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원효로1동 원보쌈
열정도는 최근 핫해진 동네 중 하나다. SNS에 나오는 고깃집이 즐비하고, 맥주나 와인을 한 잔 할 수 있는 공간이 여러 생겼다. 조금만 걸어가면 용리단길도 있고, 숙대입구와도 가까운 곳이다.
그런 열정도에 오래전부터 자리해 온 보쌈집이 하나 있다. 원보쌈이다.
남영역 1번 출구를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열정도에 가까워진다. 핫한 가게가 모여있는 곳을 지나쳐 해남공원까지 걷다 보면 허름한 간판의 원보쌈이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노포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김치찌개와 동태찌개 등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도 나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 점심에 가면 혼자 먹으러 온 손님도 많다. 저녁에는 주변 회사에서 온 건지 팀 단위의 회식이 늘 있는 곳이다.
자리에 앉으면 남자 사장님이 주문을 받으러 오신다. 남자 사장님은 여자 사장님의 남편인데, 코로나 이후로 자주 나와서 도와주신다.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시며 주문을 받고 주방에 전달한다.
주방은 나름 오픈형이다. 모든 손님이 내부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깨끗하냐고 확언하긴 어렵다. 가끔 그릇에 다 닦이지 않은 흔적이 보일 때도 있고, 급하게 나간 책상에 이물질이 남아있을 때도 있다.
보쌈의 가격은 싸지 않다. 일반 보쌈은 3만 원, 보쌈 정식은 1만 5000원이다. 비싸지도 않지만, 을지로나 종로의 전지를 기반으로 한 보쌈집에 비하면 1000~2000원 정도 가격이 높다.
그래도 좋다. 친근하게 맞아주는 여자 사장님이 있고, 다채로운 반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집의 반찬은 나물, 무채, 도토리묵, 그리고 된장국. 먼저 나온 이 음식들을 즐기고 있다 보면 시켰던 보쌈이 나온다.
이제부턴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이 집의 고기는 놀랍다. 그냥 놀랍다는 표현 말고는 더 적을 이유가 없다. 어떻게 만들면 이럴 수 있을까 신비하다.
같이 간 사람들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맛'이라고 표현한다. 단순히 전지 보쌈이기 때문이 아니라, 맛 자체가 놀랍다.
부드러움은 둘째치고 잡내는 셋째 치고,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린다. 고기를 한 번씩 씹을 때마다 행복감이 몰려온다. 이러려고 보쌈을 먹으러 왔구나, 행복해진다.
이 집의 고기가 부드러운 비결은 물 안에 넣어놓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사장님은 고기를 만든 후에 따로 통에 보관해 놓는데, 물에서 꺼낸 게 아니라 고기통이 따로 있다. 그래서 물에 오래 담겨있지 않아 부드러운 듯하다.
김치는 그렇게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전분 맛이 많이 나서 부담스럽다든지, 너무 맵다든지, 너무 달다든지 하지 않다. 겉절이는 아니고 아주 잠깐 익힌 김치 같다. 그래서 좋다. 클래식한 보쌈김치에 가깝다.
놀라운 고기와 클래식한 김치가 만나면 입안이 매우 행복해진다. 한입 한입 아껴먹고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아쉬운 점은 고기의 양이 많지 않아 보인다는 점. 하지만 먹다 보면 꽤나 양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모자라면 더 시키면 된다. 김치는 더 시키지 않아도 덤으로 주신다.
더 시킬 때 고기는 유달리 더 맛있는 부위를 주는 느낌이다. 기분 탓일지도. 하지만 사장님의 푸근한 인심이 그 안에 담겨 나온다. 앞다리살로 만든 보쌈 중 가히 최고에 가깝다.
이곳의 보쌈은, 그야말로 '행복해지는 보쌈'이다.
보쌈만 있어도 만족스러운 곳이지만, 추가로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있다. 김치찌개와 동태찌개, 된장찌개다. 콩나물밥도 있다.
김치찌개와 동태찌개는 이 집의 인기메뉴다. 보쌈은 먹지 않고 동태찌개만 먹으러 오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보쌈을 먹다가 모자랄 때 김치찌개를 시키면 더 조화롭다.
김치찌개에 고기도 푸짐하게 들어가 있다. 국물 맛도 일품이다. 김치가 맛있기 때문이다. 라면사리도 넣을 수 있는데, 먹다 보면 술이 절로 들어간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이 집엔 빨간 뚜껑 참이슬을 판다는 점이다. 김치찌개나 동태찌개와 무척 잘 어울린다.
콩나물밥은 조금 아쉽다. 사장님이 강력하게 추천해서 먹었지만, 그렇게 맛있지 않아서 재도전하진 않았다. 그저 그런 맛이지만, 콩나물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게 먹을지도.
맛있게 먹고 문을 열어 나오면 열정도가 반긴다. 4월 벚꽃이 무성할 때 원보쌈 앞은 벚꽃길이 열리기도 하는데, 그때가도 일품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열정도에는 더운 여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거나, 추운 겨울엔 따뜻하게 몸을 녹일 선술집이 그득하다.
원보쌈은 으뜸(元) 원을 쓴 보쌈집 같다.
자꾸만 찾게 되고, 원하게 된다.
누구나 원하는 아름다운 맛, 원보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