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 첫 번째 이야기, 김치를 본다
보쌈을 좋아해서 10년 넘게 전국에 있는 여러 보쌈집을 찾아다니게 됐다. 그러다 보니 보쌈 맛집들의 공통점을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히 보쌈 맛집만 나열하기보단, 독자들에게 보쌈 맛집을 찾는 팁을 공유하고 싶어 번외 편을 준비했다. 앞으론 종종 다양한 번외 편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보쌈 맛집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김치'를 보는 것이다. 이전에도 썼지만, 보쌈 요리의 '김치'는 이름을 뺏긴 주인공이다. 본래 보쌈이란 단어는 무와 각종 재료들을 배추에 돌돌 말아 쌈으로 내놓는 김치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요리를 돼지고기 수육과 같이 먹다가 어느덧 주객이 전도돼 보쌈은 고기 요리로 알려졌다.
본질이 김치이듯, 보쌈 맛집을 찾는 첫 번째 요소는 김치이다. 김치가 맛있고 없고를 보기 전에 김치의 구성 요소를 보면 이 집이 보쌈 맛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우선 의심해봐야 할 보쌈집은 무말랭이만 달랑 내놓는 곳이다. 본래 보쌈이란 음식은 무말랭이 만으로 고기의 느끼함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보통 무말랭이만 내놓는 곳은 술집에서 안주로 나오는 보쌈집이다. 이런 집의 고기는 퍽퍽하고 맛이 없다. 그냥 술과 함께 한 점씩 집어먹기 좋을 뿐이다. 보쌈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안주용 삶은 돼지고기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모든 무말랭이 집이 맛이 없진 않다. 맛있는 곳도 있다. 광화문 미진의 보쌈이 그렇고, 효자왕족발보쌈이 그렇다. 이는 고기의 맛이 느끼하지 않고 무말랭이만으로 조화롭기 때문이다. 또는 무말랭이 자체의 양념이 잘 잡혀서 고기와 적합한 경우다.
하지만 무말랭이만 대충 던져놓고 보쌈인 척하는 경우가 많으니, 의심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무말랭이만 나왔을 때 고기에 잡내가 잡히지 않고, 무에서는 쓴 맛이 지나치게 많이 난다면 그곳은 맛집이 될 수 없다.
비교적 쉽게 믿어도 되는 집은 위에서 말한 정통 보쌈 모양으로 내놓는 곳이다.
이런 집은 만드시는 분이 보쌈에 대한 신념이 어느 정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 진짜 보쌈김치이고, 어떻게 만들어야 재료들이 잘 어우러지는지 아는 사람이다.
이렇게 만든 보쌈김치는 고기와 먹기도 편하다. 고기 한 점에 돌돌 말린 김치 한 세트를 올려서 먹으면 입 안에서 행복하게 뛰어논다. 삼해집이 그렇고 삼각지왕족발이 그렇다.
색깔이 진한 경우 맛집일 가능성이 크다. 쉽게 말해 재료들을 잘 쓴 경우다.
보쌈김치는 겉절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맛을 내기가 매우 어렵다. 특유의 단맛과 감칠맛, 입을 감싸는 맛, 거기에 고기와 어우러지는 맛을 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보쌈 맛집으로 소개했던 원보쌈, 장수보쌈, 천하보쌈, 고려보쌈 등의 공통점은 정통 김치 모양을 갖춘 것은 물론 맛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특히 색이 아름답다.
진한 고춧가루를 쓴 듯, 때깔이 곱다. 보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젓갈의 맛이 끝에서 느껴지고, 약간의 단맛, 고춧가루 자체에서 느껴지는 칼칼함, 무의 시원함까지 더해져 하나의 김치로 완성된다. 재료들을 잘 썼기에 색도 곱고, 맛도 좋다.
수육만 다루는 곳은 김치가 뛰어나지 않은데, 그런 곳도 맛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보쌈을 사랑하는 내게도 최애 맛집 중 하나는 고기만 다루는 제주도 '천짓골'인데, 그 집은 김치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곳도 보쌈 맛집이라고 생각한다. 수육은 엄밀히 따지면 보쌈에 속한 요리다. 수육과 보쌈김치가 합쳐져야 보쌈이기 때문에. 그래서 수육만으로 승부하는 곳도 보쌈 맛집에 속한다고 본다. 정말 고기만 다루는 수육 맛집과 돼지고기가 아닌 소수육 맛집, 보쌈의 친구 족발 맛집도 차근차근 다룰 예정이다.
이번 번외 편에서는 김치에 초점을 뒀지만, 다음 번외 편에는 고기를 다뤄보려고 한다. 과연 어떤 고기가 진짜 맛집의 조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