석을 지키면서도 끝맛은 별나다. 액젓맛이 마지막에 느껴져서 혀를 자극할 때, 고기와 어우러진다.


자칫 너무 과하면 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고기와 함께 먹기에 적절하고 완벽하다. 너무 익지 않고 너무 안 익지도 않아서 좋다. 행복해지는 맛이다.


서울 중구 방산동 장수보쌈 보쌈백반 한상차림

쓰면서도 행복해지는 보쌈집은 몇 군데 없다. 장수보쌈은 그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밥상을 선사하는 곳이다.


약간의 단점을 꼽아보자면 화장실이 안에 없다는 것과 조금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같이 간 친구의 말대로라면 이 정도는 오래된 거지 더러운 게 아니라고 했다. 음식을 먹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몇 번 언급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빨간 뚜껑의 참이슬도 판다. 아저씨들이 많이 찾는 영향일 수도.


순두부찌개나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파는데 점심에만 시켜달라고 하신다. 저녁에는 대부분 보쌈을 먹는 듯.


그리고 저녁에는 콩나물국이 나오고 점심에는 무된장국이 나온다. 콩나물국이 기가 막힌다. 모든 사람이 맛있어할 정도다.


그래서 나만 알고 싶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소개하는 재미가 있다. 먹어도 후회하지 않을 맛이다. 함께한 사람들 모두 행복해지게 하는 공간이다.


나만 알고 싶은 보쌈 맛집, 장수보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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