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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위바위보쌈 Jul 20. 2023

최고의 보쌈은 아닐지 몰라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이조보쌈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이조보쌈 메뉴판

당산역 5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 보면 오래된 보쌈집이 나온다. 외관은 허름하다. 별관부터 먼저 보이는데, 건너편 본관으로 들어가면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반긴다. 평소 먹던 청국장과 완전히 다른, 매우 진한 냄새다.


자칫 옷에 청국장 냄새가 밸까 봐 걱정할 정도로 진한 냄새가 난다. 누군가는 이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로 가게 안에 청국장 냄새가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은 청국장이 하나의 아이콘이다. 보쌈도 보쌈이지만, 사이드로 나오는 청국장을 잊지 못해 재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래도 주인공은 역시 보쌈. 입구로 들어가면 진한 청국장 냄새 틈으로 향긋한 보쌈 향이 미세하게 번진다.


입구에선 아주머니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보쌈을 주문한다. 점심엔 보쌈 정식을 시킬 수 있는데, 가격이 11000원이다.


그 외 보쌈은 오징어보쌈과 그냥 보쌈으로 나뉘는데, 오징어보쌈은 오징어 숙회같이 데친 오징어가 함께 나오는 정도다. 오징어보쌈은 대자가 43000원, 중자는 36000원. 그냥 보쌈은 대자가 40000원, 중자가 33000원.


반찬으론 멸치볶음과 고추장아찌, 마늘장아찌 등이 나온다. 청국장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잘 어울린다. 집밥이 그리울 때 먹으러 가도 나쁘지 않을 정도다. 할머니가 해주신 밥 같은 느낌이다.


천하보쌈이 된장찌개가 별미였다면, 이조보쌈은 청국장이 별미다. 다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니 아니다 싶음 숟가락을 내려놔도 괜찮을 듯싶다.


주문 후에 5분 정도 기다리다 보면 보쌈이 금방 준비 돼서 나온다. 고기와 김치가 한 그릇에 나오는데, 배추김치와 무말랭이가 둘 다 들어있다. 무말랭이만 들어있었음 매우 섭섭했을 뻔했는데, 배추김치까지 있으니 가히 일품이다.


이제부턴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이조보쌈 보쌈 中자

이 집은 최고가 아니다. 하지만 최선일 수 있다.


고기는 전지를 사용한 것 같기도 하고, 목살이나 항정살로 보이기도 한다. 아마 비계 부위를 보아 전지일 가능성이 크다.


역시 하얀 고기가 입에 들어오는 돼지 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살코기 부분은 적당히 질겨서, 비계 부위와 매우 조화롭다. 쫄깃한 식감과 부드러운 기름이 합쳐지면 나름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다만 오버 쿡된 느낌이 있다. 다소 오래 삶은 탓인 걸지, 살코기가 심하게 질긴 날도 있다. 물론 맛없진 않다.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다. 새우젓이 가미된다면 부드러움이 더해져 먹을만하다.


위에 언급했듯 김치는 완벽하진 못하다. 전분 맛이 많이 나는 것 같다. 다른 보쌈집들과 달리 김치가 특출나진 않다.


배추김치의 아삭함이 있지도 않고, 무말랭이의 식감이 뛰어나지도 않다. 무의 단맛보단 쓴맛이 더 느껴져서 가끔 맛을 방해할 때도 있다.


다행인 점은 김치가 맛없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완벽하지 못할 뿐, 부족하진 않다. 나름의 양념을 바탕으로 고기와 적절히 어우러진다. 부족한 무말랭이의 식감은 고기로 채워지고, 약간 느끼해질 때쯤 김치의 양념이 스며들어와 혀를 감싼다.


특별히 이 집은 막걸리가 더 어울리는 집이다. 게다가 고기와 김치만으로 입안을 가득 채웠을 때 텁텁해지면 청국장 국물을 먹으면 된다.


흰쌀밥과도 참 잘 어울린다. 고기가 부드럽고 김치가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밥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밥 위에 고기를 얹고, 김치를 감싸면 입안에 가득 그 맛이 전해진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선택한다면 이조보쌈만큼 좋은 곳도 없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이조보쌈 청국장

고기와 김치를 다 먹고 나면 오징어볶음이나 제육볶음을 술안주로 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당산역엔 맛있는 술집들이 많으니 청국장 냄새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와도 된다.


이곳은 을지로와 종로에 있는 보쌈집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전지로 추정되면서도 썬 방식이 달라서인지 전지로 보이지 않기도 하다. 다만 그 집들보다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맛으로 따지면 전국에서 20곳 안에 들 정도로 훌륭하다.


서비스도 좋다. 가게가 오래된 것치곤 더럽지도 않다. 아쉬운 점은 화장실이 공용이라는 사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나름 깨끗하다. 별미인 청국장도 있고, 양도 푸짐하고, 지리적으로도 갈 수 있는 2차 맛집이 즐비하다. 포장이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주차는 어렵다. 주변에 공용주차장이 있는데, 일찌감치 그곳을 찾아서 주차하는 게 훨씬 낫다.


배부르게 먹고 입구를 나서면 당산역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지나서 가면 파라솔 테이블이 즐비한 식당들이 나온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이어 마셔도 나쁘지 않다. 이조보쌈의 여운은 그렇게 이어진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당산만의 보쌈, 이조보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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