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nnai, INDIA 2019.10.18.17:22
원래부터 없었던 걸까, 아니면 지워졌는데 어차피 아무도 지키지 않으니 다시 그리지 않은걸까. 왕복 6차선은 족히 되보이는 폭넓은 도로에 차선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위를 지그재그로 자유롭게, 아니 위태롭게 달리는 자동차들.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다양한 음역대의 경적은 하나같이 사고 직전의 경고음처럼 불안하다. 그 자동차 사이 사이를 경이롭게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그리고 내겐 목숨을 건 것 처럼 보일 정도로 용감무쌍한 맨몸의 보행자들.
숙소에서 내려다보곤 했던 도로는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차량 통행이 줄어든 자정 무렵에도 자동차 빛이 없다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양한 소음이 다시 거리를 채웠으니. 인도는 '채움'을 넘어 '쌓음'에 가까운 곳이었다.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생각하면 가득 채워진 공간 윗쪽에 무너지기 직전까지 또 다시 쌓아버리는 나라.
인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인도가 가진 모든 것들을 최선을 다해 지독히 미워했다. 귀국 하는 날을 디데이로 지정해놓고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안도했다. 도착하면 한국은 막 겨울이 시작했을테니 다음 여행은 따뜻한 곳으로 가야할까. 하루에도 몇번씩 스카이스캐너 어플을 들락날락 거리며 최저 항공편을 알아봤다. 이 곳에서 남은 시간에 대한 미련이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인도에 남겨 두고픈 마음은 단 1g도 없었으니. 그러나 그때는 상상도 못했지. 나의 마지막 해외 여행지가 인도의 첸나이로 남을 줄은. 그리고 돌아와 책상에 앉아 들춰본 사진 속 인도는 미워하던 마음은 옅어지고 조금은 그립고 아련한 곳으로 자리해 있었다.
당분간 하늘을 가르는 여행은 꿈꾸는 것조차 호사스러운 일이 될 듯 하다. 스케쥴 어플에 공백이 있다 싶으면 잠깐이더라도 잽싸게 여행 일정을 우겨넣었던 바지런한 여행자였다. 꼼짝달싹 할 수 없는 요즘의 우울함이 인도에서의 우울함을 추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행 때마다 헤플 정도로 펑펑 찍어댔던 수만장의 사진이 남아 있다. 다시 여행 계획을 세우고 설레는 마음으로 캐리어를 챙길 수 있을 때까지, 그동안 지나온 여행들로 한번 더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하루에 하나씩 여행 사진을 골라 문득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생각을 엮을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렌다. 때론 성기게, 때론 촘촘하게. 글이 쌓이며 시간을 쌓다보면 다시 여행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이번에는 추억을 채우고, 다 채웠다 싶으면 그 위에 또 하나둘씩 쌓아보겠다. 마치 인도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선명한 사진의 도움을 받아 방향도 장소도 시간도 제멋대로인 여행기.
오늘부터 1일 입니다 :D