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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Nov 09. 2023

족발보다 보쌈이 더 맛있는 이유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삼각지왕족발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삼각지왕족발 메뉴판

보쌈을 좋아한다고 하면 많이들 족발집을 추천해 준다. 예전엔 그게 기분이 나빴다. 족발이랑 보쌈은 엄연히 다른 음식인데 왜 족발을 추천해 줄까.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고 둘 다 삶은 고기라는 점이 닮았지만,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족발은 앞다리나 뒷다리를 통째로 넣어서 각종 약재. 향신료를 넣은 음식이고, 보쌈은 살코기를 수육으로 만들어서 보쌈김치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모양도 색깔도 맛도 느낌도 다르다. 그런데도 족발과 보쌈이 하나로 묶이는 이유는 족발집에서 보쌈을 팔고, 보쌈집에서 족발을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깐 보쌈 맛집 중엔 족발 간판을 단 집도 여럿 있다. 회기동에 있는 회기왕족발보쌈이 그렇고 효자동에 있는 효자왕족발보쌈이 그렇다. 회기왕족발보쌈에 가서 족발을 먹는 건 목살이 맛있는 삼겹살집에서 삼겹살만 먹고 오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다.


회기왕족발보쌈만큼은 아니지만, 먹을만한 '족발' 이름을 내건 보쌈맛집이 있다. 바로 삼각지왕족발이다.


이 집은 요즘 핫한 용리단길 한복판에 있다. 삼각지역 1번 출구로 나와 대구탕 골목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쭉 따라가다 보면 삼각지왕족발이 나온다.


점심시간이 되면 이 집에는 줄이 늘어서 있다. 자리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이 몰린다.


그래도 회전이 빨라서 금방금방 사람이 빠진다. 점심에는 요리류 대신 정식만 가능하다. 자리에는 이미 반찬들이 세팅돼 있다. 어묵볶음, 진미채볶음, 깻잎무침, 동치미 등이 자리한다.


보쌈 정식 가격은 1만원에 불과하다. 보쌈 정식이 나올 때 된장국도 같이 나온다. 말 그대로 한상차림이다. 보쌈 정식이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삼각지왕족발 보쌈 정식

이 집의 고기와 김치는 과찬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어디에 내놨을 때 뒤떨어질 정도는 아니다.


우선 고기 맛집이 되기 위한 기본은 갖췄다. 사진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윤기가 흐른다. 부드러움은 당연하다.


돼지잡내는 나지 않지만, 특유의 향이 강하진 않다. 조금은 달달한 맛이 난다. 하지만 특출 나게 맛있거나 색다른 맛은 아니다. 평범하다.


첫맛이 인상 깊거나 끝맛을 사로잡지는 않는다. 가볍게 먹기에 좋은 맛이다. 반찬으로 먹기 좋은 느낌. 그렇다고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맛있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다.


부위가 삼겹살인지라 약간은 느끼하다. 먹다 보면 물린다. 이 점이 아쉽다. 이럴 때는 김치가 느끼함을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김치가 느끼함을 잡아줄 정도로 양념이 강하지 않다. 보기에는 양념이 강해 보이는데,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과하지 않아서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고기를 많이 먹었을 때는 아쉬움이 좀 남는다.


그런데도 이 집의 고기와 김치를 추천하는 이유는 가성비와 모양이다. 우선 정갈하게 썰은 고기와 돌돌 말아서 나오는 김치는 정석 그 자체다. 맛이 보통 이상이기 때문에 모양과 함께 어우러지면 충분히 훌륭한 요리다.


가성비는 아직도 물가반영을 안 한 것은 아닐지 걱정될 수준이다. 단돈 만원에 각종 반찬과 이 정도의 보쌈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다니.


정리하면 이 집의 고기와 김치는 역대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맛이다. 그리고 모양과 가성비까지 더해지면 충분히 맛집으로 인정받을만하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삼각지왕족발 고기와 김치

맛있냐 맛없냐의 증거는 더 시키냐 아니냐에 달려있기도 하다. 이 집에 가면 고기와 김치를 추가하게 된다. 양이 적어서가 아니라 맛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집의 과제라면 아까 언급한 대로 느끼함을 잡을 요소가 가미돼야 한다는 점이다. 김치의 양념이 조금만 더 강해진다면 고기의 느끼함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집의 또 다른 매력포인트는 반찬이다. 반찬들이 대체로 맛있다. 동치미도 먹을만하고 어묵볶음도 훌륭하다.


저녁에는 술이랑 곁들여 먹기 좋은 분위기다. 가정집 같은 느낌이고 오래된 백반집 느낌도 있다. 분위기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기 좋다.


조금만 나가면 2차를 하기 좋은 장소들도 즐비하다. 예쁜 카페도 많다.


이 집은 족발 이름 달고 파는 보쌈치고는 정말 괜찮은 곳이다. 족발보다 보쌈이 더 괜찮다는 걸 알려주는 집이다.


그래서 이 집에 대한 소개의 제목을 '족발보다 보쌈이 맛있는 이유'로 달았다. 족발보다 보쌈이 더 맛있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는 수십 가지다. 이 집은 그중 하나를 보여주는 곳이다.


족발이 보쌈보다 맛있었다면 왜 족발정식은 없을까. 물론 나만의 주장(어쩌면 궤변)이다.


족발보다 보쌈이 더 맛있는 이유를 알려주는 집, 삼각지왕족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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