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수동 훼미리손칼국수보쌈
성수는 20·30대가 가장 많이 몰리는 동네다. 각종 SNS에 나올법한 가게들과 술집, 핫플레이스가 즐비하다.
이곳에는 훼미리손칼국수보쌈이라는 식당이 있다. 이름처럼 손칼국수와 보쌈을 다루는 곳이다. 획일화된 세련함이 만연한 성수에서 여전히 노포느낌을 간직한 곳이다.
이곳을 처음 찾은 것은 2019년이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서 알려진 보쌈과 칼국수 맛집이었다. 성수동에 사는 친누나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해줘서 찾았던 곳이다.
처음엔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뚝섬역이나 서울숲역에선 거리가 멀다. 유명한 카페들을 따라서 한양대 방면으로 길을 걸어가다 보면 오토바이들이 모여있는 건물 옆에 입구가 있다.
뒷골목으로 들어왔어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뒤쪽에도 문이 있다. 가게에서 볼 때는 오히려 뒷골목 쪽이 정문 같아 보인다.
가게에 들어서면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반긴다. 예전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았다면, 요즘엔 20·30대가 그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자리마다 술병이 놓여있고, 그릇들이 하나씩 있다. 빨간 김치도 반찬으로 올라와 있다. 음식을 나누며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 앉으면 기대감이 물씬 올라온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주머니들에게 주문을 하고 나면 반찬들이 도착한다. 반찬은 간단하다. 앞서 말한 빨간 김치와 마늘, 새우젓, 쌈배추 등이 나온다. 쌈배추를 뜯어먹다 보면 허기짐이 조금은 가신다.
메뉴 중 보쌈 정식에는 칼국수가 같이 나온다. 손칼국수 따로, 보쌈 따로 시켜도 좋지만 보쌈 정식에 감자전을 추가하는 식으로 다양한 맛을 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주문 후 기다리다 보면 음식이 하나둘씩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이 집의 매력은 김치다.
보쌈을 시키면 나오는 김치도 맛있지만, 칼국수와 같이 먹는 밑반찬 김치가 예술이다. 아직 익지 않은 겉절이인데, 그 맛이 놀랍다.
놀라운 이유는 간단하다. 칼국수에도 잘 어울리지만, 보쌈에도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보쌈을 시키지 않은 사람들은 이 김치의 매력을 칼국수에만 국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기를 곁들인 순간 김치의 매력은 뿜어져 나간다. 이토록 매력적이게 돼지고기를 감쌀 수 있나 싶은 느낌이다. 싸서 먹는 순간 혀에 자극이 와닿는다.
물론 보쌈 그릇에 담긴 김치도 나쁘지 않다. 다만 고기와 조화롭다기보단, 조금은 싱겁고 평범한 맛이다. 보쌈김치라기엔 고기와 어울리는 느낌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고기보단 감자전 같이 밍밍한 맛과 만났을 때 그 매력이 더 발휘될 것 같다.
고기는 부드럽다. 잡내는 없다. 역시 무언갈 많이 넣지 않은 맛이다. 예전에 사장님한테 들었던 기억으론 직접 오랜 시간 삶아서 공을 들인다고 한다. 쉽게 만들기 힘들다고.
덕분일까. 고기만 따로 먹어도 너무 맛있다. 부드럽고 녹아내리는 맛. 칼국수에 잠깐 담갔다가 면과 먹어도 맛있다.
어찌 보면 평범할 수 있지만, 겉절이 김치를 고기와 함께 먹는다면 매력은 달라진다.
그래서 이곳은 칼국수와 보쌈을 함께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곳이다.
이 집은 만둣국과 감자전, 해물파전도 함께 판다. 막걸리와 어울리는 안주들이 즐비해 막걸리를 먹기에도 좋은 곳이다. 물론 맛도 좋다.
만둣국과 얽힌 일화도 있다.
1월 1일 아침, 배는 고팠지만 문을 연 식당이 많이 없었다. 보쌈을 먹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훼미리손칼국수보쌈을 찾았다.
남자 사장님 혼자서 주방과 홀까지 모두 보고 있었다. 식탁 곳곳에는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널브러진 상태였다.
보쌈을 먹고 싶었지만, 사장님이 "오늘은 만둣국만 해요"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원래 열지 않는 날인데, 아침도 못 먹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나왔다고 한다.
가격은 정확하지 않지만, 몇 천 원만 받았던 거로 기억난다. 입구에는 바구니가 하나 있었고, 그 안에 몇 천 원을 넣어놓고 가면 됐다. 그렇게 사람들은 떡이 담긴 만둣국을 배불리 먹고 떠났다.
보쌈을 못 먹는 아쉬움을 토로했더니, 사장님은 자투리 보쌈을 내어주셨다. 떡, 칼국수 사리가 가미된 만둣국을 먹고 보쌈까지 함께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보쌈값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조금이라도 더 바구니에 넣어놓고 나왔다. 새해에는 행복한 일들이 가득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정말 행복이 가득한 한 해로 이어졌다.
훼미리손칼국수보쌈을 다시 찾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칼국수와 보쌈을 함께 먹을 수 있고, 색다른 조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크지만. 이름처럼 '훼미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지기 때문이다.
이날의 기억도 그렇고 갈 때마다 반겨주는 이모들은 훼미리손칼국수보쌈으로 다시 발걸음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배불리 먹었다면 문을 열고 나와 서울숲이나 중랑천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든든하게 채운 배와 따뜻한 기억들을 간직하며 길을 걸을 수 있다.
보쌈이 칼국수와 만나 느껴지는 색다름, 훼미리손칼국수보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