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위바위보쌈 Jan 25. 2024

사라졌던 보쌈집이 돌아왔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청담보쌈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청담보쌈의 메뉴

논현동 선정릉역 근처에는 '달빛보쌈'이라는 유명 맛집이 있었다. 직접 빚은 막걸리와 보쌈이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전을 비롯해 각종 술안주도 있어서 근처 직장인들이 회식으로 오곤 했다. 연예인들도 자주 찾는 맛집 중 하나였다.


그런 달빛보쌈이 코로나19 때 갑자기 사라졌다. 청담동 근처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보쌈집이었는데. 보쌈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달빛보쌈이 사라진 사실이 너무 슬펐다.


몇 달 정도 지났을까. 달빛보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운 보쌈집이 생겼다. 달빛보쌈과는 외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고, 분위기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사라진 달빛보쌈을 대체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그런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이 집의 내부는 달빛보쌈과 굉장히 비슷했다. 다른 점은 벽에 각종 메뉴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것 정도. 내부 분위기가 하얗다는 것과 보쌈이 메인이라는 점 등은 잃어버린 달빛보쌈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 집의 이름은 '청담보쌈'이었다. 1인 보쌈을 판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 포장해서 종종 먹고는 했는데, 최근 이 집을 직접 찾게 됐다. 


이 집에 들어갔을 때부터 달빛보쌈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2년 전 적어놨던 글 중에 "달빛보쌈을 잃고 우울해하던 중 찾은 맛집"이라는 문구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사실이지만, 청담보쌈에는 달빛보쌈과 연결된 비밀이 있었다.


알고 보니 청담보쌈의 사장님은 달빛보쌈을 운영하시던 분 중 한 명이셨다. 달빛보쌈은 보쌈브랜드였다. 사장님은 선정릉역에 있던 달빛보쌈을 함께 운영하고 계셨는데, 달빛보쌈 본사에서는 코로나19 등으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해당 지점의 운영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던 중에도 사장님은 계속해보겠다는 의지를 가졌다고 한다.


결국 선정릉역에 있는 달빛보쌈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쉬움을 버리지 못한 사장님이 달빛보쌈을 비슷하게 가져와서 만든 게 청담보쌈이다. 사장님은 달빛보쌈을 모티브로 청담보쌈을 새롭게 만드셨다고 한다. 청담보쌈 바깥쪽에 간판 아래를 보면 '별빛보쌈'이라고 쓰여있는데, 이게 연결성을 보여주는 건 아닐지. 나의 생각이다.


어쨌든 달빛보쌈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가게로 들어오면 내부는 널찍해서 자리가 많다. 저녁 술장사를 노린 듯, 테이블은 꽤 많이 있다.


점심에는 자리가 꽉 차서 바글바글할 정도는 아니다. 보쌈 정식이나 각종 정식 메뉴가 있기 때문에 은근히 사람은 있다. 저녁에는 안주를 놓고 술을 마시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이 근방에는 술집이 많이 없기 때문에 꽤 인기가 있을 법하다.


점심을 기준으로 하면 보쌈 정식이 1인분 1만4000원이다. 아쉬운 건 포장이 아니라면 혼자서는 식당 내부에서 정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무조건 2인분을 시켜야 한다.


기본 보쌈은 청담보쌈 정식이다. 그 외에 점심 메뉴는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는데, 마늘보쌈과 문어보쌈 정식, 제육볶음, 찌개류, 코다리찜 정식 등 다양하게 있다. 다른 메뉴들을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보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점심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보쌈 정식을 시키면 5~10분 내로 음식이 나온다. 잘게 썰어진 보쌈과 각종 김치류, 4가지 반찬과 국이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청담보쌈의 보쌈정

고기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 집이 처음 생겼을 때 고기와 지금의 고기는 모습도 맛도 다르다.


이유는 아마도 주방장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사장님은 처음에 달빛보쌈에 계시던 주방장과 함께 청담보쌈으로 왔다고 한다. 초기에 어떻게 만들지 몰랐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계셨던 주방장은 아마도 지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초기에는 고기의 색깔이 지금보다 훨씬 연했다.


지금은 고기에 들어가는 양념을 바꾼 것 같다. 아마도 마늘, 된장, 굴소스 등 진한 양념이 대거 들어간 듯하다.


고기 자체는 무척 부드럽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다. 절대로 질기거나 퍽퍽하지 않다.


다만 그 맛은 좀 더 진하다. 과거에는 평범한 맛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 자극적인 맛이다. 족발에 가까울 정도로 진하다. 달달하고 진해서 부위만 달랐다면 족발이랑 똑같았을 것 같다.


달달하고 진하다해서 싫다는 의미는 아니다. 좀 자극적인 고기일 뿐, 맛 자체는 나쁘지 않다. 베스트라고 말할 수 없지만, 워스트는 아니다. 오히려 점심 정식보다는 저녁에 술과 먹으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자극적인 맛이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이 집 김치가 좀 연했거나, 고기의 자극을 잠재워줄 맛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집의 김치는 굉장히 세다. 간이 엄청 세다. 짠맛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소금만 왕창 넣은 짠맛은 아니고, 맛있는 짠맛이다. 사진만 보아도 양념이 진한데, 맛 그대로 양념이 강하게 느껴진다.


배추김치나 무김치나 비슷하게 진하다. 살짝 매콤한 감이 있는데, 김치 사이에 있는 콩나물이 있는 이유 같다. 김치와 콩나물, 고기는 두 점 정도 같이 올려서 먹으면 나쁘지 않은 조화다.


고기와 김치 각각 따로 두고 보면 나쁘지 않은 맛인데, 같이 먹으려면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밥이나 술 같은 곁들임이 꼭 필요하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보쌈 보쌈 정식 2인분

이 집의 또 다른 아쉬움은 가격이다. 가격 자체가 지나치게 비싸지는 않다. 하지만 가격에 비해 양이 적다.


보쌈 1인분은 고기가 7점 정도 된다. 다이어트할 때 먹으면 딱이다. 2인분이 저 정도니 엄청 적지는 않지만, 절대로 많은 양은 아니다.


상권이 상권이니 만큼, 비싼 게 이해가 되긴 한다. 그래도 반찬이 다양하고 맛있기 때문에 참고 먹을만하다. 오징어 볶음은 별미다. 콩나물국도 나쁘지 않다.


리뷰 중에는 이 집이 불친절하다는 평이 몇 개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서 가서 2인분 가격을 내고 먹어야 하는 건 아쉽지만, 딱히 불친절하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상냥하거나 지나치게 친절하진 않지만.


사장님은 보쌈에 진심이시고, 보쌈을 사랑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집이 좋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달빛보쌈이 사라진 후 논현동에 맛있는 보쌈집이 없었는데, 다시 돌아오게 해 준 점이다. 맛도 나쁘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이 집을 사라졌다 돌아온 보쌈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맛은 달빛보쌈 때와 살짝 다르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때의 전통을 이어가고, 그때의 기억들이 곳곳에 묻어 있으면 된다. 맛이 살짝 다르다고 맛없는 것도 아니다. 달빛보쌈을 추억하면서 한 점씩 먹기 좋다.


기억 저 편에 있던 달빛보쌈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혹시라도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사라졌다 돌아온 보쌈집, 청담보쌈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