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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Jun 29. 2023

먹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영광보쌈

공덕역 4번 출구 앞에 있는 영광보쌈

마포에는 맛있는 보쌈집이 즐비하다. 종로나 을지로 못지 않게 마포도 보쌈을 즐기러 가기 좋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공덕역 4번 출구 앞에 있는 영광보쌈은 내게 꽤나 즐거운 맛을 선사해준 곳이다.


공덕역을 가면 많은 사람이 족발골목이나 전집을 찾는다. 그 사이에 오랜 시간을 굳건하게 버틴 듯한 간판이 자리잡고 있다. 점심과 저녁 모두 주변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찾는 이곳은 오로지 보쌈만 다룬다.


점심에는 웨이팅이 금방 빠지고 저녁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술과 곁들여 먹기 좋은 맛이라 그런가보다.


이곳의 외관만 보면 낡고 허름한 노포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안 들어가볼 수가 없는 곳이란 생각이 확 든다. SNS나 인터넷에서 이곳을 처음 접한 것이 아니라 근처 맛집을 가던 중 발견했다. 간판만으로도 보쌈을 좋아하는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맛이 있는 곳이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옆에 카운터가 있다. 그곳에는 할아버지 사장님이 앉아 계실 때가 많다. 주로 주문을 받거나 계산하는 일은 아들로 추정되는 사장님이 하시는 것 같다.


카운터를 살짝 지나서 내부를 둘러보면 맛집의 냄새가 확 난다. 나름대로 낡은 바닥과 나름대로 깨끗하기 위해 노력한 테이블, 의자가 있다. 주방은 다 보이는 구조다. 돼지고기 냄새가 식당 안에 심하게 나지 않기에 고기의 맛이 어떨지 기대가 되게 만든다.


안내를 받아 자리로 가면 시킬 수 있는 메뉴는 딱 하나다. 오로지 보쌈이다. 한때 가격이 1인분에 1만원 언저리였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1만3000원으로 올랐다. 2인 기준 2만6000원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소주, 맥주, 막걸리가 5000원, 음료가 2000원이다. 고민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보쌈이 준비된다.


반찬은 간단하다. 보쌈을 헤치지 않는 수준이다. 콩나물 무침과 부추 무침, 마늘 등이 나온다. 그리고 콩나물 시래기 된장국으로 추정되는 국이 나오는데, 나쁘지 않다. 이들로 입을 달궈놓으면 떼깔 고운 김치와 부드러워보이는 돼지고기가 등장한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영광보쌈의 2인상

영광보쌈을 수차례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맛이 한결같았다. 한차례 정도 빼고. 최근 주말 점심이 끝날 무렵 갔던 영광보쌈은 평소보단 맛이 심심했다. 2% 부족한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영광보쌈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 보쌈 맛집이다. 이 집의 특징은 고기에 있다. 전지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전지(앞다리살)와 후지(뒷다리살)를 적절히 섞은 것으로 보인다. 사장님 말로는 다리의 맛있는 부분을 골라서 썼다고 하는데, 아마 전지와 후지를 골고루 섞은 탓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고기만 놓고 봤을 때 어느 곳에도 밀리지 않는다. 부드러운 것은 둘째치고 입에서 살살 녹아내린다. 살코기 부분이 좀 퍽퍽한 감은 있지만, 비계와 섞인 부분은 정말 환상적이다. 잡내는 당연히 나지 않는다.


새우젓을 찍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고 간이 잘 들어가있다. 짜지도 달지도 않고, 돼지고기 향이 살짝 남아 입을 채운다. 그야말로 일품이다.


김치는 일품고기와 적절히 어울리는 맛이다. 가장 최근에 갔을 때는 밀가루풀 맛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전분 맛이 좀 났다. 양념이 배추에 잘 스며들어 있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다. 다행히 무와 이파리 부분은 양념이 잘 스며들었다. 평소를 기준으로 하면 김치의 양념은 고기의 역할을 빼앗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김치의 양념이 과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 고춧가루나 젓갈의 맛이 강하지 않고 지나치게 과한 달달함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양념을 과하게 하다보면 고기 맛을 헤치니 그 부분에 신경쓴 듯하다. 고기를 완벽히 주연으로 만드는 조연 역할을 김치가 하는 곳이다.


고기 한 점에 김치 한 잎씩 쌓아서 먹으면 밥이 땡긴다. 다행히 밥을 반찬과 함께 주기 때문에 고기, 김치와 함께 먹으면 된다. 그럼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이런 고기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영광스럽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영광보쌈 메뉴판

영광보쌈에는 무수한 추억이 있다. 마포에서 사람들을 만날 땐 이곳으로 많이 오곤 했는데, 그들과의 이야기가 영광보쌈 테이블 곳곳에 담겼다. 이곳에 갈 때마다 고기 한 점을 먹으며 그때의 추억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만큼 감성있고 추억있고, 역사가 있는 노포라면 노포인 맛집이다.


정말 신기한 점은 보쌈이 백반으로 나오는 곳인데도 술이 잘팔린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낮부터 술을 하는 사람도 많다. 밤에는 백반인데도 술을 많이 마셔서 회전율이 빠르지도 않다. 잘못 걸렸을 땐 앞에 팀이 많지도 않은데 1시간까지 기다렸다. 물론 기다린만큼 더 보상은 있었지만.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아마 이유는 고기 때문일 것이다. 고기로만 따지면 이곳은 전국 TOP5 안에 들 정도로 훌륭한 곳이다. 고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지 맛으로 느껴진다. 사장님의 "맛있는 곳으로만 골랐다"는 자부심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배불리 먹고 문을 열고 나오면 또 다른 맛집들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가면 김치찌개와 닭볶음탕, 계란말이, 짤라를 파는 마포나룻가가 있고, 좌측으로 가면 족발골목과 전집이 있다.


영광보쌈은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행했던 많은 이들도 이곳을 다시 찾았다. 가볍게 먹기도 좋고 때론 술과 함께 무겁게 먹기도 좋은 그런 곳이다.


이런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영광, 영광보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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